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삶과 소주
보편적인 삶과 소주
  • 홍기확
  • 승인 2013.10.22 09: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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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35>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어쩌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는다 해도
서로 모른 채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4인조 밴드인 “브로콜리너마저”의 2008년 발표곡, 『보편적인 노래』의 처음과 후렴구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항상 두 가지가 생각난다.
첫 번째는 ‘이 곡의 드럼 부분을 치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겠구나.’
두 번째는 엉뚱하게도 소주다.

보편적인 어른이 되고 싶었다. 평범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대강 얼버무려 10줄 정도면 인생의 첫차와 막차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정리되도록 살고 싶었다. 아무리 세상이 후벼 파더라도 이상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것처럼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天才)’로 남고 싶었다. 혹여 세상이 나를 어거지로 어디론가 견인해 가더라도 중국 당나라의 문호 한유가 쓴 『백이송(伯夷頌)』의 백이, 숙제와 같이 特立獨行(특립독행)하며, 세상의 흐름과 풍조에 좌우되지 않고 나만의 소신을 지키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살다보니 결국, 가끔씩 소주다.

내 어릴 적 아버지는 365일 소주를 드셨다. 윤년이라 일년이 366일이었던 해도 있었는데 이 때는 366일 소주를 드셨다.
아버지는 일을 다녀오시면 씻자마자 신문을 펼쳐놓고 TV를 켜고 소주를 마시며 점심을 드셨다. 종래 보기드믄 멀티플레이어다. 신문은 보수니 진보니 신경 쓰지 않는다. 판촉원이 어머니에게 어떤 선물을 주는가, 여성잡지를 무료로 넣어주는가에 따라 1년간 정기 구독하는 신문이 달라진다. TV를 볼 때는 항상 드라마다. 항상이라고 했다. 지독한 드라마 광이다. 점심은 생선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시장에서 공짜로 얻어온 생선 머리, 내장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어머니는 지구인이 생선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요리를 할 수 있다. 가끔은 외계인이 먹을 만한 생선의 부속으로도 요리를 해낸다.
그리고 소주. 밥상의 최고봉은 바로 소주병이다.

아버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부분 혼자 소주를 드셨다. 남대문 시장에서 생선배달을 하는 여타 배달의 민족 동료들을 제외하곤 그 흔한 동네 술친구 하나 없었다. 서울이 타향이라 남들 다 있는 부X 친구도 없다. 물론 새벽 3시에 시장에 나가 오전 11시가 넘어 들어온 후 낮잠을 자는 패턴인지라 동네 한량들을 제외하곤 친구 삼을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래도 나는 99%가 아버지의 성격 탓이라고 생각한다. 원채 친구를 사귀려 하지 않는다.

낮 시간 내내 집에 있는 아버지.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아버지는 소주 한 병을 들고 안방의 문을 닫고는 그 곳에 웅크렸다. 그러곤 친구들이 가고 나서야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셨다. 행여 아버지가 집에서 직업 없이 노는 것으로 비칠까봐 그랬을 것이다.
보편적인 직업을 가지지 않은 아버지.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아버지. 그런 남편에게 경조사가 있을 때 넥타이를 대신 매 주려고 해도 역시 방법을 모르는 어머니. 내가 ‘보편적인’ 직업을 택하고, 넥타이라는 목걸이를 상징적으로 달게 되었을 때 가장 기뻐했을 사람은 부모님이지 않았을까?
물론 넥타이는 맸다가 풀었다가 했다. 이번 직장이 다섯 번째 직장이다.

365일 보편적인 일상의 아버지. 독립을 하고 난 후, 한 해도 보편적이지 않았던 나. 이런 내가 그래도, 아직까지, 힘닿는 데까지 보편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야한 농담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주다.
아무리 흔들리고 휘청거려도 보편적인 어른처럼 견딘다. 자식이 있는 이상 보편적인 아버지처럼 행동해야 한다. 내 상황이 보편적이지 않고 특별하더라도, 보편적인 어른처럼, 보편적인 아버지처럼 보여야 한다. 소신대로 세상을 뒤엎거나 훌쩍 뛰어오르고 싶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영장류 몇몇을 쥐어박고 싶거나, 그 영장류가 자식이 될지라도 보편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소주다.
친구를 덜 자주 만나더라도 집에서 소주를 먹는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내 공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있었다는 것은 역사에 불과하다. 울타리 밖을 자꾸 뛰쳐나가면 존재감이 희박해 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울타리는 점점 높아져 넘지 못하게 되어, 밖에서 안을 바라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술친구도 없이, 집에서 혼자 소주만 드시다니.

보편적인 삶을 살고 싶다. 내 세상의 마지막 날에 보편적이었던 일생을 소주 두 병쯤으로, 가능하다면 집사람과 아이와 함께 반추하고 싶다. 지금 보편적인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 해도 상관없다. 길이 꼬불꼬불하다고 해서 내 인생이 꼬불꼬불한 것은 아니다. 같이 걷는 사람들이 뒤틀려 있다고 해서 내가 뒤틀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때까지 소주와 함께 흔들려도 좋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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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1 11:04:53
소주와 함께 흔들리며 보편적인 삶을 살아갈 평범한 아빠들을 응원합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삶으로 마무리가 되실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