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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가족도, 이웃도 함께 하게 만드는 사회통합의 메신저”
“음악은 가족도, 이웃도 함께 하게 만드는 사회통합의 메신저”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3.05.26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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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학교 현장] <5>음악으로 학교와 마을을 변화시키는 송당초등학교

음악이 즐거운 송당초 어린이들.
눈으로 볼 수 없고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음악은 표현해냅니다. 그래서 더욱 다양한 창작이 가능한 것이죠. 다른 예술로는 표현하기 힘든 신비하고도 고유한 표현력을 지닌 음악은 무한한 가능성과 풍부한 감수성의 예술이죠.”

엘 시스테마의 창립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다큐멘터리 영화인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2008)에서 음악을 이처럼 표현했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음악을 이처럼 표현한 데는 음악이 담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에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폭력과 총기사고 등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던 아이들에게 음악이 가져다 준 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변혁이었다. 그래서일까. ‘엘 시스테마는 음악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변화를 일컫는 대명사로 통할 정도가 됐다.

그러나 이제는 엘 시스테마가 베네수엘라의 것만은 아니다. 바이러스 감염처럼 세계 각지로 퍼지고 있다. ‘엘 시스테마의 성공적 시스템은 얼마전부터 제주에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아름다운 예술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제주도교육청이 지난 2011년부터 도내 모든 학교에 악기를 지원, 이후 예술교육은 제주교육의 새로운 자랑거리가 됐다.

제주시의 작은 학교인 송당초등학교(교장 고현숙). 이 학교가 자리를 틀고 있는 마을은 음악이라는 이름이 어색한 곳이었다. 370가구 980명이 사는 송당리엔 그 흔한 풍물패도 없다. 음악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다. 송당리마을제 때 들려오는 굿이 그나마 들을 수 있는 음악의 한 갈래였다.

이 일대엔 음악학원도 없다. 이웃한 곳인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음악학원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1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그만큼 음악을 접하기 힘든 곳이다.

그러던 이 마을은 지난해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주도교육청이 ‘1학생 1악기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면서 전교생 42명의 손에 플루트, 클라리넷, 색소폰 등이 하나씩 주어졌다.

애들은 세상에서 보지 못한 악기를 경험하는 기회가 됐어요.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이 더 좋아해요. 제게 고맙다는 얘기를 할 때면 음악 교육이 주는 효과를 실감하게 된답니다.”(고현숙 송당초 교장)

지난 2월 5일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진행된 송당초 목관앙상블 창단 및 정기연주회.
올해 2월엔 1년간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는 송당초 목관앙상블 창단 및 제1회 정기연주회를 가지기도 했다. 반응은 놀라웠다. 그 때문이었는지 이젠 지역주민들이 더 안달이다. 지역주민들도 악기를 배우는 기회를 달라고 야단이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학부모교실은 매주 토요일 펼쳐지며, 수강생은 30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그만큼 송당리 지역 주민들의 음악을 배우려는 열정을 실감하게 된다.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에서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이런 말을 했다. “사회 통합의 역할도 하고 있어요. 가족이 함께 하니까요. 부모·형제·자매·이웃이 함께 하죠. 그렇게 서로 하나가 되는 겁니다.”

송당초의 사례는 호세 안토니오의 말처럼 바로 작은 마을을 변화시키는 촉매제나 다름없다.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음악을 즐기는 그런 풍토가 서서히 조성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연습에 열중인 송당초 어린이들.
송당초 목관앙상블의 활약이 커지면서 이들이 설 무대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총동문회 행사와 가족 야영 때는 목관앙상블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들이 하나가 돼 들려주는 화음은 그 행사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더 신나는 일도 있다. 오는 529일 제주시 동부지역의 도민과의 대화 때 송당초 목관앙상블이 식전행사로 무대를 달굴 예정이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을 음악으로 변화시킨 송당초. 여기엔 교사의 힘도 컸다. 앙상블을 이끄는 김재현 교사는 주말이 없다. 음악 때문에 토요일을 반납한 지는 오래됐다. 그래도 김재현 교사는 즐겁다고 한다. 자비를 들여가며 서울과 일본을 오가며 음악에 열성을 들인 결과물이 송당초에서 빛을 발하고 있어서다.

김재현 교사는 아이들이 음악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소리가 나지 않아 속상해 하던 아이들도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즐거워하죠. 합주를 통해 남의 소리를 듣고, 그로 인해 집중력도 좋아졌어요. 더욱이 어울림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심어진다는 점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변화는 또 있다. 작은 마을에 오고 싶다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서울과 경기 등지에서 전학을 오겠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호세 안토니오는 음악을 향해 싸운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음악이 싸움일리 없지만 그 싸움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운다는 의미이다. 송당초의 상징이 되어 가고 있는 목관앙상블은 더 나은 송당초등학교, 더 나은 송당리를 위해 벌이는 작은 싸움이다. 이제 그 싸움이 막 시작됐고, 송당리 마을 곳곳에 퍼지고 있다.

   최지원 어린이(왼쪽)와 홍성수 어린이.
[인터뷰] ‘자랑스럽다고 외치는 송당초 최지원·홍성수 어린이

자랑스러워요.” “보람이 있어요.”

송당초등학교에서 만난 최지원·홍성수 어린이(이상 6학년)는 악기를 접한 뒤 변화된 느낌을 이처럼 설명했다.

최지원 어린이는 클라리넷, 홍성수 어린이는 색소폰을 쥐고 있다. 최지원 어린이는 평소 악기와 인연이 있었던 반면, 홍성수 어린이는 난생 처음 악기를 접했다. 서로 악기 경력(?)은 차이가 있으나 느낌만은 매 한가지다. 자랑스럽거나, 보람된 느낌은 서로 다를 리가 없다.

이들은 올해 2월 목관앙상블 창립 때의 기분을 털어놓았다. 지원이는 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틀리면 어쩔지 걱정됐다고 했다. 성수는 엄마가 와서 앙상블 연주를 봐주니 자랑스러웠다고 무대에 선 느낌을 전했다.

그들이 쥐고 있는 악기는 하나이지만 40여명의 친구들이 모이면 앙상블이 된다. 지원이와 성수에게 합주를 했을 때의 느낌을 전해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한다. “다른 소리를 들으면서 음악을 하니 소리가 더 아름다워지네요.”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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