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웃음 주는 이름들
웃음 주는 이름들
  • 박종순
  • 승인 2013.07.16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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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귀농일기] <11>

오늘은 처갓집 농장 4개의 밭에 농약 치는 날이다. 언제나 약을 치는 날은 약간의 긴장감을 느낀다.

어떤 약을 넣는지, 약을 치는 방법은 어떠한지, 복장은 어떠하며 어느 곳에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사람마다 다소 다른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겠다는 의지가 솟아난다.

우선 600L 통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나 혼자만 남겨두고 상효2밭에 가버린다. 아마도 내가 옆에 있으면 도움이 안되는 모양이다.

처갓집에는 농약 치는 기계는 한 개 뿐인데 4개의 작고 넓은 밭을 치려니 여간 힘드는 게 아니다.

날 밝기가 무섭게 아래쪽 밭을 시작으로 시작한 작업은 오후 늦게 되어서야 겨우 차례가 온다. 30~40년 넘게 과수원을 돌보면서도 과수원 마다 기본 기계를 구비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하긴 조금 힘들긴 해도 기계를 옮겨 다니면서 해도 지장이 없었던 것 같다.

더욱이 상효3밭은 400평 정도이니 기계설치가 필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기계가 도착하면서 600L의 물탱크에 농약 2봉지를 저울에 달아 넣고는 긴 빗자루로 농약이 고르게 섞이도록 빙빙 돌리면서 휘젓는다. 집사람과 같이 그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내가 직접 해야 할텐데 과연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에 메모를 하면서 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집사람이 바로 옆에서 갑자기 깔깔 웃기 시작하고 나의 어깨를 짚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손끝을 따라가 보니 방금 버린 농약 봉투였는데 봉투에 쓰인 이름이 만장일치였다. ‘만장일치라는 농약이름을 보고는 너무도 잘 지은 이름에 나도 함께 웃어 버렸다.

그 후로 농약이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각종 책에 나오는 농약 광고의 이름만이 아니고 지나다니면서 무심코 지나쳐 버린 버스정류장 이름들, 지역 이름이나 오름, 심지어 가게이름까지 예쁘고 아름다운 이름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솟게 만들었다.

살균제는 깨끄탄, 메가폰, 베푸란, 살림꾼, 탐나라, 푸르겐, 확시란, 무쇠팔, 산마루, 쇼크, 우수수, 지존 등이 있다. 살충제로는 만장일치를 비롯해 강타자, 검객 불가사리, 똑소리, 리무진, 멸충탄, 바람탄, 부메랑, 빅카드, 송골메, 야무진, 온누리, 유토피아, 적시타, 주렁, 포수, 히어로가 있다. 제초제로는 대장군, 레이저, 파란들, 더치다운, 풀오버 등이 있다.

기타 영양제에는 발근력과 푸른꿈 등이 있으며, 그외에도 귀공자, 으뜨미, 백만석, 도열탄, 살림꾼, 선두, 올가미, 촌장, 아크로마이트, 피처, 가스란 등이 있어 하나씩 읽을 때 마다 웃음이 난다.

정류장 이름 역시, 남조로를 지나가면서 바겟도 동산이란 이름을 보고 은근히 이름의 유래를 알고 싶어지면서 메모도 하게 되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면서 한 둘 모으다보니 제주 특유의 사투리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신선한 이름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 외에도 뒤큰글, 고장낭밭, 군마루, 붉은오름, 물찻오름을 비롯해 예쁜 이름의 오름이 있고, 올레길을 걷다보면 갯늪, 불턱, 스으례, 갯머리, 가는개, 행기수, 머을개, 궤도둑, 좃냄이돌, 고는개, 거슨개미 등을 만날 수 가 있다.

이외에도 시간을 내어 길을 가다보면 다양한 지명들이 눈에 들어오고 휴대폰에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작업을 할 때 마다 은근히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내일 또 신비로운 이름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행복한 밤을 맞는다

< 프로필>
부산 출신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서귀포 남원으로 전입
1기 서귀포시 귀농·귀촌교육수료
브랜드 돌코랑’ 출원
희망감귤체험농장 출발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출간
e-mail: rkahap@naver.com
블로그: http://rkahap.blog.me
닉네임귤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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