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窓] 옛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건물 철거 추진을 바라보며
있는 걸 없애면 그만인가. 있는 걸 없애는 건 참 쉽다. 부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린 그런 일들을 해오면서 숱한 후회를 해왔다. 1994년 제주대 본관 철거가 그렇고, 지난해부터 올해초까지 한창 논란을 부르다 지난 3월 처참하게 파괴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도 그랬다.
건축물의 가치는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더 큰 법이다. 제주대 본관이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더라면 어땠을까. 올해 없어진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역시 그 땅을 지켰더라면 어땠을까. 이들 건물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가슴을 치고 후회를 하곤 한다.
최근 ‘옛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제주지원 건물 철거반대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구성됐다. 추진위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건물 철거의 부당성을 꺼냈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철거 위기를 맞아 철거반대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으나, 이번에 구성된 추진위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추진위는 제주시 원도심을 일대로 한 시민들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는 땅 위의 기억을 내포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어졌고, 그걸 지키려 철거반대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반면 추진위는 원도심의 기억을 담보로 하고 있다. 원도심은 역사를 지닌 곳이다. 추진위는 수산물검역소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주시는 내년도 예산에 사업비 9억원을 투입, 수산물검역소를 없애고 그 자리에 복지회관을 앉힐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3월 수산물검역소를 사들였다. 리모델링 비용은 4억이면 충분할텐데, 9억원이나 들여서 멀쩡한 건축물을 없애고 전혀 다른 건물을 짓는 발상을 이해하기 참 힘들다. 그래서 제주시청 담당자에게 물었다. 건축물안전진단을 받았느냐고. 그러자 담당자 얘기는 “안전진단을 받지는 않았으나 기둥에 철심이 노출돼 있어서 보강이 필요하다”고 한다.
수산물검역소는 공공건물이다. 그리고 원도심의 기억을 간직한 건축물이다. 거기에다 제주 출신 건축가 김석윤씨의 작품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왔다. 제주 출신 건축가들이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은 죄다 무너지고 없다. 남의 것은 보존을 하자고 외치면서 정작 우리 것에 무관심한 우리들이었다. 1950~60년대 제주인들의 작품들은 남아 있질 않다. 아주 뛰어난 작품이어도 철거 앞엔 무용지물이었다. 대신 일제 때 지어진 건축물들은 ‘등록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쯤에서 생각해볼 게 있다. 원도심을 어떻게 부흥을 시킬 것인가이다. 원도심의 부흥은 ‘재생’이 주제가 돼야 한다. 고도성장기 시절 ‘도시재생’은 재건축이 화두였다. 그냥 부수는 방식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 지역을 통째로 없애는 재개발이 떠올랐다. 재개발은 기억을 100% 없애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는 재건축도 아니고, 재개발도 아니다. 원도심에 ‘재활력’을 불어넣는 게 도시재생이다. 재활력은 원도심의 기억을 간직한 이들간의 커뮤니티가 중심임은 물론이다.
‘커뮤니티형 도시재생’은 지역사회의 주민과 공무원이 협력을 해서 만들어야 한다. 일부 이해 관계에 얽혀서 도시를 뚝딱 재단해서는 안된다. ‘커뮤니티형 도시재생’은 재활성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 도시재활성화는 기존 도시구조를 파괴하지 않고, 기존 건축물을 재보수하는 걸 말한다.
어쩌면 추진위가 수산물검역소 철거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는 건 ‘커뮤니티형 도시재생’을 위한 첫 단추로 느껴진다. 작은 시민운동이 원도심을 살릴 수 있는 하나의 제안을 하는 것이라 본다.
행정을 맡는 공무원들의 눈엔 수산물검역소가 하찮게 보일 수 있으나 좀 더 달리 생각을 해보자. 없애지 않고 살릴 경우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지를 생각해봤으면 한다. 도시재생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재건축도, 재개발도 아니라는 사실을 한 번 더 명심했으면 한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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