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의 영광이 남아있는 곳 '안트베르펜(Antwerpen)'
플랑드르의 영광이 남아있는 곳 '안트베르펜(Antwerpen)'
  • 조미영
  • 승인 2013.10.1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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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의 여행&일상] <6>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식의 대부분은 늘 우리를 답답하게 한다. 그런데 가끔 체증을 가라앉게 할 때가 있다. 바로 태극전사들의 땀의 결실이다. 최근 어김없이 어지러운 정치권뉴스를 뚫고 승전보가 날아왔다. 2013 기계체조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양학선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는 뉴스다. 대회가 열리는 앤트워프까지 날아가 실시간으로 알리는 기자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그런데 가끔 난 젯밥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경기나 대회 결과보다 소식의 말미에 던져지는 도시 이름에 더 눈이 초롱거리곤 한다. 국제경기나 회의를 개최하는 도시는 대부분 유명한 도시들이기 십상이지만 가끔 낯선 이름에 어딘가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혹은 내가 갔던 곳이면 관심이 더 가기도 한다. 이번엔 후자다. 우연히 만났던 도시 벨기에의 안트베르펜(Antwerpen)을 또 이렇게 우연히 기억해내게 되었다.

 

안트베르펜 마르크트 광장

100일간의 유럽여행 계획 중 어디에도 안트베르펜은 없었다. 그런데 난 이름도 생소한 이 도시를 경유하고서야 브뤼셀로 갈 수 있었다. 이유인즉 유럽의 철도파업 때문이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바로 브뤼셀로 가야하는데 파업으로 운행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급하게 버스를 알아봤으나 이미 표는 동나고 없다. 뉴스나 신문 등으로 이미 전해졌으나 네델란드어를 모르는 나 같은 까막눈의 여행객들에겐 큰 낭패였다. 요즘 같은 스마트폰 시대도 아니고 보니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일단 국경근처 도시 어디로든 이동해서 그 곳에서 버스표를 구하고 국경을 넘는 것이었다. 일단 지도를 펴고 남쪽을 살펴봤다. 뭔가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띈다. 헤이그(Dan Haag)다. ‘이준열사가 순국한 곳’이라는 국사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무사히 헤이그에 도착 후 벨기에행 버스를 알아봤다. 그런데 여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내일 오전에나 그것도 낯선 안트베르펜 행이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지라 무작정 표를 사고 다음날 아침 버스로 앤트베르펜으로 향했다.

영어로는 ‘앤트워프’, 프랑스어로는 ‘앙베르’, 이 곳 말로는 ‘안트베르펜’이라는 이곳은 벨기에 제2의 도시로 북부 플랑드르 지방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여행책자의 짧은 서술과 그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함 탓에 별로 끌리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창구로 달려가 가장 빠른 브뤼셀행 버스표를 알아봤다. 오후나 돼서야 좌석이 있단다. 두, 세 시간쯤 공백이 남는다. 점심도 먹어야 하니 터미널을 나왔다.

그런데 도시는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다. 고전적인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고 사람과 차의 통행량이 꽤 많지만 차분했다. 멀리 뾰족한 탑이 보인다. 안내서에 나온 노트르담 성모대성당이다. 123미터의 높은 첨탑은 화려함과 고딕양식 특유의 날카로움을 자랑하며 서 있다. 이를 이정표 삼아 걸어가 다다른 입구는 경건하고 웅장했다. 지금 사진으로 되새겨 봐도 멋있는 이곳을 내가 왜 들어가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시간 없음에 더해 성당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감히 들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걸까? 나중에 보니 그 유명한 소설(우리에겐 애니메이션으로 더 잘 알려진)「플란더스의 개」의 마지막 배경이 되었던 성당이다. 더욱이 주인공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그림이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하니 후회를 넘어 한스러울 노릇이다.

 

고딕양식의 성당 첨탑과 성모 대성당

성당을 돌아 나오니 마르크트광장이 나온다. 넓은 광장을 에워싼 건물들이 심상치 않다. 정 중앙에 각 나라의 국기가 걸린 건물은 시청사인 듯 하고 네델란드풍 건물들이 벽을 이루며 나란히 서있는데 이는 동업조합인 길드건물인 것 같다. 그 가운데로 동상이 서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좀 섬뜩하다. 물을 내뿜는 동상의 분수가 잘린 손 모양이다. 사연인즉 브라보라는 청년이 강을 건널 때마다 통행세를 과하게 징수하던 거인 앙티곤의 횡포를 보다 못해 그의 손을 잘라 강에 던졌다는데서 온 것이다. 도시 이름도 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손을 던지다 (hant werpen)'에서 지금의 ’Antwerpen‘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이야 어찌되었건 용맹한 노르만인들의 후세답다.

큰 길을 따라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에 나갔더니 강이 나온다. 물과 마주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역시 ‘H2O(물)’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어떤 인자를 갖고 있는 듯하다. 덕분인지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강 옆으로 듬직한 고성(古城)이 있다. 안내책자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곳이다. 그래도 범상치 않은 모습에 그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사진을 찍었다. 훗날 자료를 찾아보니 ‘steen'이라는 중세에 지어진 요새로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다. 한때 감옥으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현재는 개조하여 국립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왼쪽부터 시청사 건물과 브라보상, 동업조합 길드 건물

길을 되돌아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뒷골목의 어스름을 생각했는데 너무도 잘 단장되고 깨끗하다. 창문 발코니에 꽃 화분마저 정갈하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골목길 오브제를 건질 수 없었다. 깨끗함이 오히려 아쉬움을 주게 될 줄이야. 구도심의 길들이 대부분 그렇듯 골목은 다시 마르크트광장으로 연결되어진다. 작은 지류를 따라 흐르던 물줄기가 큰 강에서 합류되듯 광장은 사람이 모여들게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광장은 의견을 교류하는 장소로 때론 욕망이 분출되는 축제장으로 안성맞춤이다.

 

스틴성, 차량통행이 많았지만 차분한 느낌이 든다.

보행자전용도로인 메이어거리에 이르렀다. 15세기 후반 최대의 무역항이자 다이아몬드거래소였던 명성이 아직도 생생해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던 도시를 복구해 현재의 번영을 되찾았다는데 유럽에서 가장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는 쇼핑가답게 범접하기 어려운 화려함을 갖췄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게 하는 마차가 지난다. 관광객을 태우고 관광지와 호텔 등을 오가는데 이 곳 분위기와 잘 맞다.

 

창문 앞 꽃이 인상적인 뒷골목 건물과 시내를 돌아다니는 마차.

하지만 난 반 다이크의 동상도 왕립미술관도 모두 모르고 지나쳤다. 브뤼셀행 버스 시간이 임박해 뛰다시피 걸었던 길은 이렇듯 그저 아득하게 지나쳤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대치 않은 좋은 구경거리에 대한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가끔 제주를 찾은 올레꾼들이 그저 코스 완주에만 목적을 두고 쉼 없이 앞만 보고 걷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거나 그 지역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 뜻밖의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데도 기회를 다 놓치고 만다. 여행을 전투 치르듯 하지말자. 예상 밖의 만남과 여유에 여행의 즐거움이 있다.

 

 

<프로필>
전 과천마당극제 기획·홍보
전 한미합동공연 ‘바리공주와 생명수’ 협력 연출
전 마을 만들기 전문위원
현 제주특별자치도승마협회 이사
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프리랜서 문화기획 및 여행 작가
저서 <인도차이나-낯선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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