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7:54 (수)
방학숙제
방학숙제
  • 홍기확
  • 승인 2013.07.01 11:16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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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8>

내 아이는 항상 느렸다.
천성이 그다지 느리진 않았는데 걷는 것이 다른 아이들보다 느렸다. 사실 처음에는 여느 부모처럼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말을 하는 것도 늦었다. 아내와 집에서 얘기를 서로 많이 주고받는 편이라 언어 자극도 충분할 터인데 왜 이렇게 늦나 했다. 그래도 많은 육아서적을 탐독한 결과 시점(始點)의 문제일 뿐, 어린아이들은 다 같은 발달과정을 걷는다기에 기다리기로 했다.
기저귀는 36개월 남짓해서 땠다. 부모님은 성화였다. 배변훈련을 해야 빨리 떼는 데 우리가 너무나 천하태평이라고. 아이를 잘 키워보고자 아내는 3개월의 출산휴가와 3년간의 육아휴직을 냈다. 나 역시 1년간의 육아휴직을 냈다. 우리는 결코 천하태평이 아니었다. 훈련을 안 시켜본 건 아니다. 다만 아이가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기에 기다려 준 것 뿐이다.
수많은 고민 끝에 어린이집에 보냈다. 나의 육아휴직은 오래전에 끝났고, 아내의 육아휴직도 끝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이를 어느 정도 사회에 익숙하게 만들어야 하는 약간의 의무감도 있었다.
어린이집을 갈 때에도 유일하게 기저귀를 찬 4세반 아이였다. 용변을 가리지 못하니 당연히 기저귀를 선생들이 갈아주었다. 원장선생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본인이 직접 아이의 기저귀를 떼겠다고 공언했다. 4~5개월의 노력 끝에 원장선생이 아이가 소변보는 사진을 찍어 보냈다. 원장선생은 아이가 처음으로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것을 보고 울었노라고 했다.
지금도 아이는 느리다. 7살이지만 아직 혼자서 옷을 입을 줄 모르고 한글도 이제야 공부를 시작했다. 주변에서 들리는 아이를 공부시키는 다양한 정보들을 절연시킨 탓이다. 젓가락질도 최근에야 훈련에 돌입했다. 모두 느리다.

하지만 이런 아이에 대해 큰 걱정은 없다. 걸음이 늦었지만 걷자마자 날아다녔다. 말은 늦게 했지만 말을 시작하자 수다쟁이가 되었다. 기저귀는 늦게 땠지만 그 이후 이불에 실수를 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기다란 기다림에 기다린 보람이 있다. 아이의 발달은 진정 시점의 차이가 맞긴 한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아이가 점점 아기가 되어가고 있다. 거꾸로 자라고 있다. 엄마에게 자주 달라붙고 아기처럼 낑낑거리며 응석을 부린다. 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엄마 아빠가 자기를 아기로 생각하지 않고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슴이 많이 아팠다. 요새 아이가 느리게 자라는 것에 대해 내가 독촉을 한 탓이다. 최근 들어 가장 자주 하는 말,

“일곱 살이면 이 정도는 해야 해.”

내 일곱 살 때는 어땠을까? 기억력이 우울한지라 잘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역시 이 때는 도서관에 앉아 궁리를 해야 하는 순간이다. 아이가 잠에 들 시간 즈음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곤 꼬박 3시간을 앉아 과거를 반추하며 곰곰이 생각을 했다.

나는 왼손잡이다. 지금은 인식이 조금 바뀌었지만 당시 왼손잡이는 어렵게 말하면 반체제적(反體制的)이고 비정상적인 인간이었다. 당연히 부모님은 태권도 학원을 보내 “특별히” 왼손잡이인 나를 오른손잡이로 탈바꿈시키기를 주문하였다.
수모와 고난의 시간이었다. 유치원 격으로 다닌 태권도장 4년간 나는 왼손을 쓸 수 없었다. 왼손은 그냥 어깨에 달려 있을 뿐이었다. 도장의 원장님은 내가 졸업할 때에는 내가 오른손잡이로 바뀐 것을 확신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밥 먹는 것과 글씨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왼손만 쓴다. 가위질, 공 던지기, 물마시기, 면도하기, 전화 받기, 심지어 코를 팔 때도!
억지로 교육한 것은 이런가 보다. 나를 돌이켜 보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살짝 찔렸다. 아이의 자연스런 발달과정에 끼어 들어 초를 친 것은 아닌지 우선 반성했다.

다시 나의 일곱 살. 사실 나도 당시에는 한글을 몰랐다. 비록 내 아이의 시대와 내 시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나는 학교에 들어가서야 한글을 배웠다. 물론 학교에서도 모든 공부에서 항상 뒤처졌다.
옆 반 개똥이 아버지가 힘겨운 노가다를 끝내고 돌아온다. 개똥이 아버지가 오늘 아이가 받아온 받아쓰기 성적표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본다. 이내 “개똥이, 받아쓰기 100점”이라고 외치던 사자후(獅子吼)가 산동네에 울려 퍼지면 부모님은 동시에 잠시 묵념에 잠기신다. 분명 그날 받아쓰기에 소나기를 받아 온 나를 잡아먹을까 참아볼까 고민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이렇게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어렸을 때 못했다고 지금 못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나를 돌이켜 보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좀 찔렸다. 구구단을 초등학교 3학년 때가 되어서야 외웠던 건 비밀로 해야겠다.

