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7:54 (수)
[기고] '악의 평범성'과 생각하지 않은 죄
[기고] '악의 평범성'과 생각하지 않은 죄
  • 미디어제주
  • 승인 2013.06.10 14: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계숙

유대인 여성학자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 후,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냈던 1급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직접 취재하여 ‘악의 평범성’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정립했다.

아렌트가 취재하면서 본 아이히만은 타고난 악인이 아니었다. 모범적인 시민이었고 충실한 가장이었다. 악의에 찬 반유대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충실한 나치 조직의 일원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취재과정에서 아이히만이 대부분 <틀에 박힌 말> 관용표현, 선전문구, 일상어법만을 상투적으로 구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의 ‘말하는데 무능력함’은 ‘생각하는데 무능력함-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즉 사유 능력의 부재이다. 아이히만은 조직에서 시키는 일을 기계적으로 수행했을 뿐이다. 마치 ‘톱니바퀴의 이’처럼 말이다. 나치의 모범생으로서 나치가 저지르는 악을 성실히 수행한 것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질곡의 역사이다. 일제강점과 동족간의 전쟁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고 그 비극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비극의 역사 속에서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반면, 우리 역사 속에는 수많은 아이히만들이 숨어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의 충실한 종이 되어 침략과 학살을 일삼은 일본 전범들,
완장을 차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지식인들과 이웃의 수많은 철수들.
이데올로기의 틀에 사로잡혀 죄 없는 이들을 학살했던 현대사 속의 그들,
아직도 인류 앞에 저지른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위안부 망언과 말뚝테러를 일삼는 일부 일본인들. 이들 모두 전체주의 속에 부품으로서만 존재하는 아이히만이다.

한나 아렌트는 ‘한 번 시도된 악은 반드시 인류에 의해 재발할 수 있다’고 자신의 연구보고서 후기에 썼다. 섬뜩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비판하는 능력을 상실한 채 기능적인 인간이 된다면 우리 또한 누구나 어느 순간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역사 교육을 시켜야 하는 이유이며, 영어 잘하고 수학 잘하는 인재를 키우는 것 못지않게 스스로 사유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것, 나의 성공, 나의 욕망뿐만 아니라 공공의 선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의심하지 않은 죄, 생각하진 않은 죄, 행동하지 않은 죄’ 당신은 유죄다!
아이히만에게 사형을 구형하며 검사가 한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