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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침몰될지 모르는 사회구조, 세월호에서 우리를 보다”
“언제 침몰될지 모르는 사회구조, 세월호에서 우리를 보다”
  • 미디어제주
  • 승인 2014.04.2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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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천주교 제주교구 허찬란 신부 ‘안산, 진도 팽목항, 제주를 오가며’

 
제주시 건강가정지원센터장으로서 나는 경기도와 인천시에서 일하는 가까운 사이의 건강가정지원센터장들과 센터 운영에 대한 슈퍼비전을 공유하며 지낸다. 지난 23일에는 급히 의왕시, 군포시 센터장들과 안산시 센터를 방문해 다음날까지 안산시 센터의 어려움을 함께 했다. 우리 제주시 건강가정지원센터도 물론이지만 안산시도 세월호 피해자 가족을 위한 긴급 가족 돌봄 지원을 하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가족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료서비스로 아이 돌봄, 방과후 돌봄, 노인 돌봄, 가사 돌봄, 심리 정서 지원을 하고 계셨다.

워낙 많은 희생자와 실종자, 그리고 도시 전체가 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만큼 거리의 사람들도 많아 보이지 않았고, 특히 23일부터는 세월호 희생자 임시 합동 분향소가 시작되어 일반인들이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 경건하게 줄지어 선 우리 일행은 먼저 분향을 하고 나오시는 분들 한 분 한 분의 눈에 눈물이 가득한 것을 보면서 분향소 안으로 들어갔다. 경건하다 못해 무거운 침묵 속에 국화 한 송이를 받아들고 다시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 서기까지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

필자도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면서 처음으로 육지를 밟기 전날,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모여 여행 일정을 확인하고 어머니가 반복하며 당부하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마음은 이미 바다를 건너 있었다. 가방을 몇 번이고 쌌다 풀었다 하면서 친구들과 부두에 모여 배의 출항을 기다리던 과거를 떠올리던 순간 나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 영정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온 학생들, 교사들의 모습과 그 위로는 영정이 없는 액자들이 가득했다. 학생증 사진이 영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대로 순진하게 규칙을 지켰던 아이들 모습에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분향을 하면서 눈물이 쏟아지는데 그건 어른으로서 우리 사회구조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 죄책감 때문에 나는 안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애쓰고 있었다. 남을 나무라기 전에 이미 어른이 되어 있는 나도 이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았을 때의 마음도 같았다. 어느 누구도 미소조차 띨 수 없는 그곳에서 상복을 입으신 할머니 두 분과 마주치게 됐다. 내가 가톨릭 신부라는 이유 하나로 나에게 달려와 눈물을 흘리셨다. 아무 말도 못 드린 채 꼭 껴안아 드리던 그 시간도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나는 6살 딸을 살리고 생사의 뒤안길로 떠났다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엄마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진도로 향했다. 물살이 세지기 전에 아직도 바다에 있을 6살 아이의 오빠와 아빠가 살아서 돌아오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찾은 그 곳은 나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안산에서의 죄책감과는 달리 진도에서, 팽목항에서는 화가 치밀었다. 의약품, 옷가지, 급식소 등 많은 부스를 지나치며 받은 감정은 ‘이런 게 지금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시신을 찾고 돌아간 가족들과 달리 바다를 바라보며 시신으로라도 돌아오길 바라는 저 가족 분들에게 우리가 해 드린 것이 무엇이 있던가? 저분들도 시신을 찾으면 먼저 돌아간 사람들처럼 오히려 눈과 얼굴이 제대로 돌아오는 기이한 심리현상을 보일 것인가?’ 아무 것도 해 드릴 수 없는 나의 모습에 화가 났던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오늘도 제주시 건강가정지원센터장으로 병원에 계신 생존자들과 자조모임을 가지며 그 때 그 시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개별 화물을 싣고 전국 곳곳을 다니다 세월호에 차와 몸을 실은 분들에게서 돌아가신 양대홍 사무장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셨는지 들었다. 또한 기사실에 계시다 홀(Hall)에 나갔다가 때마침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던 기사 분들에게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는데 하며 말문을 닫으시는 모습도 보았다.

필자는 지난 한 주 동안 비행기를 다섯 차례, 배를 한 차례 타면서 바다를 볼 때마다, 어른이 돼서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시민으로서의 죄책감과 아직도 생사를 모르는 실종된 분들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다는 데 화가 치밀었다. 그러면서 또 하나 느낀 것은 한국이 참 작은 나라란 생각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지냈던 캘리포니아 주나 일리노이 주에 비교해도 우리나라는 아주 작은 땅덩어리다. 이 작은 나라에서 왜 이렇게 사건 사고가 많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를 한 형제자매로 여기며 살아야 하는 한 가족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제주로 향하다 침몰된 세월호의 승객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에게 구명조끼를 건네주던 세월호 안의 희생자들, 그리고 생존자들이 우리 자신이 아닐는지. 우리는 동 시대를 살아가는 인생의 배에 함께 승선해 있다. 하지만 이 배 역시도 세월호의 모습이 아닐까? 언제 침몰될지 모르는 지금의 사회구조 속에서라면 다음은 우리가 희생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 허찬란 천주교 제주교구 신부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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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제주교구 신부
제주시건강가정지원센터장
제주시건강가정지원센터 아버지학교 지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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