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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때 수장된 영혼들 달래고, 세월호 실종자들 살려줍서”
“4.3 때 수장된 영혼들 달래고, 세월호 실종자들 살려줍서”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4.04.19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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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수장 해원상생굿, 희생자 숫자도 파악되지 않는 넋 위로

4.3 당시 수장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4.3 수장(水葬) 해원 상생굿’이 19일 오전 10시부터 제주시 산지항 제2부두 방파제에서 열렸다.

수장(水葬). 시신을 물 속에 넣어 장사를 지낸다는 뜻의 단어다.

하지만 66년 전 4.3이라는 상처를 안고 있는 제주에서는 시신을 위해 장례를 치른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돌을 달아 물 속에 빠뜨리거나 배 위에서 총을 쏘아 바다로 던지는 일이 벌어졌다.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은 ‘4.3 행불인’으로 불리워진다. 그나마 이웃 등의 구체적인 증언 덕분에 4.3 당시 수장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확히 몇 사람이 이같은 방법으로 희생됐는지 알 길이 없다.

우선 무더기로 수장된 이들 희생자들은 정식재판에 회부하지도 않은 채 불법적으로 임의 처분됐다는 점, 그리고 이들 희생자들이 왜 죽었는지 이유를 밝히는 사건 기록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바다에 던져졌기 때문에 시신조차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유족들의 아픔과 한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이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4.3 수장(水葬) 해원 상생굿’이 19일 오전 10시부터 제주시 산지항 제2부두 방파제에서 열렸다.

특히 이날 상생굿은 지난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함께 기억하고,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들의 생환을 기원하는 뜻이 함께 모아져 그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초감제를 맡은 제주큰굿보존회의 서순실 심방은 사설 중에 세월호 실종자들이 배 안에서 숨을 쉬게 해달라고, 생명의 끈을 놓지 말고 살아 돌아와달라고 빌었다.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해군 및 해경 잠수부와 민간 잠수부들이 아무런 사고 없이 구조 작업에 나서도록 기원하기도 했다.

노리안마로 팀의 풍장 보시 모습.
4.3 당시 수장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해원 상생굿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날 상생굿을 주최한 (사)제주민족예술인총연합 박경훈 이사장은 “19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 대마도에 한국인 시신이 많이 표류했다는 대마도 현지 언론 보도를 접한 후에 대마도에 표류한 시신이 1948~19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제주 지역에서 수장 희생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제기됐다”면서 제주도를 지나는 해류 중 대마난류가 대마도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확인, 지난 2001년 ‘제1회 4.3 수장 희생자 위령제’를 개최했었다고 소개했다.

이날 해원 상생굿이 수장된 희생자들을 위한 두 번째 굿인 셈이다.

박 이사장은 “제주 섬 이곳 저곳에서 발굴된 4.3 유해들은 유골을 통해 자신의 희생을 증명하고 있지만, 수장된 희생자들은 사실상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서 “희생된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안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해원 상생 굿이 늦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오전 10시부터 초감제로 시작된 이날 상생 굿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에도 오후 3시까지 노리안마로의 풍장, 성악가 송현상씨와 노래꾼 김영태씨의 노래, 예술단의 진혼무 등 순으로 진행됐다.

성악가 송현상씨가 수장된 4.3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음은 이날 김수열 시인이 낭송한 시 ‘물에서 온 편지’ 전문이다.

물에서 온 편지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고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긴 지번을 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낸다

아들아,
올레 밖 삼도전거리 아름드리 폭낭은 잘 있느냐
통시 옆 먹구슬은 지금도 토실토실 잘 여무느냐
눈물보다 콧물이 많은 말젯놈은
아직도 연날리기에 날 가는 줄 모르느냐
조반상 받아 몇 술 뜨다 말고
그놈들 손에 질질 끌려 잠깐 갔다 온다는 게
아, 이 세월이구나
산도 강도 여섯 구비 훌쩍 넘어섰구나

그러나 아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이제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육신의 칠 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냐
나머지 삼 할은 땀이며 눈물이라 여기거라
나 혼자도 아닌데 너무 염려 말거라

네가 거기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없듯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없어
그게 슬픔이구나
봉분 하나 없다는 게 서럽구나 안타깝구나
그러니 아들아
바람 불 때마다 내가 부르는가 여기거라
파도 칠 때마다 내가 우는가 돌아보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내거라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어도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기 꽃소식 사람소식 그리운 소식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너울너울 보내거라, 내 아들아

4.3 수장 해원 상생굿이 열린 산지항 제2부두 방파제에는 지난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 유족들을 위로하는 현수막이 함께 내걸렸다.
4.3 당시 수장된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풍장을 펼쳐보이고 있는 노리안마로 팀의 공연 모습.
4.3 수장 해원 상생굿을 지켜보던 이들이 심방의 사설 자락을 듣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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