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치는 법
그물을 치는 법
  • 홍기확
  • 승인 2013.10.07 10: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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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34>

한 초등학생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시작과 동시에 속사포처럼 아이와 나눈 대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넌 꿈이 뭐니?”
“성공하고 싶어요.”
“너 성공이 뭔지 아니?”
“위대한 사람이 되는 거요.”
“어떤 사람이 위대한 사람일까?”
“어떤 것이든지 최고가 되는 거죠.”
“최고가 되면 행복할까? 너 지금 행복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안 행복해요.”
“삼촌은 지금 행복해. 미래에 행복할지는 모르겠다.”
“위대하고 최고가 되어야 행복해지는 것 아닌가요?”
“그건 최고가 안 돼봐서 모르겠다. 어쨌든 난 지금이 좋아.”

“사실 만화가가 될 거에요.”
“만화가는 그림만 그려야 해.”
“그래도 만화가가 되고 싶어요.”
“정 그렇다면 그림만 그리는 상상을 해 봐.”
“흠…. 생각해 보니 계속 그림만 그리는 건 좀….”
“그런 생각이라면 만화를 그리면서 다른 걸 좀 해봐.”
“바빠요. 태권도, 음악, 영어학원 다녀오면 숙제해야 해요.”
“재미없는 학원 끊고 정말 배우고 싶은 학원들을 등록하면?”
“엄마한테 혼나요.”
“삼촌도 엄마, 아빠에게 혼나면서 자랐다.”
“…….”
“엄마한테 혼나는 게 물론 무서웠지. 하지만 다른 걸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면 차라리 한번쯤 혼나고 하는 것도 괜찮아. 앞으로도 수 백 번 혼날 텐데 그 까짓것 미리 한 번 혼난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했다. 누구나 자기의 분야에서 1만 시간을 집중해 노력하면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법칙이다. 이러한 논리는 사실 한 실험 및 관찰에 의해 나온 이론이다.
안데르스 에릭손이라는 사람은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이들은 다섯 살 정도부터 음악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비슷하게 연습을 했지만 여덟 살이 되자 실력에 큰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그룹을 분류해 보았더니 평범한 학생은 4천 시간, 그저 잘 하는 학생들은 8천 시간, 엘리트 그룹은 1만 시간을 연습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엘리트 그룹의 어느 누구도 8천 시간을 연습하거나 그 이하의 시간을 연습한 아이는 없었다. 결국 천재는 태어나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이란 숫자에 딱히 느낌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1만 시간은 하루 3시간씩이라면 10년, 6시간씩이라면 5년, 12시간씩이라면 2년 6개월이 걸리는 시간이다. 물론 하루도 빠짐없이 투자하는 것을 가정한 것이니, 격일로 한다면 하루 3시간씩, 20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나는 1만 시간을 통해 될 수 있는 성공한 대가(大家, mastery)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가(大家)가 되기 위한 대가(代價)를 생각해 보려 함이다.
다음으로 아이들에게 성인의 시간에 관한 절대적 관점으로, 아이의 상대적인 시간을 일도양단(一刀兩斷)함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성인의 관점에서 1만 시간은 성공에 투자하기 위한 기나긴 시간이지만, 아이들에게 1만 시간은 앞으로 삶을 준비하는 20여년 중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이다. 아이들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고, 연속적인 시간을 강요받아서도 안 된다.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16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을 부정한다. 25세에 피사대학의 교수신분이었던 그는 기존의 진리를 깼던 것이다. 익히 알려진 유명한 피사의 사탑 실험을 통해서이다.
그는 피사의 사탑(斜塔)에서 가벼운 공과 그 10배 무기의 공을 동시에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두 공은 무거운 물체가 더 빨리 떨어진다는 그간의 통념과는 달리 동시에 떨어졌다고 한다. 물론 위 실험은 거짓, 게다가 오류다.
위 실험은 공기의 저항이 없는 진공상태에서만 타당하다. 9.8㎧의 중력을 받는 지구에서, 공기의 저항을 받는 면적이 커다란 10배 크기의 공은 분명 조그마한 공보다 마찰력이 크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작은 공이 먼저 떨어지고, 마찰을 크게 받은 큰 공은 늦게 떨어진다.
과학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삶의 성패(成敗)는 공의 크기, 시간의 투자가 아닌 마찰, 좌충우돌하는 삶의 격동과 경험에 있다는 것이다.

앞선 실험에서 과연 1만 시간을 연습한 어린이들 모두가 엘리트가 된 것이 타당할까? 왜 4천 시간을 연습한 어린이들은 평범한 사람으로 “분류”되어야 했을까? 4천 시간을 연습한 후 다른 것이 하고 싶어서 6천 시간을 딴 짓을 한 어린이들의 삶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1천 시간을 여섯 번 씩, 6천 시간을 딴 짓 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성인이 되기까지 1만 시간을 통해 이룰 싹을 여섯 군데에나 뿌린 것이다. 이들이 나중에도 과연 “평범”할 수밖에 없을까?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같은 시간을 살면서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의 8살 모든 어린이들이 미래에 음악가가 되리라는 전제를 깔면 1만 시간의 법칙은 타당하다. 하지만 8살 어린이들에게 인생의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성공했는지를 중간점검하기 위한 잣대를 기울인다면 잔인한 것이 아닌가?
모든 초등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꼭 물어본다.

“네 꿈은 뭐니?”

