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농부와 물
농부와 물
  • 박종순
  • 승인 2013.08.21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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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귀농일기] <15>

도로 위를 오고 가는 1톤 트럭의 짐칸에는 커다란 물통이 실려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언젠가부터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2개씩이나 싣고 다니기까지 한다.

며칠 전 인가보다.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와 수박 등을 가지고 처갓집에 들렸더니 마당에 큰 물통 2개에 물을 가득 담아두고 과수원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되는 가뭄에 아파트조차도 하루 21시간씩 제한급수를 받아와서 불편을 겪고 있고, 과수원엔 농업용수가 나오지 않아 손 씻을 물조차 없어 어쩔 줄을 모르고 손을 놓고 있는 차에 이런 모습을 보니 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사무소에서는 급수탑사용 안내가 메시지로 왔었지만 트럭이 없는 나로서는 소용이 없는 알림이었고, 옆 밭의 자동 분무기의 시원한 물 뿌림은 지하수가 없는 내 형편으로는 따를 수가 없어 자연히 먼 산 불구경 하듯이 부러움 속에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주변 학교 운동장이나 월드컵경기장 잔디에 물을 주고 있거나 공공기관에서 하루 종일 물이 나오는 것을 보면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고, 물로 인한 이웃 간의 다툼을 귀로 들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얼마나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가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서귀포시장의 취임식에서 비를 내려 달라는 말이 통했는지 오랜만에 약간의 비가 온 것으로도 일손을 도운듯하고, 기상대에서는 일주일내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도 있어 그날이 기다려지기도 하는 애타는 심정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 물부터 받아야 하겠기에 곧장 과수원으로 달려가 수도꼭지를 돌려 보아도 소식이 없고, 물통은 언제부터 인지 바닥을 들어내고 있다.

그제야 내가 아무리 초보 농군 이지만 그간 타이벡 설치 하는데만 신경을 쓰고, 과수원을 돌보지 않았음에 깜짝 놀랐다.

찬찬히 과원을 둘러보며 메모하면서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미 몇 십 개의 귤나무는 잎이 노랗게 물들이면서 시들어가고 있고 가지 일부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잎은 목이 말라 오그라들고 있고 열매는 열과와 일사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과원 주변 곳곳에 심어둔 관상용호박 뿐만 아니고, 각종 채소가 이미 죽었거나 말라 가서 아예 잎은 없어진지 오래된 것이 부지기수이다.

신문이나 매스컴, TV뉴스에서 수시로 가뭄소식이나 열대야에 관한 기록경신소식도 들었고 대책도 들었지만, 듣기만 했을 뿐 내게는 먼 나라 예기로 들었던 것 같다.

귀농·귀촌 교육시 날씨와 기온 등 수시로 반복해 들었건만 실지로 당하고 보니 기후가 농사짓는데 얼마나 필요한지 터득한 것 같아 차후에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뒤늦게나마 주위 지인에게 전화로 이런 사실을 알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문을 구했다.

물을 본인의 트럭으로 길어 주겠다고 연락이 오기도하고, 미약하나마 졸졸 나오는 물을 지금이라도 받아 하루종일 나무 주변에 주라고 하고, 약을 뿌려 열과가 더 이상 발생 않도록 하라는 등 고마운 말씀이 전해온다.

물을 받으려니 어느 시간대에 물이 나오는지, 자동 급수시설과 관수시설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혹시라도 시설이 파손된 것이 없는지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도 많고, 고치려니 농자재 센터에서 부속을 사서 교체해야 하는 어려움도 발생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처음으로 발생하는 일들이 나를 멈칫하게 만들면서, 다들 바쁜데 매번 와서 고쳐달라고 할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사건 사고들이 연일 터지면서 포기할까도 생각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말라가는 귤나무가 나를 지켜보며 물을 달라는 애타는 모습을 보면 포기도 못하고 집사람과 새벽 동트기 전에 나가 겨우 받은 반말 통으로 급한 나무 밑동에 물을 주며 버티고 있다.

타이벡 밑에도 흙이 말라 푸석푸석해 지면서 물 달라는 나무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파온다. 관수시설이 있지만 물이 없고, 물이 조금 있다 하더라도 파손된 부속을 갈아야하고 사용 방법을 모르니 집사람과 하늘에 비만 내리길 빌 뿐이다.

이번 가뭄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

어렴풋이나마 돌아오는 내년에는 금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아마도 올해의 경험이 내게 스승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그래! 귤나무야! 살아만다오!

금년은 내가 초보라 이렇게 대하지만 내년에는 너를 행복하게 해줄거야.

< 프로필>
부산 출신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서귀포 남원으로 전입
1기 서귀포시 귀농·귀촌교육수료
브랜드 돌코랑’ 상표등록
희망감귤체험농장 출발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출간
e-mail: rkahap@naver.com
블로그: http://rkahap.blog.me
닉네임귤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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