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4:18 (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받고 존중받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받고 존중받는 것입니다”
  • 김익상
  • 승인 2014.04.13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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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생명위원회 칼럼] 김익상 제주대 부총장 ‘난(蘭)에서 찾아보는 교육의 의미’

지난 2009년부터 구성, 운영되고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허찬란 신부)가 <미디어제주>에 '교구 생명위원회 칼럼'을 게재합니다. 생명위원회 칼럼은 제주도내 의료, 환경, 복지 등 도내 각 전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생명위원회 위원들의 고견을 <미디어제주> 독자 분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자 분들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중학생 시절 지금은 도로에 편입되어 사라져버린 무근성 집에서 씨앗을 심고 나무를 가꾸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께서 야자나무 씨앗을 구해 오셔서 우리 집 마당 한 가운데 열 평 정도에 블록 몇 단을 쌓고 흙과 모래를 곱게 쳐서 화단을 만들고 거기에 씨앗을 심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카나리아, 로베리니, 소철 등 그런 이름을 가진 나무들이었다. 방과 후 일과 중의 하나는 정성스럽게 물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하게도 흙모래 위로 연두색의 싹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노력이 열매를 맺는 기쁨도 컸고 새로 돋아나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도 그 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식물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다시 그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몇몇 지인들이 선물해준 난을 돌보면서부터이다. 어떻게 기를지 몰라 물을 너무 많이 자주 주어 죽이기도 하였고, 햇빛에 너무 노출시켜 잎사귀가 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식물학을 전공하는 선배 교수님께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면 난을 잘 키울 수 있어요?” 돌아온 대답은 간단하였다. “화초도 인간과 똑 같아요. 물, 햇빛, 신선한 공기가 식물에 따라 적절히 필요한데, 난초는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죽이는 경우가 많아요.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 보면 언제 어느 정도 물을 줘야할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 후 내 연구실에서 난이 죽어서 나간 경우는 없었다. 매일 한두 번씩 눈길을 주면서 그들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대충 물을 줄 때를 알 수 있었고 계절에 따라 위치도 변화시킬 줄도 알게 되었다. 순전히 경험에 의존하는 식물에 관한 한 문외한이지만 몇 가지는 알게 되었다. 잎이 말라 가고 있는 난은 살릴 수 있었지만 노랗게 변해가는 잎은 결코 구할 수가 없었다. 노랗게 변해가는 잎들은 결국에는 검은 갈색으로 변하여 다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성만 있다면 뿌리가 살아있는 것은 어느 날 아침에 새로운 싹이 보일락 말락 새로 돋아난다는 것을, 또한 새로 난 어린 싹은 매우 연약해 보이지만 그 위를 덮고 있는 무거운 잎을 가볍게 뚫고 하늘을 향하여 힘차게 뻗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1942년 자신이 돌보던 200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트레블링카의 가스실이 종착지인 화물차를 탔던 폴란드의 의사이자 작가, 교육자이며 위대한 휴머니스트인 헨리크 골드슈미트(필명: 야누스 코르착)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아직 모릅니다. 알아낼 방법도 없습니다. 내가 모르는 부모들이 내가 모르는 아이들을 역시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나는 모릅니다. 어떤 책도 어떤 의사도 부모들의 직관과 주의 깊은 관찰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당신만큼 당신의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대의 수많은 육아 이론과 교육에 대한 주장들로 말미암아 혼란에 빠진 부모들에게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보살피는 사람의 직관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다시 말한다.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사랑받고 존중받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또한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자란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아끼는 방법을 배우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제 어린이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 양모(養母)가 자녀들을 학대한 뉴스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우리 사회가 생명력이 있고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받는 사회로 거듭나려면 부모, 선생님, 그리고 모든 어른들이 우리 어린이들에 항상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고 그들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삶이 당신에게는 무덤과 같은 곳이어도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그곳을 목장으로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참고: <야누스 코르착의 아이들>

 

▲ 김익상 제주대학교 부총장 겸 교육대학장 <미디어제주>
<프로필>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영어교육과 교수
(현) 제주대학교 부총장 겸 교육대학장
천주교 제주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천주교와 함께하는 제주시건강가정지원센터 아버지학교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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