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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간직하려 하고 소통하려 하는 게 건축의 기본”
“기억을 간직하려 하고 소통하려 하는 게 건축의 기본”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3.06.01 10: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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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도시건축 이야기] <미디어제주> 인문학 강좌 제3강 ‘감성의 도시’

김태일 교수가 영화 <파이란>의 한 장면을 보며 영화를 설명하고 있다.
첫사랑을 말하는 영화 <건축학개론>, 제주여성과 육지남자의 로맨스를 다룬 <연풍연가>. 이들 두 영화와는 다소 다르지만 위장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중국이 아닌 타지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해야 하는 중국여성과 삼류건달의 이야기를 다룬 <파이란>. 각각의 영화에서 건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미디어제주>와 제주대안연구공동체가 공동으로 주관한 1회 미디어제주 인문학 강좌 김태일 교수와 함께하는 영화속 도시건축 이야기’ 3번째 주제는 감성의 도시였다. 531일 제주치과신협 회의실에서 <건축학개론>, <연풍연가>, <파이란> 3편의 영화에 담긴 이야기들을 풀어봤다.

감성이라는 단어 자체는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니 추억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연풍연가>는 이런 아련한 추억거리를 펼쳐보이게 한다. 특히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을 다룬 영화로 남성에게는 수십년전 첫사랑을 찾아보게 하는 힘을 느끼게 만든다.

그렇다면 추억은 대체 영화 속엔 어떤 의미로 담겨 있고, 도시건축과는 어떤 연계성을 지닐까. 마침 <건축학개론>이나 <연풍연가>는 제주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어서 더욱 친근감이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OST 자체도 기억을 말한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영화의 전반내내 주인공 서연(한가인)과 승민(엄태웅)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 기억은 무엇일까.

김태일 교수는 과거의 흔적은 편하다는 느낌을 준다. 현대도시는 그렇지는 못하다. <건축학개론>에서는 화려한 도시이면의 서민공간과 콘크리트 건축물, 이와 대비되는 한옥을 비춘다고 말을 이어갔다. 영화에서 서연의 집이 뜯기지 않고, 기존 건물을 놔둔채 리모델링하는 것도 그런 기억때문이란다.

김태일 교수는 서연이 병원에서 그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그 때 아버지가 이제야 집 같네라고 말한다. 이건 바로 옛날 기억의 흔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면서 우리는 추억을 어떻게 담을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 우리들의 건축활동은 추억이나 기억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건설경기가 주를 이룬다. 1960·70년대부터 이어진 이같은 개발은 우리에게 주택=건설=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켰다.

김태일 교수는 아파트가 경제개발의 축을 맡으면서 건축은 삶을 담는 공간이라는 철학이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됐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건축을 평당 단가로만 매기는 게 아닌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1회 미디어제주 인문학 강좌 제3강 '감성의 도시'를 수강하고 있는 이들.
김태일 교수는 또 추억을 어떻게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건축학개론>에서는 키재기 흔적 등을 지우지 않고 있다. 옛 기억과 소통하고 사람 이야기를 담으려 하는 게 제주도시 건축의 기본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영화 <연풍연가>는 제주의 속살을 잘 보여준다. 그 가운데 가장 제주다운 풍경이 있다. ‘특별한 곳이 없느냐는 태희(장동건)의 질문에 관광가이드인 영서(고소영)가 데려간 곳은 다름아닌 오름과 산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길이다. 거기에 앞으로 제주가 가야할 도시건축의 또다른 답이 있다.

김태일 교수는 제주도는 한라산과 바다가 있다. 자연이 준 감응의 땅이다면서 건축활동은 이런 자연을 바로 바라보면서 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1회 미디어제주 인문학 강좌4강 미래의 도시는 오는 7일 만날 수 있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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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도 2013-06-03 23:35:45
아파트 또한 현대의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과거가 좋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해석은 교수님의 인식의 한계가 철부지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수님 글을 다 읽어 봤는데, 과연 교수님이 주장하는 인문학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건축의 인문학인지, 인문학의 건축인지 불명확합니다. 교수님의 글 중에 일부는 대학원생의 리포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과연 교수님이 인문학에 대해 얼마만한 성찰과 철학과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문학과 건축을 연결시키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고민없는 이런 강의나 글쓰기는 오히려 인문학을 욕보이는 행위입니다. 교수라는 가면에 가려진 비전문가의 글쓰기의 모습만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제발 인문학을 욕보이지 마시고, 성찰과 철학이 가득한 글을 보여주세요.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글쓰기와 강의는 그만 두시는 것이 교수로서 품위를 지키는 길로 보입니다. 제 답글을 무조건 욕하지 마지고,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최소한 하이데거와 푸코, 메를로 퐁티와 훗설의 차이를 말 할 수 없다면,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은 걸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와 페르디낭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좌를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덧붙여 시간이 된다면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과 자기의 테크놀로지를 추천합니다. 정히 시간이 안된다면 앨런 소칼의 지적사기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교수님의 글은 인문학도로서 부끄럽고, 읽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공자의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가 떠오릅니다. 제주에는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한 인문학도들이 있음을 알고 계시길 바랍니다. 비전공 교수가 "인문학"이라는 타이틀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솔직히 불쾌합니다. 교수님께서 진정한 인문학도들과 토론은 해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말 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는 글귀가 누구에게서 나왔는지는 아실거라 믿습니다. 모른다면 지금이라도 멈추는 것이 미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