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고동소리를 들으며
뱃고동소리를 들으며
  • 박종순
  • 승인 2013.05.08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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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귀농일기] <1>

서귀포 남원으로 전입한지 1년이 되었다. 짧다면 짧은 귀촌 1! 귤을 따는 계절에 처갓집 과수원 수확을 잠시 도우려고 왔다가 일나가는 도중에 해돋이 광경에 마음을 뺏기고, 2 년만 살다가 육지로 돌아가려했던 여정이 제1기 서귀포시 귀농·귀촌교육을 받으면서 잠시 미루어두었던 꿈과 희망을 되찾았다. 귀촌에서 귀농까지의 초보 귀촌인. 초보농군의 생활을 모아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란 귀농일기를 내기도 했다. 육지에서 귀농·귀촌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수많은 분에게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고 나와 함께 이곳 서귀포에서 행복하게 살자는 취지로 펜을 들었다. 간단한 이삿짐만 가지고 배를 타고 제주에 오면서부터 서귀포에 조그만 과수원을 매입하고 정착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소개 될 것이다. 나 역시 기대된다.

~~”이라 해야 하나 뿌웅~ 뿌웅~” 이라 해야 하나.

창가의 유리를 통해 힘찬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편안하게 앉은 창가 쪽 좌석에 기대어 뱃고동 소리가 저렇게 크고 우렁찬 거구나 하고 내심 놀랐다. 마치 신대륙을 향해 떠나는 콜럼버스처럼 걷잡을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요동쳐 온다.

며칠 전 서귀포 반석타운 BB센타에서 1층 아파트가 임대계약 됐으니 입주하라는 통보를 받고 크레도스의 앞자리 두 좌석을 제외하고는 크고 작은 짐을 가득 싣고 논산 광주를 거쳐 장흥에서 오렌지호를 탄 것이다. 광주까지는 고속도로라서 어려움 없이 왔으나 장흥 가는 길은 처음이고 네비게이션도 없어 중간 중간 갈림길에서 헤매기 일쑤였다.

몇 번의 착오 끝에 장흥이라는 이정표를 찾았고, 전라도의 경치를 보며 보성의 녹차밭을 지나고 12일에 나왔던 천관산을 지나 오후 무렵에 장흥항에 도착했다.

장흥항 대합실은 매표소에 여직원 1명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고 식당이나 매점의 문도 닫혀 있었다. 더이상 구경 할 것도 없기도 하고 내일 아침 일찍 배를 타려면 근처에서 숙식을 해야 편할 것 같아 인터넷으로 미리 보아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시간이 조금 남은 관계로 되돌아 나와 조그만 읍내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조그만 항구도시라 할까. 그나마 편의점과 식당들이 몰려있고 여관이 한두군데 있는 걸로 보아 끝 마을 치고는 괜찮아 보였다.

집사람은 심심한지 이곳저곳 둘러보기도 하고 몇 가지 물건도 산 것 같다.

다음날 동이 트기 전 깜깜한 밤에 여관을 나서니 배 타러 가는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계속해서 항구로 나가고 있었고 우린 그들을 뒤따라가기만 했다.

도착한 장흥항에는 어제 본 한적한 항구가 아니고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고 먼저 온 차량들이 배를 타려고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지어 서 있었고, 매표소 앞에는 표를 구하느라 번호표를 들고 장사진을 이루고 식당과 매점 안에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합실 한쪽에 전남을 알리는 관광안내소가 있어 팸플릿과 지도 등을 얻기도 했다. 아마도 28년전 쯤인가, 박종환 사단 청소년팀이 세계청소년축구대회를 치르던 때였다. 8강 게임전을 울릉도 23일 여행하며 돌아오던 배에서 텔레비전으로 봤던 생각이 났다.

둘째 선영이가 태어나 첫째 민수하고 조그만 방에서 울고 보채고 해서 홧김에 홀로 다녀와선 집사람에게 한동안 야단맞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장가는 갔지만 철없고 형편없는 아빠이자 남편이었나 보다.

거의 30년 만에 타 본 배에서 아래층, 위층을 구경하고 사진도 남기고 하다 보니 배가 요동을 치기 시작하고 배 멀미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 역시 속이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참고 2시간 조금 넘어 성산항에 도착했는데 추운 날씨에 바람이 드세어서 하선하는데도 흔들려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집사람이 배에서 차를 꺼내 몰아 농장에 도착하니 점심 때다. 난 곧장 방에 쓰러져 버렸고 마침 식사를 배달해 주던 사장님이 농장에 주차하고 있는 짐이 가득 실려 있는 크레도스를 유심히 봤다고 후일 말하던데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귀농·귀촌 1기로 교육을 같이 받게 될 줄이야…….

제주는 신구간이라 하여 귀신이 잠시 비워둔 약 1주일 동안(24절기의 마지막인 대한 후 5일간부터 입춘 3일 전까지)만 이사를 한다. 1년 중 이때만 움직이므로 제주 전체가 이동하는 것이며 그 외의 기간은 이사를 안 한다. 그리고 임대가 거의 없고 월세나 년세가 많아 곤란을 받는다.

서귀포 신시가지는 그런대로 집 구하기가 쉬운 편이나 남원은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현지인뿐만 아니라 외지인도 빈 집이나 빈 방을 임대하지 않는 것 같다.

남원에 귀농·귀촌하는 나로서는 집 없는 서러움을 받아야 한다.

농촌에 귀농하려면 집 걱정, 땅 걱정 없어야 하는데 서귀포시에서는 택지를 마련하고 안정된 정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조그만 방이라도 임대해주는 정책을 마련했으면 한다.

올해뿐만 아니고 내년이나 내후년에도 서귀포가 좋아 남원이 좋아 귀농·귀촌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올 것이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왔듯이, 뱃고동 소리가 뿌웅~뿌웅~”하고 울리듯이.

 

 

▲ 박종순 객원필진 <미디어제주>
<프로필>
부산 출신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서귀포 남원으로 전입
1기 서귀포시 귀농·귀촌교육수료
브랜드 돌코랑출원
희망감귤체험농장 출발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출간
e-mail: rkahap@naver.com
블로그: http://rkahap.blog.me
닉네임: 귤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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