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자들의 성지 방콕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방콕
  • 조미영
  • 승인 2014.02.0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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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의 여행&일상] <8>

 

왕궁사원의 모습.

태국 내 정치적 불안이 결국 반정부시위에 이은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일이지만 꽤 신경 쓰이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배낭여행객들이다. 왜일까? 태국의 수도 방콕은 아시아의 허브와도 같은 곳이다. 인접한 인도차이나반도의 나라들은 물론 인도, 동남아 등을 여행할 때면 대부분 이 곳을 거쳐 지난다. 그래서 지금 태국을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인터넷에는 실시간으로 현지소식이 오고간다. 많은 이들이 현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증거다. 과거에도 수차례 이 같은 충돌이 있었지만 잘 수습되었고 관광대국의 위엄은 건재하다. 아마 이번도 잘 넘기리라 여긴다.

 

거리에 세워진 카오산로드 이정표.

태국의 수도 방콕은 다국적 도시다. 거리 어디에서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여행객이다. 왕궁, 사찰, 야시장 등을 가득가득 메우며 거리에 활력을 준다. 특히 카오산 로드(Khaosan Road)는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의 집합소다. 1980년대경 방람푸 일대 300미터 안팎의 거리에서 시작된 이래 확장을 거듭하여 이젠 세계 최대의 여행자거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여행사, 환전소, 기념품점 등이 운집해 있어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방콕에 도착한 첫날, 벌써 해는 지고 어둑어둑하다. 다행히 카오산로드 인근에서 차를 내렸다. 얼른 숙소를 찾아야 한다. 지도를 보며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골목을 돌아가자 밝은 불빛들이 보인다. 알록달록한 간판들과 시끌벅적함이 주는 안도감! 카오산로드다. 거리는 아직도 대낮같다. 하루의 일정을 마친 이들의 유쾌한 흥청거림이 카페 등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얼른 짐을 풀고 그들 속에 묻혀 들어가고 싶어졌다.

 

카오산 거리의 모습.

그런데 게스트하우스마다 빈방이 없다.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그렇단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큰일이다. 거리를 구경할 틈이 없다. 닥치는 대로 들어가 방을 알아봤다. 겨우 방 하나를 구했다. 가격대비 형편없지만 따질 형편이 아니다. 이 거리 안에서 내 몸 하나 뉠 곳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던 터라 배가 고프다. 이럴 땐 한국식당이 좋다. 한번 주문으로 반찬이며 밥이 무한리필 되서 오히려 저렴하게 먹힌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이제 제대로 거리가 보인다. 야외 노점의 물건들도 카페에서 새어나오는 노래 소리도 모두 흥겹다. 세계 각국의 젊음이 이 거리 안에 다 모여 있는 듯 활력이 넘친다. 각기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섞여있지만 이 밤을 즐기는 마음은 한결같다.
그런데 저쪽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급한 걸음으로 오는 게 보인다. 행색을 보니 인도를 여행하고 오는 듯하다. 역시 그는 인도에서 막 도착해 여기로 왔는데 숙소를 구하는 중이란다. 이 근처는 방이 없어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야할 것 같다며 울상이다. 나도 좀 전에 같은 경험을 했던 터라 심정이 이해된다. 딱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격려해주며 헤어졌다.

 

카오산로드의 아침.
오랜 세월의 연륜이 묻은 노점카페.

