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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뇌아 인공임신중절, 생명윤리적 고뇌의 실천적 수용”
“무뇌아 인공임신중절, 생명윤리적 고뇌의 실천적 수용”
  • 손영수
  • 승인 2014.02.02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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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생명위원회 칼럼] 손영수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지난 2009년부터 구성, 운영되고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허찬란 신부)가 <미디어제주>에 '교구 생명위원회 칼럼'을 게재합니다. 생명위원회 칼럼은 제주도내 의료, 환경, 복지 등 도내 각 전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생명위원회 위원들의 고견을 <미디어제주> 독자 분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자 분들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무뇌아는 발생학적으로 볼 때 선천적인 신경관 결손의 가장 중한 상태이다. 뇌 구조의 기저부만이 부분적으로 발생하는 복합인자성 선천적 이상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경해부학적 혹은 신경기능학적 분류에 따른다면, 무뇌아는 뇌사와 식물인간 사이의 영역에 존재하는 태아의 선천적 이상이다.

무뇌아는 대부분 출산 후 며칠 이내에 자연사하거나 소극적 안락사의 형태로 생명을 마감한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의학 수준에서는 임신 12주이전에 거의 대부분의 무뇌아 진단이 이루어 지며, 산전 검사를 통해 무뇌아가 진단되면 많은 의사들이 만삭 출산 후 산모가 겪을 심리적 및 육체적 고통과 신생아의 자연적 예후를 고려하여 치료적 임신중절을 권고하고 있으며, 많은 산모들이 이를 어렵게 선택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생명윤리 가르침에서는 무뇌아의 문제를 낙태의 문제와 연계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이창영신부 편역,「생명윤리(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203-205면).

그에 따르면, “낙태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 배아의 수정에서 착상 사이의 임신을 종료시키는 것도 낙태이다. ....... 산모의 심리적 육체적 위험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뇌아의 임신 상태를 종료시키는 것을 절대 허용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 무뇌증을 앓고 있는 아기가 태어나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생존 가능하게’ 되기 전에 태아를 직접 죽음으로 몰고 가거나, ‘생존 가능하게’ 된 이후 조산의 합병증의 결과 아기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 무뇌아의 부모들이 장기를 다른 아기들에게 이식할 수 있도록 기증하기를 희망한다면 아주 훌륭한 일이다. ....... 그러나 장기를 기증하는 아기가 확실히 사망하기 전에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무뇌아의 문제를 연명치료의 중단의 문제로서 논의의 마당을 열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무뇌아와 관련되는 실천적 생명윤리의 문제점들이 최근 세브란스병원의 김할머니 사건에서 연명치료를 위한 인공호흡장치의 제거를 허용한 판례에서 제기되었던 생명윤리 및 의료법리의 문제와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다양한 논의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생명윤리 및 의료법리의 문제와 그 본질적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생명연장치료의 중단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의 생명윤리 가르침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이창영신부 편역,「생명윤리(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246-265면).

“안락사는 이른 바 ‘과도한 의학적 치료’를 그만 두는 것과는 반드시 구별해야 합니다. ....... 다시 말해서 예상되는 어떠한 결과에도 부적절하거나 또는 환자나 가족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 이상 환자가 처한 실제적인 상황에 맞지 않는 의학적 치료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 결과가 불확실하고 큰 부담이 되는 생명의 연장밖에 보장하지 못하는 종류의 치료행위들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 특별하거나 또는 부적절한 수단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자살이나 안락사와 다릅니다. 그것은 오히려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조건을 받아 들인다는 표현입니다. ....... 일반적으로 가족들의 권리와 의무는 의식 불명인 상태의 환자가 성년이며 법률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환자의 뜻이라고 추정되는 바에 따른다. 합당하고 독립적인 의무와 관련하여 가족들은 대개는 통상적인 치료법을 사용할 의무만을 가진다. ....... 이 문제는 어떤 식으로도 절대 합법화될 수 없는 안락사나 환자 생명의 직접적인 처분과 관련되지 않는다. ....... 이 경우에는 이중 결과의 원리와 해당 사안에 대한 자유의사의 원칙을 적용하여야 한다.”

현재의 의학 수준에서 볼 때, 무뇌아는 뇌사와 식물인간 사이의 영역에 존재하는 선천적 이상을 지닌 태아이기 때문에, 태어 난 이후에 주어지는 생명윤리적 논의에서는 연명치료의 중단의 문제가 그 핵심이 되며, 이는 산전검사를 통한 진단 시에 이미 결정적으로 주어지는 문제이다. 모성의 자궁내의 생명과 태어난 신생아의 생명이 다르지 않다는 가톨릭 생명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산전 진단된 무뇌아의 대한 생명윤리적 논의를 연명치료 중단의 관점에서 논의할 필요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무뇌아에 대한 인공임신중절은 모성의 정신적 및 육체적 부담과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낙태가 아니라, 치유가 불가능한 태아에 대하여 “부적절하거나 또는 환자나 가족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 이상 환자가 처한 실제적인 상황에 맞지 않는 의학적 치료과정 혹은 결과가 불확실하고 큰 부담이 되는 생명의 연장밖에 보장하지 못하는 종류의 치료행위들을 거부”하는 의학적 및 생명윤리적 고뇌의 실천적 수용이라고 보아야 하는 측면이 다분히 있다.

흔히, 생명의 반대편에 죽음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속에 죽음은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다양한 논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진정한 생명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 손영수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미디어제주>
<프로필>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한국의료법학회 회장
천주교 제주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서울대 의학대학 의학박사
한국외국어대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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