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풀리면서 봄 냄새가 물씬 다가왔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여기저기서 꽃이 피기 시작하고 바람은 포근해졌다.
생생한 봄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2일 열린 제주시 민속오일장에 다녀왔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오일장진입 도로는 오가는 차들로 꽉 메워졌다.
마침 견학 온 유치원생들을 만나 쫓아다니며 장내를 살펴보니 사람들로 인해 이동이 불편할 정도였다. 나는 유치원 원장을 만나보았다.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토요일마다 박물관, 도서관 등 여기저기 다니는데요, 오늘은 마침 장이 열려 여기로 오게 됐어요.
#이런 데 자주 오시나요?
-얘들은 맞벌이 부부 자녀에요. 토요일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견학을 다니는 거죠. 다음주에는 유채꽃구경을 가볼까 생각중이에요.
#그런데 뭘 그렇게 사셨어요?
-아, 애들 먹을 간식거리랑 과일이에요. 그리고 여기 애들이 고른 액세서리들도 있구요.
봄은 봄인가 보다. 꽃집과 모종, 화분 등을 파는 곳엔 사람이 붐볐다. 나들이 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분식점에는 한두 명씩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체감경기는 예년보다 더 나빠져
나는 덩달아 들뜬 마음에 장내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옷가게 쪽은 통로에 한 두 명의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안쪽은 봄 같지가 않았다. 아직 아침이라 그런 걸까? 밖은 몰려드는 차량으로 도로가 마비될 지경인데 이상했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상인들을 만나보았다.
다음은 이미경(40.야채)씨와의 인터뷰.
#요즘 장사는 잘 되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경기가 풀리고 있다고 보도되고, 봄나물들도 많이 나오는 데 좀 나아지지 않았나요?
-아무래도 겨울보다는 나아졌지만, 사실 작년보다 더 힘들어요. 2,3월엔 거의 놀았어요. 손님이 전혀 없었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시내 곳곳에 마트가 있는데 굳이 오일에 한 번 열리는 이곳에 오려고 하지 않겠죠. 대부분 나들이 하는 기분으로 오거나, 꼭 필요한 것만 사가요. 예를 들어, 좀 넉넉하게 5000원어치 살 것을 필요한 만큼 3000원어치만 사는 거죠.
다른 야채상인들도 “한달에 여섯 장 중 네 번은 망친다. 그리고 요즘 봄나물이 쏟아지면서 시세가 너무 떨어졌다.”고 한탄했다.
청과류는 야채와는 반대로 시세가 너무 비싸 손님들이 물건을 사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 아동복 상인은 “경기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면서 “오일장은 주로 작업복이 많이 나가고 아동복은 출산율 저하로 판매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웰빙 바람으로 잘 팔릴 것 같은 견과류나 잡곡류 역시 “하루에 만원을 벌기가 힘들다.”며 “웰빙은 재래시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나마 수산물만이 경기를 타지 않는 듯 사람들이 붐볐다.
날이 풀리고 있지만 재래시장 상인들의 마음은 아직도 ‘찌뿌둥’해 보인다. “그래도 날이 풀리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상인들의 말이 가슴 아프다.
봄이 찾아왔다. 곳곳에서 봄 문화행사가 열리고 날은 따스해지고 있다. 관광객이 몰리고, 산천은 푸르름을 더한다. 하지만 우리 서민경제의 봄은 언제쯤에나 찾아올까?
하루빨리 온 세상이 진정한 봄을 맞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