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서 어른으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 홍기확
  • 승인 2014.04.15 08:00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48>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친구 한 명이 수업에 들어가기 싫다고 하자, 아이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나보다. 수업을 같이 빠지고 학교의 다목적실에 숨어 있다가 걸렸단다. 집사람은 크게 혼을 냈고, 나는 광분해서 격렬하게 혼을 냈다. 마음이 어쩜 이리도 약할까.
내 분을 못 이겨 아이를 몇 차례 울리면서까지 혼냈다. 그리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이 때 어땠지?

사실 나도 마음이 약하다. 심지어 부모님은 마음이 약한 나를 위해 태권도장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보내셨다. 분명 내가 강한 마음을 갖게 되길 마음속으로 바라셨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동안 태권도장을 다니고 졸업해도 약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고, 심지어 지금도 그렇다.

마음이 약하다는 것은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마음이 강하다고 해서 우쭐할 일도 아니다. 성격의 차이일 뿐이다. 외향적이거나 내향적인 성격, 소심하거나 대범한 성격의 장단점도 분명하다.
수전 케인이 쓴 내향적 성격에 관한 책, 『콰이어트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외향적 기질을 요구 및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돌직구다. 섣부른 결론을 아끼고 그녀가 제시한 질문들은 보자.
“왜 어떤 사람들은 수다스러운데, 어떤 사람은 말을 아낄까? 왜 어떤 사람은 일에만 파묻히는데, 어떤 사람은 동료들과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할까? 왜 어떤 사람은 권한을 쓰는 데 익숙한데, 어떤 사람은 지도자가 되기도 싫어하고 끌려가기도 싫어할까?”
그녀의 질문들은 한번쯤은 곱씹어볼만한 화두임에 분명하다.

나는 마음이 약한데다가 내향적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이 많은 곳은 지나칠 만큼 피해 다닌다. 초등학교 때는 우수(憂愁)에 젖은 아이, 중고등학교 때는 또라이, 대학교 때는 도서관에서만 파묻혀 사는 아웃사이더였다. 벤치에서 책을 읽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오면 자리를 옮기고, 운동을 할 때에도 사람이 제일 없을만한 시간인 새벽에 가곤 한다.
달리기도 새벽이 좋다. 사람들도 차도 별로 없다. 고깃집에 가면 아무리 맛집이라 해도, 사람이 많거나 시끄러우면 밥을 후다닥 먹고 나가고 싶다. 결혼식장, 장례식장은 최악의 장소다. 시끄럽고 끊임없이 인사를 해야 하며, 시간도 더디 가 안절부절못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부모님은 집을 사고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 잠시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다.
학교를 가는 아침, 어머니는 아침 일찍 나에게 라면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무리하게 집을 사서 그런지 돈이 없어도 한참 없었나 보다. 외상을 달고 오란다.
낯선 동네, 처음 가는 슈퍼. 가는 길은 물리적으로는 30미터였으나, 심리적으로는 수십킬로미터쯤 되어 보였다. 어머니는 나보다 마음이 약하다. 누나는 좀체 심부름을 해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내가 갈 때 따라가는 정도였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당시 어머니 생각에 세 식구 중 내가 가장 미더웠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게다가 외상을 해야 했다. 그것도 처음 외상장부를 터야 했다.
슈퍼에 들어가자 웃는 낯으로 가게아저씨가 인사를 한다.

“이삿짐 들어오는 거 봤는데 너 저기에 이사 왔구나?”

웃는 낯의 아저씨가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씩씩하게 대답한다.

“네. 맞아요. 그런데 아침 먹으려고 하니 밥이 없어서, 라면 끓여 먹으려고요.”

아저씨는 인상이 참 더럽게도 좋다.

“그래, 골라봐라.”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당시 대세는 삼양 쇠고기라면이었다. 1989년 공업용 우지 파동으로 삼양라면이 곤경에 빠지기 전인 1988년의 일이니 말이다. 해피라면(1988년 단종됨)도 있었는데 그 당시 슈퍼에는 2개의 라면이 흔했다. 해피라면은 90원, 쇠고기라면은 100원이었다.
10원 차이지만 나는 당당히 100원짜리 쇠고기라면을 골랐다. 그런데 우리는 세 식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린 마음에 2개밖에 사지 못했다. 그리고는 큰맘 먹고 심호흡을 힘차게 하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거 외상 해주세요. 앞으로 자주 올게요.”

초등학교 2학년에 처음 보는 녀석이 외상을 달라고 하다니. 아저씨의 어이없다는 표정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아저씨는 비교적 선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처음 이사 왔으니 외상으로 주마. 하지만 내일까진 꼭 엄마한테 돈 가지고 오라고 말씀드려라.”

나는 라면 두 봉지를 가지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머니는 별 말 없이 미리 끓여 놓은 라면 세 봉지 분량의 물에, 라면 두 봉지를 넣어 끓여오셨다. 멀건 국물에 끓여진 싱거운 라면. 그 국물을 잊지 못하고, 멀건 국물이 싫어서 지금도 라면은 물을 조금만 넣어 짜게 먹는다.

