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세이프?
아웃? 세이프?
  • 홍기확
  • 승인 2013.12.30 10: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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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39>

아버지는 숙면의 대가다. 눕기만 하면 바로 잠에 드는 훌륭한 내공을 지니고 계셨다. 물론 힘든 일을 하는 이유도 있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을 나가시기 때문에 신체리듬이 항상 잠을 원하는 이유도 있겠다.
반면 나는 잠에 관해서는 꽤나 예민한 편이다. 낮잠은 좀체 자지 않고 밤에도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 노래를 부르거나 중얼거리면 기어코 잠에 들지 못하고 일어난다.

아버지는 하루를 허투루 살곤 양심의 가책을 느껴, 밤에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집안 살림은 넉넉할 까닭이 없었다. 언제나 손님이 오면 융숭하게 대접하고 사소한 선물까지 손에 들러 보내셨다.
하지만 집안은 어떻게든 돌아갔다. 장남, 장녀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생들까지 모두 시집, 장가를 보냈다. 어떤 방식으로든 두 분은 치열하게 사셨을 것이다. 기록유산으로는 남기지 않으셨지만, 내게 남겨주신 유전자와 무형문화재는 정확히 그랬다고 말해주고 있다.

나도 열심히 사는 편이다. 주말에는 최대한 가족과 함께한다. 남들은 학벌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공부하느냐고 하지만 방송통신대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다. 꽤나 큰 문인단체의 사무국장도 하고, 이렇게 틈틈이 언론사에 글도 올린다. 게다가 밴드활동도 한다.
하지만 일에 소홀하진 않다. 아무리 제 삶을 즐겨도 밥벌이하는 법을 까먹으면 안 된다. 꿈에 마음을 빼앗겨 살아가는 법을 잊어서도 안 된다. 물론 이런 것이 생각보다 힘든 것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진정 숙면에는 어떤 법칙이 있는 걸까? 뭐 항상 그렇듯 수 십 일간 고민했다. 내린 결론은 이렇다.

“세이프(safe)”

야구에서 보면 공을 치고 루(壘, 보루)상에 살아나가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공보다 조금 늦으면 아웃이고 동시에 들어가거나 빨리 도착하면 세이프다. 세이프. 안전(安全)이라는 것이다. 한편 어느 주자든 아웃이 되면 아쉬워하고, 세이프가 되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베이스(base, 기본, 토대)에 발을 적신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금 신발을 고쳐 매고 베이스에 떨어져 뛸 준비를 한다. 두려움은 또 생긴다. 아웃이 될 수도 세이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도록 달려야 한다. 뻔히 아웃이 될 경우에도, 있는 힘껏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설렁설렁 달린다면 먼저 자신에게 혼나고, 다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동료들과 감독에게 혼나며, 마지막으로 응원하고 있는 팬들에게 혼이 난다.

인생이란 항상 아슬아슬하다. 간발의 차로 아웃과 세이프가 갈리는 야구경기와도 같다. 아버지가 매일 숙면을 취했던 건 매일매일 간당간당한 세이프를 경험했기 때문인 듯 하다. 반면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은 건 세이프보다는 아웃당하는 날이 많기 때문 아닐까?

어제는 꿈에 아버지의 발소리가 들렸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갈 때까지, 아버지는 항상 까치발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집안을 돌아다니셨다. 심지어 양말을 신는 소리조차 조심하셨다. 어머니와 자식들이 행여 깨지 않을까 걱정해서였다. 아버지는 내가 고3때 가출한 며칠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3시에 일어났고, 매일매일 세이프를 기록했다.
나도 오늘 새벽에 일어나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종종걸음을 한다. 아내와 아이는 단잠을 자고 있다. 일찍 일어나 새벽을 깨웠지만, 무언가 꼼지락거리며 하루를 길게 살더라도 기껏해야 오늘 하루 세이프정도일 것이다.

아버지는 하루를 허투루 살곤 양심의 가책을 느껴, 밤에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힘껏 달려 체력을 소진하고 장렬하게 세이프를 외치며 숙면을 취하는 사람이었다.
매일매일 숙면을 취하고 싶다. 매일매일 세이프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 달린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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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30 17:00:51
오늘은 꼭 세이프하세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