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잊혀지지 않는 아픔, 더 큰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기고] 잊혀지지 않는 아픔, 더 큰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 김동화
  • 승인 2013.05.28 1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건설과 건설행정담당 김동화

제주특별자치도 건설과 건설행정담당 김동화
6월의 푸르른 숲을 보면 평화로움, 여유로움, 편안함, 힐링이 저절로 되는 계절이다.

그리고 6월이면 나 기도하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이별과 죽음으로 이 땅을 물들였던 63년 전 그 처참한 6월. 나는 봉개동 모 고등학교 앞을 지날 때면 나 자신도 모르게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14년 전 모 봉사단체에서 활동을 하며 어려운 보훈가족 집지어주기 사업 일환으로 고쳐드렸던 낡은 집이 세월이 흘러 스레트 지붕 페인트가 벗겨지고 벽의 페인트가 색이 바래고 해서 언젠가 말끔하게 새 단장을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집을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2년 전에 그리운 님 곁으로 떠난 뒤였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나의 뇌리 속에서만 시간이 멈춰 있었다. 창문 안쪽에 예전 커텐이 그대로 있고 뒷마당에는 무성하게 자란 잡풀과 우편함에는 고 할머니 미망인 앞으로 발송된 색 바랜 우편물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 할머니가 살아생전에 나에게 들여주던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아픈 과거를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긴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을 이으셨던 할머니는 18살에 봉개동으로 시집와 결혼하고 20일 만에 6.25가 터지고, 형제 하나 없는 독자였던 남편은 홀시어머니와 예쁜 새색시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나버렸다.

눈물로 밤을 지세며 별별 생각을 다했지만 부양해야 할 시어머니를 홀로 두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고 했다. 변변한 농사치도 없던 할머니가 남의 집 허드레 일등으로 연명하며 살아가는걸 보고 이웃사촌이 젊은 나이에 재가하라고 권유도 하고, 숙맥이라고 놀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할머니는 남편이 떠난지 6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누구에게도 남편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고 남편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숨죽여 살았다고 한다. 전사를 했다면 시신이라도 모셔서 제사를 지낼 터인데 시신도 찾지 못하고 홀로 남편을 기다리며 애환을 달랬다고 하셨다.

“호강 한 번 못하고 한 많은 세월을 보냈는데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린다 생각하니 왜 이렇게 처량하고 슬픈지 모르겠다” 하시며 눈물 흘리시던 할머니, 이제는 할머니의 슬픔보다 미소가 그립습니다. 먼 친척이 무상으로 빌여준 땅에 새로 집을 지어 주니 어린애 마냥 기뻐했던 할머니의 장탄식이 호국보훈의 달 6월 하늘을 맴돌았으면 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젊은 청춘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기꺼이 바친 호국선열들의 위대한 희생정신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백발무성한 노인이 되어 그리운 남편 곁으로 가신 미망인 고씨 할머니. 이제 행복하고 편안하게 고이 잠드시길 두손 모아 빌어봅니다.

지금도 6.25참전 용사, 많은 미망인들은 아픈 과거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적어도 6월 한달만이라도 우리가 잊고 지내온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나라 사랑을 되새기고 유가족에게도 감사의 마음과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따뜻한 호국보훈의 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김동화·제주특별자치도 건설과 건설행정담당>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