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터질 거야
언젠가 터질 거야
  • 홍기확
  • 승인 2013.08.16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32>

요즘 들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가족들의 사진은 찍어도 내 사진은 그다지 자주 찍지 않는데 가끔 사진의 내 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담겨 있다. 웃는 모습이나, 살짝 건방져 보이지만 세상을 달관한 듯한 여유, 수줍은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 모두 젊었을 적의 아버지와 똑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태해 질 때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무한 반복하던 말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옆에 서서 코치를 해주는 것 같다.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녹슨 칼날이라도 가끔은 갈아 주고, 필요할 때에는 완벽주의자로 부활한다.

“나는 가족을 위해 목숨을 떨어 바쳐서 일을 했다.”

한숨을 쉰다. 아버지처럼 목숨을 걸어 본 적이 없다. 치열함이 정도의 차이라면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심지어 그 길을 가지 못할 수도, 안 갈 수도 있다. 가족은 지칠 때 기대는 대상이 아닌 것처럼, 함부로 그 구성원들을 위해 목숨을 걸어서도 안 된다. 아버지로써 가족을 위해 살았다는 지나친 강조의 표현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정말 목숨을 걸고 일을 하셨다. 나와는 가치관이 다르지만 내 아버지라 봐주겠다.
하지만 하루하루 치열했던 아버지도 한 숨을 돌릴 때가 있었으니 장난칠 때이다.

장난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어머니가 용돈을 달라고 하면 궁시렁대며 비상한 기억력을 동원해 일주일간 어머니가 쓴 돈을 읊어댄다. 일주일은 7일이다. 하루하루 돈 쓴걸 요모조모 얘기해 나가면 어머니는 점점 열이 받는다. 가끔은 계산기도 누르며 한다. 심지어 무슨 카드로 긁었는지까지 얘기하며 어머니를 긁어댄다. 거의 마지막 순간 어머니는 폭발해서 “나가서 돈 벌어 올 거야!”라고 외치며 버럭 화를 낸다.
이정도 되면 아버지의 얼굴에는 넉넉한 웃음꽃이 핀다. 어머니를 제대로 놀렸다는 기쁨에 득의만만한 거다. 아버지는 지갑에서 카드와 현금을 꺼내 방바닥에 놓고는, 스윽 화단의 잡초를 뽑으러 나간다. 그러면 이내 상황은 종료되고 어머니도 동네 아줌마들과의 결전, 화투에 필요한 자금을 가방에 챙겨 나간다. 어머니의 얼굴은 빙그레. 우리 집은 이내 평화가 든다.

치열하게 목숨 걸고 사는 인생에서의 장난.
장난을 통한 여유 한 숨과,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웃음이란 피로회복제.

누구나 어느 정도는 남들을 위해 산다. 심지어 가족을 위해, 남을 위해 목숨 걸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가끔은 멈춰 서서 인생의 악센트, 추임새를 넣어 주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붙잡고, 잠시 여유를 부릴 방법들을 찾아 누려야 한다. 쉼 없이 계속 자신을 절차탁마해서 날카로워 지는 것은 좋지만, 때론 자신과 주변을 안아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예리한 비수로는 자기 자신을, 주변을 안을 수 없다.
삶에 지쳤다면 먼저 자신을 바라보아 혼자만 너무 심각하게 사는 건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진한 장난과 농담으로 파격을 찾는 것도 괜찮다. 그래도 잘 되지 않는다면 자기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변사람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구인이 71억 명 쯤 되는데 설마 그 중에 자기 도와줄 사람 몇 명 못 찾겠는가?

나는 최근 아이와 아내에게 장난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너무 심각해져 있다. 이 글은 한편으로는 나에게 하는 이야기다. 아이와 아내, 두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휴(休)~.
어제는 이런 생각을 하며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했다. 들어가자마자 아이도 더위에 지쳤는지 이불에 엎어져 있었다. 반갑다고 달라붙는데 몸이 끈적끈적하다고 내쳤다. 아무래도 가장 급한 일은 상쾌하게 씻는 일인 듯싶었다. 샤워를 하며 아이도 씻기고 나선 뒹굴뒹굴대며 장난을 걸었다. 장난에 대한 아이의 반응은 언제나 확실하다. 그게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는 오랜만에 아빠와 장난을 치니 흥분했는지 올라타고 껴안고 난리다.

활화산(活火山)과 휴화산(休火山)의 차이는 간단하다. 활화산은 살아있고, 휴화산은 쉬고 있다. 그런데 휴화산이 폭발하면 활화산이 되고, 활화산이 쉬게 되면 휴화산이 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활화산이든 휴화산이든 본질은 “화산(火山)”이다. 화산은 어찌 보면 역동적으로 끓고 있지만 조용할 땐 고요한 한 사람의 삶과도 같다. 게다가 두 모습이 무한히 반복된다.
나는, 지금 당장은 휴화산이다. 화산은 미세한 지각변동을 발판으로 삼아 폭발한다. 아이와 장난 하루 진하게 쳤다고 우선은 힘이 불끈 솟는다. 쉼표를 찍었다. 왠지 터질 것 같다.
터지고 나서는, 세상에 쥐어 터지더라도 끓어오르는 용암이 식을 때까지 오랫동안 활화산일 것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폭발 시기는 나도 모른다. 다만 언젠가 터질 것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