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말하는 영화 <건축학개론>, 제주여성과 육지남자의 로맨스를 다룬 <연풍연가>. 이들 두 영화와는 다소 다르지만 위장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중국이 아닌 타지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해야 하는 중국여성과 삼류건달의 이야기를 다룬 <파이란>. 각각의 영화에서 건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미디어제주>와 제주대안연구공동체가 공동으로 주관한 ‘제1회 미디어제주 인문학 강좌 – 김태일 교수와 함께하는 영화속 도시건축 이야기’ 3번째 주제는 감성의 도시였다. 5월 31일 제주치과신협 회의실에서 <건축학개론>, <연풍연가>, <파이란> 등 3편의 영화에 담긴 이야기들을 풀어봤다.
‘감성’이라는 단어 자체는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니 ‘추억’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연풍연가>는 이런 아련한 추억거리를 펼쳐보이게 한다. 특히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을 다룬 영화로 남성에게는 수십년전 첫사랑을 찾아보게 하는 힘을 느끼게 만든다.
그렇다면 추억은 대체 영화 속엔 어떤 의미로 담겨 있고, 도시건축과는 어떤 연계성을 지닐까. 마침 <건축학개론>이나 <연풍연가>는 제주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어서 더욱 친근감이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OST 자체도 기억을 말한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영화의 전반내내 주인공 서연(한가인)과 승민(엄태웅)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 기억은 무엇일까.
김태일 교수는 “과거의 흔적은 편하다는 느낌을 준다. 현대도시는 그렇지는 못하다. <건축학개론>에서는 화려한 도시이면의 서민공간과 콘크리트 건축물, 이와 대비되는 한옥을 비춘다”고 말을 이어갔다. 영화에서 ‘서연의 집’이 뜯기지 않고, 기존 건물을 놔둔채 리모델링하는 것도 그런 ‘기억’ 때문이란다.
김태일 교수는 “서연이 병원에서 그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그 때 아버지가 ‘이제야 집 같네’라고 말한다. 이건 바로 옛날 기억의 흔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면서 “우리는 추억을 어떻게 담을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 우리들의 건축활동은 추억이나 기억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건설경기가 주를 이룬다. 1960·70년대부터 이어진 이같은 개발은 우리에게 ‘주택=건설=돈’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켰다.
김태일 교수는 “아파트가 경제개발의 축을 맡으면서 ‘건축은 삶을 담는 공간’이라는 철학이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됐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건축을 평당 단가로만 매기는 게 아닌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일 교수는 또 “추억을 어떻게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건축학개론>에서는 키재기 흔적 등을 지우지 않고 있다. 옛 기억과 소통하고 사람 이야기를 담으려 하는 게 제주도시 건축의 기본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영화 <연풍연가>는 제주의 속살을 잘 보여준다. 그 가운데 가장 제주다운 풍경이 있다. ‘특별한 곳이 없느냐’는 태희(장동건)의 질문에 관광가이드인 영서(고소영)가 데려간 곳은 다름아닌 오름과 산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길이다. 거기에 앞으로 제주가 가야할 도시건축의 또다른 답이 있다.
김태일 교수는 “제주도는 한라산과 바다가 있다. 자연이 준 감응의 땅이다”면서 건축활동은 이런 자연을 바로 바라보면서 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제1회 미디어제주 인문학 강좌’ 제4강 미래의 도시는 오는 7일 만날 수 있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