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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장
아버지의 일기장
  • 홍기확
  • 승인 2013.08.12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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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30>

아이가 아팠던 경험, 병원에 입원시킨 경험은 어느 부모에게나 있다. 기운이 쏙 빠진 아이의 손에 바늘을 찌를 때 우는 아이, 링거를 맞고 있는 고사리 손을 바라볼 땐 진정 가슴이 아린다. 아이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 대신 아팠으면 하는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쳐야 한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아이 대신 아프면 내 부모의 마음이 아프다.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본인 역시도 부모의 안타깝고 소중한 자식이다.
나도 아이가 아팠을 때 속으로는 대신 아팠으면 했지만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이의 고통을 그저 바라보며, 스스로 견뎌서 모진 공포를 이기길 바랐다. 이 친구는 평생을 살면서 어떤 의미로든, 방식으로든 계속 아플 것이다. 평생을 아이 대신 아플 수는 없다.
앞으로도 나는 자식이 아프더라도 결코 대신 아파줄 생각이 없다. 세상의 주인공이 바로 나인 것처럼 아이의 세상은 아이가 주인공이다. 인생에 대역이 어디 있던가? 아픔을 견딜 수 있는 훈련을 시키고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우리는 평행선에서 “여이, 땅!” 하며 동시에 출발했다. 물론 아이가 어렸을 때는 업어 가고, 손을 잡고 같이 갔다. 하지만 아이가 혼자 길을 떠날 나이가 되면 모질게 내려놓을 작정이다. 그 때는 아이도 미안한 마음 없이 내 손을 뿌리치고 당당히 혼자 걷길 바란다.
그래도 아이는 부모가 못내 부담될 것이다. 철이 들 때쯤 그런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키워준 은혜를 미안해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할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혼자 서게 됐을 때, 철이 들었을 때 부모를 바라보는 관점을 살짝 제시해 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철 지나고 나서 효도를 이야기한다.

부모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고 한다. 지극히 맞는 원론적인 얘기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불만의 여지가 없다.
또한 부모에게 효도를 하라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배웠다. 배고픈 부모를 위해 허벅지 살을 베어서 먹였다는 둥, 부모님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는 고사(古事)까지. 하지만 효도를 하라고 사례를 늘어놓기만 하지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내놓지 않는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란 건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라는 책 제목의 질문처럼 “소유”가 아닌 “존재”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다. 그리고 그의 책, 『사랑의 기술』의 한 구절처럼 사랑하고 싶은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만들어낸다.

『어린애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고
성숙한 어른의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다.』

이토록 무조건적인 커다란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벌써부터 결론을 짓고 싶다. 부모님의 은혜는 본인의 힘으로 이 생애에, 결코 받은 만큼 갚을 수 없다.
한때 부모님의 은혜를 빚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모님께 받은 은혜는 빚이 아닌 “유산(遺産)”이다. 내가 아이를 부모님보다 잘 키우면 부모님께 받은 은혜, 즉 유산을 더 많이 물려주는 일이 된다. 따라서 내 아이가 자식을 낳아 키울 때에는 나에게 받은 커다란 유산을 전달하기만 하면 되고, 여력이 남으면 본인이 만든 유산도 덤으로 남겨주면 된다.

나는 부모에게 빚진 것이 없다. 부모 역시 나에게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 내 스스로 멋지게 사는 것, 내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부모는 괜찮은 은혜의 대물림을 한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부모 역시 자신들 부모의 은혜를 살아생전에 보답하지 못한 채, 그 못 다한 은혜를 자식에게 유산으로 전달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못 낫던 잘 낫던 어설프게나마 부모님께 받은 유산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히 물려주는 일조차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어머니가 서울에서 제주도로 놀러오신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다. 내가 아이를 대하는 것을 찬찬히 지켜만 보시다 한 말씀 하셨다.

“너는 왜 그렇게 아이를 윽박지르니? 애가 밖에서 기죽어 살겠다. 애를 뭐 어른처럼 대하잖니?”

가슴이 꽉 막힌다. 아이도 할머니가 오시니 긴장이 풀려 어리광을 심하게 부렸고, 나 역시 긴장이 풀린 아이를 보며 격하게 야단을 쳤던 게 사실이다. 부모가 손자를 잘못 키운다고 느끼는 것은 중간관리자인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어머니는 이미 서울로 가셨다. 아이는 하루 만에 쥐도 새도 모르게 어리광을 없애고, 다시금 멋진 친구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계신 동안 아이도 잠시 정신줄을 놓고 방학을 누렸나보다. 괜히 아이의 방학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하다.
나의 두 가지 커다란 매력은 대부분의 일을 쉽게 잊는 저질 기억력과, 좌절을 가뿐히 극복하는 회복탄력성이다. 잘해보겠단 수많은 궂은 다짐을 해도 금세 잊고, 땅 끝이 꺼질 것 같이 좌절을 해도 마찬가지로 쉽게 잊는다.
나의 놀라운 망각 능력을 이용해 다시금 다짐해본다.
두 개의 섬을 건널 수 있게 하는 튼튼한 다리처럼 반드시 전달하겠다고. 계곡과 계곡을 건널 수 있게 하는 다리마냥, 비록 끊임없이 휘청거리고 흔들거리더라도.

어머니가 서울로 가시기 전날, 말린 생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옥돔과 고사리를 택배로 보냈다. 아버지가 택배를 받으셨나 보다. 전화가 왔다. 평소처럼 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마침내” 대화와 전혀 관계없는 형용사를 툭 하니 뱉으셨다.

“고맙다.”

사람을 지극히 미워하면 침묵이 가장 큰 채찍이다. 사람을 지극히 사랑해도 침묵은 최상의 사랑법이다. 우리는 이번의 침묵이 어떤 경우의 침묵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잠시 두 사람은 침묵을 음미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먼저 “끊는다.”라며 침묵을 정리하셨다.
어머니가 1주일 넘게 제주도에 머물면서 우리가 잘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여러 번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이런 얘기를 들으셨던 것 같다.
효도…. 이제야 아버지는 안심하셨나 보다. 본인이 받은 부모의 은혜를 자식에게 잘 전달했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잘 자라 주어 “고맙다”고
졸업인사를 한 느낌이 든다. “이제부터는 네 몫이다.”라고 엄중하게 외치는 것 같다.
마음이 조급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될 때가 많다. 약해 빠졌다. 좋은 말로 하면 지극히 인간적이다. 조금 나아진 것 같다가도 격하게 주저앉고, 성인군자가 된 것처럼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 들다가도 촤악 낮아져 웅크리게 된다.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내 나이 때 아버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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