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07:39 (금)
어버이날과 선물
어버이날과 선물
  • 박종순
  • 승인 2013.05.13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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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귀농일기] <2>

서귀포 남원으로 전입한지 1년이 되었다. 짧다면 짧은 귀촌 1! 귤을 따는 계절에 처갓집 과수원 수확을 잠시 도우려고 왔다가 일나가는 도중에 해돋이 광경에 마음을 뺏기고, 2 년만 살다가 육지로 돌아가려했던 여정이 제1기 서귀포시 귀농·귀촌교육을 받으면서 잠시 미루어두었던 꿈과 희망을 되찾았다. 귀촌에서 귀농까지의 초보 귀촌인. 초보농군의 생활을 모아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란 귀농일기를 내기도 했다. 육지에서 귀농·귀촌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수많은 분에게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고 나와 함께 이곳 서귀포에서 행복하게 살자는 취지로 펜을 들었다. 간단한 이삿짐만 가지고 배를 타고 제주에 오면서부터 서귀포에 조그만 과수원을 매입하고 정착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소개 될 것이다. 나 역시 기대된다.

5월 달 다이어리를 보니 무려 9개의 각종 행사가 눈에 들어온다. 5월은 가정의 달, 5월은 계절의 여왕 이라고만 알았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행사가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우선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7일 석가탄신일, 185·18민주화운동기념일, 20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31일 바다의 날이 보인다.

그 외에도 입양의 날, 방재의 날, 발명의 날, 가정위탁의 날, 종합소득세신고의 날, 심지어 내가 외우고 있어 가끔 할인받아 먹곤 하는 국수의 날과 오이데이 등도 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뒤편에서 와아~” 하며 큰 박수와 환호가 들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 분의 손에는 카네이션이 빽빽이 차있는 꽃바구니가 들려 있었고, 또한 가슴에 달 예쁜 두 송이 카네이션이 별도로 보였다. 주위의 직장동료들은 부러움 반 기대 찬 눈으로 주시하였고 그녀의 얼굴에선 기쁨이 넘쳐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한 송이는 본인의 오른쪽 가슴에 달고 나머지 한 송이는 타향에서 와서 아직 받지 못하고 있는 동료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또다시 박수가 터져 나오고 동료는 그저 감사하다는 표시로 꽃송이를 몇 번이나 내려 보면서 올해는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 선물을 받게 되어서 감개무량하다고 답했다. 그제야 주변 사람들은 오늘이 어버이날이며 선물 받았던 기억이나 선물을 준 기억을 되살리며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5월이 되면 챙겨야 할 것이 많다며 왜 이렇게 몰려있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부터,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을 신경써야할 때가 가장 괴롭다는 등 고민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선물준비 하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며 종전에는 구두가 인기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구두를 많이 신지 않는 편이고, 넥타이도 한때 유행했다가 시들해지고, 백화점 상품권, 지갑, 허리띠, 심지어 쌀도 인기가 있었던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역시 돈이 최고 다며 돈을 모아 드리니까 어떤 선물을 살까하고 고민할 필요도 없고, 받는 입장에서도 본인 마음대로 살 수 있으니까 좋은 것 같다고 한다. 그러자 이 얘기를 들은 다른 이는 지난번에 형제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드렸다가 성의 없이 준다고 야단맞았다며 역시 현금보다는 평소 필요한 것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봐두었다가 적기에 선물하는 것이 좋다고 대답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느끼는 듯 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지나가고 제정신으로 돌아와 조용히 생각해보니 나와 집사람의 가슴에도 꽃 한 송이가 없고 선물 받은 것도 없다. 그렇다고 가까이 있는 장모님께도 선물을 해드리지도 못했다. 며칠 전부터 부산을 떨었는데도 선물조차 건네 드리지 못했다니.

홀로계신 장모님은 얼마나 서운해 하실건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옛날에도 생신 때나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전화 한통 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웠었는데. 경상도 출신이라서 그랬는지 모르나 왠지 전화기만 들면 그 많던 얘기도 잊어버리고 간단한 안부만 물었던 것 같다.

어제였던가. 그저께 밤새워 만든 약밥을 들고서 마을 노인정에 전해 주려고 하자 장모님이 친히 함께 가서 내 딸이 해온 것이라며 자랑을 해 주셨는데 막상 본인은 드셔 보지도 못했다고 푸념한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다시 들러 약밥을 드렸을 뿐, 약간의 용돈도 못 드려 죄송한 생각이 든다. 과수원에서 급한 일을 정리하다보니 장모님을 제때 챙기질 못했다. 돌창고에서 뵌 장모님은 본인의 연로하신 아버님을 뵈러 가야한다며 황급히 가버리면서 약간의 기회조차 주지 않으셨다.

이제 다시 찾아가 미처 드리지 못했다며 줄 수도 없고 후회가 밀려온다. 다음기회에는 똑같은 실수를 안해야겠다는 생각만 들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와 집사람도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단지, 딸과 사위와 아들의 전화만 왔을 뿐. 다음 달이 생신이니 잠시 시간을 내어 들리겠다는 통보만 받았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위안도 된다. 육지의 생활이 힘들고 어려울 것이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로 인하여 어려움을 호소할 여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장가가기 전에는 아예 바쁘다는 핑계로 뵙지도 안했고 전화조차 안했거니와 장가간 후에도 집사람은 신경을 쓰는데 반해 나는 무신경으로 일관한 바 있다. 여하튼 다음 달에 시간을 내어 온다고 하니 은근히 기다려지긴 한다. 그래도 나 보다는 낫지 않는가.

한편으로는 여동생이 며칠 전 등산스틱을 보내온 것이 생각난다. 오빠생각에 어버이날이라고 갑작스럽게 보내준 것인데 하필이면 집에 있는 것을 보내오다니.

동네에 살다보니 주변 어르신들을 자주 보게 되고, 오다가다 만나면 목례정도는 하고 있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린 적이 없다. 하긴 육지에 있을 때도 동장님을 만난 적이 없지 않았던가.

전입한지도 제법 오래 되었지만 읍장, 리장, 마을 어르신들, 부녀회장을 아직까지 찾아뵙지 못했다. 그래도 여긴 농촌이고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아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아직 5월의 절반도 넘지 않았는데 기회 봐서 용돈을 드려야겠고, 노인정에도 가끔 들려 눈도장이라도 받아야겠다. 어버이날을 맞아 이런저런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는 밤이 되는가보다.

 

<프로필>
부산 출신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서귀포 남원으로 전입
1기 서귀포시 귀농·귀촌교육수료
브랜드 돌코랑출원
희망감귤체험농장 출발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출간
e-mail: rkahap@naver.com
블로그: http://rkahap.blog.me
닉네임: 귤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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