다음날 아침이 되어 나오니 거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다. 어젯밤의 시끌벅적함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차분하다. 카페대신 아침을 준비하는 식당과 과일가게 등이 문을 열고 있다.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나오는데 사거리 모퉁이에 노점카페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수레 곳곳에 수많은 여행객이 남긴 흔적이 있다. 비록 거리의 카페지만 역사가 꽤 깊어보였다. 주인아저씨가 커피와 홍차를 내리고 있는데 옆의 서양인이 엄지를 치켜들며 맛있다고 한다. 나도 홍차 한잔을 시키고 거리에 앉았다.
문득 차 한 잔의 여유가 너무 행복했다. 그저 거리에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뿐인데 참 편하고 좋다. 무한 자유가 느껴지는 시간들! 오후에는 카오산거리를 걸으며 상가와 서점 등을 기웃거렸다. 다양한 기념품들이 유혹한다. 아이쇼핑만으로도 재미있다. 그리고 저녁이면 생음악이 흐르는 바에서 각자 하루의 여행담을 풀어놓으며 더위를 식혔다. 작은 여유 속에서 찾았던 여행의 색다른 묘미다.

 

여행자거리의 밤.
노점의 앙증맞은 기념품.

복잡한 방콕 시내를 여행할 때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보트가 있다. 도심을 따라 흐르는 짜오프라야강에 페리를 띄워 가로질러 간다. 가격도 싸고 속도도 빨라 편리하다. 단 야간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 다음날 난 이 페리를 타고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왓포에 갔다. 이곳에는 46미터의 커다란 와불이 모셔져 있다. 긴 줄을 늘어선 관광객들의 행렬을 따라 한 바퀴참배를 하고 나왔다.

 

보트에서 내다보는 풍경.
사원을 찾은 관광객들의 행렬.

왕궁까지 가는 길은 걸어갔다. 중간에 시장이 나온다. 꼬치, 튀김, 과일 등을 파는 노점이 즐비하다. 결국 거리음식의 유혹을 못 이기고 사먹으며 걸었다. 왕궁에 도착하니 또 긴 줄이 있다. 이곳은 신성한 곳이라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 다행히 긴 바지를 입었던 터라 무사통과다.
왕궁사원은 금빛의 찬란함이 상상이상이다. 그 위용에 저절로 숙연해 질 정도다. 에메랄드불상이 모셔진 프라깨우사원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또 빈다. 그리고 그 염원은 희망으로 변하는 듯 나가는 이들의 얼굴이 밝다. 나도 덩달아 좋은 기운을 얻는 느낌이다. 태국의 국왕 푸미폰 아둔야넷에 대한 국민들의 신임은 대단하다. 낮은 곳을 돌아보며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의 품성 때문이다. 왕궁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 화려함이 아니라 이런 따스함에서 우러나는 기품이 아닐까?

 

화려한 외장의 왕궁사원.

현재 태국은 정치로 인한 큰 갈등을 겪고 있다. 국왕의 한마디로 빠르게 정리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옳다. 쉬이 정치에 관여치 않는 게 맞다. 만약 정치에 개입한다면 나중에 더 큰 혼란이 온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면 그 갈등을 그냥 임시방편으로 덮고 넘어가기 보단 조금은 어려워도 드러내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더 멀리 나갈 수 있다.

 

 

왕궁의 수문장 교대식.

지금은 한국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 우리나라는 전쟁과 데모로 기억되던 나라였다. 그래서 한때는 외국관광객에게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이유로 데모에 나서는 이들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치를 덮으려는 핑계다. 권력을 함부로 휘두른 이들이 잘못이지 이를 바로 잡고자 하는 이들에게 책임 물을 일은 아니다. 나라의 위상을 튼튼히 하면 어떤 흔들림에도 끄떡없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따지고 고쳐나가는 게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닌가? 지금 방콕의 셧다운(Shut Down)이 당장은 나라의 피해로 보이지만, 낡은 정치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면 갈등을 겪은 후의 사회는 성숙해 질 것이다. 카오산로드를 사랑하는 배낭여행객들이 그들의 파라다이스를 편안히 여행할 수 있도록 빠른 해결이 있길 바란다.
 

 

<프로필>
전 과천마당극제 기획·홍보
전 한미합동공연 ‘바리공주와 생명수’ 협력 연출
전 마을 만들기 전문위원
현 제주특별자치도승마협회 이사
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프리랜서 문화기획 및 여행 작가
저서 <인도차이나-낯선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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