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우리는 양손잡이
우리는 양손잡이
  • 홍기확
  • 승인 2014.01.21 10:1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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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42>

아이가 밥을 먹는 걸 유심히 살펴보다 충격을 먹었다. 이 녀석, 오른손으로 먹다가 왼손으로 먹다가, 이제는 양손으로 드시고 계시잖아!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 분명해지는 시점은 대략 2세 전후라고 한다. 나는 아이에게 왼손을 쓰라 오른손을 쓰라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이유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나는 사실 특별할 것도 없는 왼손잡이다. 런던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유전적인 왼손잡이 비율이 5~18퍼센트라고 하니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왼손잡이는 4.8~6.6%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의 부모들이 왼손을 경멸하고,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하여 왼손잡이들을 오른손잡이로 전향(轉向)시켰기 때문이다.
한편 왼손잡이들은 우뇌가 발달해서 예술적 능력이 학업능력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많은 연구결과 밝혀졌다. 말이 좋아 예술적 능력이지 공부를 못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예술가들은 얼추 보면 일반인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내친 김에 지르면 그 중 일부는 또라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하루는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물어보셨다.

“얘야, 무슨 고민 있니? 왜 너는 항상 우수에 젖어 있니?”

뭐시라? 우수? 초등학교 4학년이 한자능력시험 1급 문제에나 나올법한 ‘우수(憂愁)’라는 단어를 어찌 아리오? 나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했으므로 당장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 사전을 찾고서야 내가 특1급 ‘관심학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은 당시 지구의 멸망에 대해 대처할 방법을 궁리하던 터였는데 선생님이 나의 고민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난 천상 왼손잡이인가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머리카락이 반 정도 백발로 변했다. 별명이 ‘할아범’이었다. 초딩이 백발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다만 요주의 왼손잡이 당첨입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별명은 ‘또라이’였다. 확실한 별명이 있는 것은 세상에 자리매김하기에 좋은 것이다. 만화를 그렸다. 소설을 써서 친구들에게 주었다. 수업시간에는 신문과 책만 읽고 수업은 듣지 않았다. 하루에 신문 첫째 면을 통째로 외우는 것이 학교에 가서 하는 첫 일이었다. 뭍 왼손잡이들은 같은 일족이라도 나를 창피하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교 때에는 학년을 거듭할수록 백발이 점점 흑발로 변했다. 수업시간 이외에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풀기 힘든 문제들을 하나 둘 씩 풀어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흰머리가 셀 수 있을 정도로까지 줄어들었다. 어쨌든 보편적인 왼손잡이라기에는, 사뭇 찐한 왼손잡이이다.

이렇게 된 이상 결국 고백해야 하겠다. 사실 순수혈통 왼손잡이는 아니다.
밥 먹는 것, 글씨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왼손으로 혹은 양손으로 한다. 이른바 지구인의 0.1%에 속한다는 양손잡이(ambidexter)이다. 뭐 대단할 것도 없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데는 우수하지만, 집중력 부분에서는 왼손잡이, 오른손잡이에 비해 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연구결과가 어쩜 내 성격과 딱 들어맞을까?
수많은 일을 동시에 하면서 살고 있지만 딱히 탁월하게 잘 하는 것은 없다. 낮은 집중력으로 인해 책 한권을 끝까지 읽는 경우도 드물다. 보통 3~10권을 같이 읽는다. 당연히 정독을 하지 못하고 발췌독이나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책을 읽어 내린다. 게다가 쉽사리 흥미가 떨어져서, 스스로 기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금세 제풀에 지쳐 포기한다.
양손잡이로써 지금까지 발견한 좋은 점이 있다면 밥을 빨리 먹어야 할 때 양손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 왼손으로 라면을 먹으면서 오른손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건 생각보다 좋다). 아이와 돌 멀리 던지기 놀이를 할 때 왼손으로 하다 팔이 아프면 오른손으로 바꿔서 던진다는 것 정도다. 뭐, 그다지 대단한 건 아닌 듯하며, 왠지 심히 비굴한 합리화도 느껴지는 바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지금 내 아이가 밥을 먹을 때 자기 멋대로 손을 바꾸어가며 먹고 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돌 멀리 던지기 놀이를 할 때, 이 녀석도 왼손으로 던지다 힘들면 오른손으로 던진 게 생각난다. 요 놈. 좋은 거나 좀 닮지. 집사람 말대로 항상 내가 문제다.

아이가 말을 잘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우주에서 살펴보다가, 부모를 ‘찍어서’ 내려왔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아이가 태어날 때 찍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수십년 전에는 자기가 나의 아빠였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있음직한 일 이상이다.
분명 내 아이는 우주에서 지켜보다 부모를 선택해서 내려왔을 것이고, 그 몇 세기 전에는 도리어 나의 아빠였을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얘기지만 이론적으로는 맞고, 용납은 할 수 없지만 수용은 할 수 있는 충분한 설득력이다. 대단히 기특하다.

지금의 나는 그럭저럭 평범한 양손잡이다. 내가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성장을 하지 않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평범한 양손잡이가 되었다.
내 아이도 언젠가는 평범해질 것이다. 내가 그랬었고, 지금 그러니 말이다. 그래도 차츰차츰 이 녀석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세상의 ‘바른손’이 되기를 거부한 용감한 투사여! 갈지자로 갈지라도 갈 길만 가면 된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늘 그렇지만 장난기가 발동해 한참이고 눈을 받아먹는다. 분명 나는 평범하다. 내 아이도 평범할 것이다.
아빠가 바쁜 일 끝나고, 너도 한가하면 함께 1박2일로 지구나 구하러 가자꾸나.
우리는 양손잡이잖니?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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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잡이 2014-01-22 16:44:35
저도 양손잡이입니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아요. 공감^^

2014-01-22 15:50:13
재미있게 글 읽었습니다. 양손잡이 부자의 대활약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