8~13살. 어른들은 어린이를 위한 자기계발서까지 만들어서 ‘꿈을 이루는 40가지 이야기’, ‘여자라면 000처럼’이라며 꿈을 이루라고만 한다. 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지금 단지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교육학에서 흔히 어린이는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이 풍부한 존재라고 얘기한다. 어디로 튈지, 어떻게 자랄지 모를 정도로 예측하기 힘들지만, 그만큼 잠재력도 넘친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시간이라는 줄자를 대기에는 잠재력이란 친구가 섭섭할 듯하다. 어린이는 단 한권의 책으로 인생의 행보를 정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말 한 마디로 그 사람을 멘토로 삼아 닮아갈 수도 있다.
이렇듯 결정적인 순간과, 만남과, 대화를 포함한 사건들을 ‘마찰’이라고 한다. 1만 시간은 혹여 성인에게는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마찰들이 필요할 뿐이다. 좌절하고 일어서고, 크게 울고 크게 웃고. 이런 일련의 충격적인 마찰 경험들로 아이들은 계단식으로 성장을 한다.

어린 시절 쉼 없는 1만 시간의 전력투구보다는 천 시간짜리의 다양한 경험을 통한 씨 부리기가 중요하다. 성공한 거물급 롤 모델을 제시해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강요하는 것 보다, 꿈은 어떤 것이고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인지 제시해 주어야 한다. 고기를 잡아서 보여주거나 안겨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편 고기를 잡는 방법에 있어서도 낚시를 통해 노리는 품종의 물고기를 오랜 시간 기다려 정확히 낚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너무 일찍 한 놈을 공략하기에는 아이의 잠재력이 아쉽다. 그물을 펼치는 방법도 좋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물을 펼치더라도 바다에 있는 고기를 다 잡을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물은 최대한 넓게 펼쳐서 다양한 고기를 낚아야 한다. 그 후 잡힌 이런저런 고기들을 보며 경험하고, 성인이 되서는 향후 선호하는 녀석을 잡으면 된다.

요즘 어린이들은 바쁘다. 이 말은 시간에 쫓긴다는 느낌이 강하다. 어차피 죽을 인생 바쁘게 달릴 필요가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반면 어떤 어린이들은 바쁘지 않고 할 일이 많다. 아이 엄마들과 얘기를 해 보면 기본적으로 영어학원과 음악학원을 가야하고, 옵션으로 미술, 태권도 등을 보내야 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살짝 물어본다. 재미있냐고. 어떤 건 재미있고, 어떤 건 가기 싫다고 한다. 가기 싫으면 엄마에게 안 다니고 싶다고 말하라고 한다. 그러면 천편일률 대답이 같다. 엄마한테 혼나.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2012년 방송통신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일일평균 TV시청시간이 3시간 9분,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1시간 57분이 되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더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인가?
다양한 경험으로 여러 꿈들을 꾸며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하는데, 이른바 기본적인 일들 때문에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또 일찍 꿈을 정해버린다. 경험도 적고, 생각할 시간도 부족해서이다. 그리곤 너무나 간단하게 꿈을 이루려고만 한다. 정해진 길을 제시하는 어린이 자기계발서를 통해서 말이다.

내 아이는 최대한 여러 번 넘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씩씩하게 일어서면 좋겠다. 수많은 마찰에 의해 상처받고, 힘든 고개도 여러 번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힘차게 순간순간 고비를 넘으면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기본적 일상인 TV를 보지 않고,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영어니 음악이니를 가르치지 않는다. 아직은 다른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아이의 마음을 따른다. 대신 가족끼리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만들고, 서로 노래를 부르며, 같이 악기를 두드리고, 함께 춤을 춘다.

한석봉의 엄마와 관련된 일화가 생각난다.
한석봉이 글씨를 배우러 갔다가 엄마가 보고 싶어 돌아온다. 그러자 석봉의 엄마는 불을 끈 후 글씨를 쓰라고 하곤 본인은 떡을 썬다. 불을 켠 후 확인해 본다. 떡을 써는 건 단순한 일이라 고르게 잘라졌지만, 석봉은 비뚤비뚤 글씨가 말이 아니다. 당연하다. 공평한 경쟁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꾸짖는다.

“내 떡처럼 불을 끄고도 글을 고르게 쓸 수 있을 때 돌아와라.”

석봉은 어린 나이에 1만 시간 이상을 글쓰기에 전념하여 명필가가 된다. 석봉의 일기인 『석봉필론(石峯筆論)』에서 “두 서첩(왕희지의 난정서와 동방삭전)을 놓고 오늘 한 글자를 쓰고 내일 열 글자를 배우며 달마다 연습하니 해마다 성과가 나타났다.”고 쓴 것처럼 죽을힘을 다해 반복연습을 했다. 하지만 지금 석봉체를 쓰는 서예가는 거의 없다. 정서(正書)체로서 변화가 없고, 그야말로 또박또박 쓰는 글씨체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책을 베끼거나 판본(板本)을 만들 때 정도만 쓰였다. 하나만 하면 통달할 수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바르게 쓰기 위한 기계적 훈련은 무궁한 잠재력을 죽일 수 있다.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남들 다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하다가 놓치는 아이의 소중한 가능성들이 안타깝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예전 농사꾼들도 콩만 심지 않았다는 것이다. 팥도 심었다. 신장(腎臟)을 콩팥이라고도 한다. 하나를 떼도 사람이 죽는 건 아니다. 하지만 뜀박질을 할 수는 없다. 평생을 걸을 수밖에 없다.
뜀박질을 해야 할 때는 해야 하고, 넘어져서 다쳐보기도 해야 하는데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불공평한 일 아닌가? 그것을 부모들이 박탈하고 있다면 사랑과 교육의 방식을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얼마 전 병원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도 꿈이 뭐냐고 물었다. 대답을 들으니 유쾌하다.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은데다가, 하도 자주 바뀌어서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지금은 제빵사가 되고 싶어요.”

기특하다. 잘 자라고 있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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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풍 2013-10-07 11: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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