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곡선
직선과 곡선
  • 홍기확
  • 승인 2014.04.17 10:5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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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49>

한국의 휴대폰은 보통 곡선이다. 네 귀퉁이의 마감이 둥글둥글하다.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 휴대폰이 그러하다. 한편 미국의 휴대폰은 직선이다. 아이폰의 경우 지금은 조금 변형되긴 했지만 과거에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제품들이 제작되었다.
과거 한국의 프린터기는 북미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았다. 삼성의 프린터는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프린터 위에 물건을 올려놓을 수 없다는 게 마케터들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점점 단순한 삶을 선호하고 집 안의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프린터에 궂이 잡다한 물건들을 올려놓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삶의 패턴 변화에 따라 삼성전자의 세계 프린터 시장점유율은 2000년 2%에서 2010년 18.4%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직선과 곡선의 대결에서 곡선이 1승을 올렸다.

최근에 본 영화중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 월터는 폐간될 잡지의 표지에 싣기 위한 사진의 필름을 받았다. 그러나 그 필름이 분실되었다. 할 수 없이 필름의 원본을 다시 얻기 위해 처음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를 찾아 나선다. 정확히 말하면 특별한 경험이 하나도 없는 무미건조한 직장인이, 사진작가를 찾기 위해 그린랜드, 아이슬랜드,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찾은 사진작가. 그는 유령표범을 찍기 위해 산 중턱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필름에 대해 말을 꺼내자, 사진작가는 이제 유령표범이 나올 때가 됐다며 우선은 조용히 있으라고 한다. 이 녀석을 보기 위해 며칠간을 한 자리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월터는 별 수 없이 같이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 뒤 드디어 유령표범이 나타났다. 하지만 작가는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답답해진 월터는 묻는다.

“유령표범이에요! 셔터는 언제 누르실 거에요!”

그러자 사진작가는 그윽하게 말한다.

“사진은 찍지 않을 겁니다. 만일 지금의 순간이 소중하다면, 나는 그냥 이 순간에 머무릅니다. 그 순간이 바로 여기든 저 너머이든 말에요. 그냥 이 순간을 즐겨요.(If I like a moment, I wanna stay in it. Right here and right there. Just Stay in it.)”

사진작가는 결국 유령표범을 찍지 않고 그저 두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유령표범이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서양의 영화지만 곡선의 삶이 느껴진다. 사진작가는 그저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투사에게 잠시 쉬어가고 돌아가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마침표 없는 직선적인 삶과, 쉼표가 있는 곡선의 삶에서 곡선이 승리한다. 2승을 올렸다.

여기 직선의 삶이 있다.
꾸역꾸역 마침표를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끝까지 가 봐도 마침표는 없다. 마침표 주변을 둘러보니 본인을 제외하고는 가족도 동료도 동기도 동포도 없다. 게다가 혼자 달려오느라 가족을 포함한 사람들은 한참이나 뒤쳐져 있다. 또한 되돌아갈 곳이 없다. 아니, 어디로 되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주변 사람들이 어디를 향해 갔는지 방향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곡선의 삶이 있다.
터벅터벅 걸어간다. 인생에 마침표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쉼표는 있다고 믿는다. 가끔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함께 쉬었다 가자고 하거나, 동료들이 넘어지면 부축해주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는 식구들과 먹고, 잠도 식구들과 함께 잔다. 되돌아갈 따뜻한 곳이 있는지라 세상의 한파에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다. 가족은 기대는 대상이 결코 아니지만, 가족의 온기는 몸을 녹이고 다시금 힘차게 나갈 수 있는 기대는 준다.

분명 곡선이 이긴다.
온기는 아지랑이처럼 어지럽게 퍼진다. 세상에 야구공 같은 희망을 던져도 포물선으로 간다. 아이들의 미끄럼틀도 자세히 보라. 곡선이다. 직선이었다면 완충작용을 하지 못해 다친다.

오늘 쯤 세상을 향해 돌을 던져보자. 그리고 돌의 궤적을 보자. 세상은 직선으로 살라고 하지만 오히려 현실적인,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은 곡선이자 포물선으로 나아간다.
오히려 직선이 이상(理想)이고, 곡선이 현실(現實)이다.
곡선이 맞다. 그리고 곡선의 삶이 이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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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2014-04-17 14:34:46
한 편의 시처럼 멋진 글입니다.
정갈한 문체 속에 지혜가 담겨있군요^^

김동조 2014-04-18 11:31:25
가슴에 와닿는 글이네요.감사합니다.

곡선 바라기 2014-04-18 21:01:19
곡선의 삶을 살고싶네요.
잔잔하지만 울림있는 글 잘 읽고갑니다.

홍기확 2014-04-19 12:07:41
이번에 쓴 글이 49번째, 다음번은 50번째 글이 되는군요.
2012년 12월 10일 첫번째 글을 시작으로 16개월동안 49개를 썼으니
열흘에 한 개 꼴로 글을 썼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수필가로 등단도 하고, 문학단체의 사무국장도 맡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1학기이구요.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며 오히려 제가 휴식을 취했던 것 같네요.
그간 많은 응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