한편 다음날 어머니가 그 가게에 가서 외상값을 갚았는지 알 길이 없다. 물어보지 않았을 뿐더러, 그 이후로 가게에는 이사를 가기 전까지 1년간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러 동네 입구 삼거리에 있던 가게를 그쪽 입구가 아닌 반대쪽으로만 다녔다. 불가피하게 가게를 지나쳐야 할 때는 가게주인이 나를 알아볼까 무서워 등을 돌리고 옆으로 걸어갔다.

소년이었던 1988년에서, 지금은 26년이 지나 2014년이다. 어른이 되었다. 아직까지 나는 그 길을 걷지 못한다. 아니, 이제 걸을 수도 없다. 많은 주택들과 빌라들은 몇 년 전에 죄다 아파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어렸을 때의 기억만을 유산으로 남기고 딱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천성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천성을 잊거나 무시하고 사회가 강요한 삶을 사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평생 입는 것과 같다. 상당히 불편한 인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약한 천성도 많이 불편하긴 하다. 세상에 아쉬울 게 하나 없는데 남들이 부탁을 하면 거절하지 못한다. 가끔은 부탁받은 것들이 더욱 큰 일이 되어, 내 삶에도 지장을 줄 때가 꽤나 많다.

다시 수전 케인이 쓴 내향적 성격에 관한 책, 『콰이어트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로 돌아가 본다.

“왜 어떤 사람들은 수다스러운데, 어떤 사람은 말을 아낄까? 왜 어떤 사람은 일에만 파묻히는데, 어떤 사람은 동료들과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할까? 왜 어떤 사람은 권한을 쓰는 데 익숙한데, 어떤 사람은 지도자가 되기도 싫어하고 끌려가기도 싫어할까?”

원래 그렇다. 성격이란 건 그 때 그 때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성격의 상위개념격인 ‘천성(天性)’은 쉽사리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내가 이성을 잃고 아이를 혼낸 것은 아이의 앞날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아이의 천성이 내 천성과 같으니, 내가 자라온 역사를 비슷하게 밟아갈 것을 알고 있다. 이게 미치는 거다.
결국 다음날 아침에 아이에게 사과하면서 마음약한 내가 지금까지 세상에서 잘 버텨온 삶의 교훈을 던져주었다. 물론 초등학교 1학년이 이해할 만한 것은 아닌 걸 알고 있지만, 적어도 아빠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뜬금없는 화두를 제시할 수는 있어야 한다.

“지구 인구가 70억 명이야. 그런데 70억 인구 중에 불쌍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네가 다 챙겨줄 수 없고, 수업 듣기 싫다고 해서 네가 다 같이 숨어있을 수는 없어.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그런데 네가 다 쫓아다니면서 밥을 먹여줄 수는 없어.
네가 중요해. 가장 중요하다고. 네가 수업을 듣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친구가 수업을 듣기 싫다고 해서 같이 빠지는 건 아니지. 그럼 네 생각은 뭐야? 너는 누구를 위해 사는데?”

사실 삶의 방법으로 제 몸이 바로서고 나서, 집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라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얘기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너무 어려운 얘기다.

아이에게 좋은 건 다 제 엄마를 닮았다. 풍부한 감수성과 긍정적인 마인드.
나쁜 건 다 나를 닮았다. 양손잡이, 마음 약한 것.

결론은 이렇다. 우선 치명적인 천성을 물려준 내가 잘못이다. 하지만 천성은 바꿀 수 없다. 아이는 마음이 약한 대로 살 수 밖에 없다. 고생길이 훤하다. 하지만 내 아이도 결국에는 아이에서 어른이 될 것이다. 비록 마음고생은 숱하게 할 테지만 말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마음이 약해도, 내성적이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이렇게나마 위로를 해주는 수밖에 없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어떻게든 가르칠 길이 없다. 우선은 나부터 잘 살아야 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선생님이 아닌 선구자(先驅者)가 되어야 하니까.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부전자전 2014-04-18 20:55:05
아이가 아빠의 따듯한마음을 알고 잘 자랄것같습니다.
마음 약하다는것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부전자전이네요.

아빠와 엄마 2014-04-15 14:41:27
엄마시군요~^^
집사람도 같은 얘기를 하더군요.
제가 어른이 덜 되어 현재 진화중입니다.

마음 따뜻한 아이 2014-04-15 10:15:02
아이는 아마도 친구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에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음 약하다는 건, 곧 마음이 따뜻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거죠.
물론 아직 8살 나이에 무엇이 옳은 선택인가? 생각하는 게 당연히 힘들죠.
어른들처럼 학교 가는 게, 수업을 듣는 게 사회의 절대적인 규칙이라는 걸 아직 모를 나이니까요. 아마 학교를 아직은 어린이집 정도로 알고 있겠죠.
조금 더 크면, 수업을 듣기 싫어하는 친구에게 수업에 빠지면 안된다고 설득할 줄 아는 어엿한 소년이 되어 있을 거에요.
친구를 생각하는 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먼저 인정해주고, 그 다음에 차분하게 설명해준다면, 충분히 알아들을거에요.
수많은 육아 서적에 나오는 말처럼, 부모의 관점에서 잘못됐다고 혼내기 전에,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이해해주고 차분히 설명하는 대처가 정답이겠죠.
하긴 다른 사람에게는 이성적으로 말해도, 정작 제 아이에게는 차분한 대처가 잘 안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