찔린 데 또 찔렸으므로 마음이 심히 아팠지만 생각은 가느다란 꼬리를 이어간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아이의 퇴행(退行)은 내가 만들어낸 문제이자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아이는 멀쩡한데 내가 조급해진 것이다. 비록 아직 한글은 읽고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 줄 누가 아는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에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다섯 살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으며, 여덟 살이 될 때까지 글을 읽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교사는 그를 “정신 발달이 늦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며, 어리석은 몽상 속에서 언제까지나 헤매 다닌다.”라고 표현했다.
우리아이는 현재로써는 아인슈타인보다 훨씬 낫다. 네 살 때부터 말을 했으며 여덟 살이 되기 전에 글을 읽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내가 느긋하게 참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래서 논리를 기다리기 위한 논리를 개발했다.

평균적으로 아이가 걷는 것은 15개월. 우리아이는 18개월에 걸었다.
평균적으로 아이가 50단어 이상을 말하는 것은 20개월. 우리 아이는 24개월에 이 정도를 했다.
평균적으로 아이가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23개월. 우리 아이는 36개월에 기저귀를 뗐다.
결국 우리 아이는 대한민국 아이들의 평균적인 발달치에서 20%~56%가 느리다는 것이다. 따라서 젓가락질, 옷 입기, 한글읽기 등에서 현재 7살, 70개월이니, 과거의 통계를 살펴볼 때 이것들을 못하더라도 최소 8살(84개월)에서 최대 10살(110개월)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렵게 말하자면 유전학자 프란시스 골턴의 "평균의로의 회귀(regression toward mean)"를 우선적으로 믿는 것이다. 이 논리는 골턴이 연구하다 발견한 아버지의 키(발달)가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아들의 키(발달)는 아들 세대의 평균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 법칙을 토대로 수학이나 통계학에 쓰이는 독립변수가 하나인 “회귀분석(regression analysis)", 나아가 두 개 이상의 독립변수를 가정한 ”다중회귀분석(multiple regression analysis)"까지 끌어 모아 분석해본다. 결론적으로 우리아이도 언젠가는 이 녀석 또래의 애들과 비슷한 발달과정상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아! 힘들다. 아이를 기다리기 위한 참을성을 증진하기 위해 이처럼 거룩한 논리와 낯선 개념을 끌어들여야 하다니. 내 아들이 이 글을 커서 본다면 분명 아빠의 노력에 기립박수를 보내거나, 건강하지 못한 아빠의 정신상태에 위기의식을 느낄 것이다.
최종결론이다.

“만약 내가 기다려 준다면(혹은 참는다면!), 아이는 자연스레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초 능력을 얻게 된다.”

며칠 전 아침. 젓가락을 식탁의 중간에 거꾸로 놓는 아이를 보고 야단쳤다. 아침밥을 먹다 말고 아이는 기가 한껏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어린이집에 갔다. 너무나 미안했다. 참는 게 잘 안된다.
하지만 며칠동안 이번 주 유난히 저녁약속이 많았던 아내 덕분에 아이와 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고개를 숙이고 간 날 저녁에 아침부터 혼내 것에 대해 사과하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이훤아, 왜 젓가락을 밥상 중간에 거꾸로 놔둬요? 지구인들은 보통 밥그릇의 오른쪽에다 놓고, 게다가 다음에 집기 편하게 손잡이 부분을 이훤이 쪽으로 놓는다구.”

풀이 죽은 아이의 대답은 지금까지 내가 만든, 나름대로 탄탄한 논리를 더욱 더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을 뿐이라고….”

훈련이 필요하다. 내 아이는 하는 훈련, 나는 참고 기다리는 훈련.

이어령의 『느껴야 움직인다』에 나오는 우화가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이 책의 구성은 대부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것만 아버지에 대한 것이다. 왜 처음에는 아버지와 관련된 우화가 하나뿐일까 성질이 났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비중이 작은 게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이에게 평생 해 주어야 할 것은 모두 이 이야기에 있다.

『까치 한마리가 뜰로 날아왔습니다.
치매기가 있는 백발노인이 창밖을 내다보다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치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조금 있다 다시 물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치라니까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보시더니 또 같은 말을 하십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라고 했지?”
“몇 번이야 대답해야 아시겠어요! 까치요, 까치라니까요!!!”

그 때, 옆에서 듣던 어머니가 한숨을 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범아, 너는 어렸을 때 저게 무슨 새냐고 백 번도 더 물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까치란다, 까치란다. 몇 번이고 대답하시면서 말하는 네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지. 그래서 네가 말을 배울 수 있었던 거다.”

'아빠, 저 새가 무슨 새에요?'
'응, 까치란다.'
'까치요? 아빠 저 새가 무슨 새에요?'
'까치야,'
'까치요?'』

다음주는 내 여름휴가다. 이번 휴가는 또 도서관에서 육아서적에 파묻혀야겠다. 조금이라도 쉴라 치면 자꾸 숙제가 생긴다. 하지만 숙제 안하고 혼나는 것보다는 숙제 해 놓고 마음 편한 게 현명한 일이다.
나는 아직 학생인가 보다. 아이와 함께 하는 방학숙제를 하러 가야겠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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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확 2013-07-21 15:52:16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방학숙제를 거의 끝마쳤습니다.
곧 있을 숙제검사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