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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9> 올드보이 : 한국현대사의 정치적 이슈와 공간사회적 이슈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9> 올드보이 : 한국현대사의 정치적 이슈와 공간사회적 이슈
  • 김태일
  • 승인 2013.04.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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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곳곳서 벌어지는 전근대적 도시계획 고민할 때”
-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은 쉬울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어려운 단어이기도 합니다. <미디어제주>는 이번 인문학 강좌의 시행에 앞서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보는 인문학 강좌’를 준비했습니다. <미디어제주> 지면을 통해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를 설명하게 됩니다. 여기엔 건축 전문가와 건축 비전문가의 글이 번갈아 실립니다. 건축 전문가로는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가, 건축 비전문가로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가 영화를 본 뒤 글을 씁니다. 지면에 나갈 미리 보는 인문학 강좌는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됩니다. 모두 13편의 영화 이야기가 펼쳐지며, 제주도내 건축가들의 비평도 아울러 실으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주]

욕망의 도시 3번째 영화는 올드보이(Old Boy)”이다. 2003년 개봉된 올드보이는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등 연기파 배우가 출연하였던 영화로 올드보이는 오대수의 딸인 미도(강혜정 역)가 오대수(최민식 역)를 부르는 호칭이다.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중 하나인 올드보이는 세계 3대 영화제중 하나인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면서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97
년 일본 작가 츠치아 가론(Tsuchiya Garon), 만화가 미네기시 노부야키(Minegishi Nobuaki)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나 원작보다 영화 속에서는 더욱 스릴감과 반전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 명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에 견줄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즉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범인을 좇는 기존 스릴러 영화의 흐름과는 달리 영화 올드보이는 자신을 가둔 남자를 뒤쫓는 숨 막히는 추적과 대결, 복수의 흐름 속에 항상 의문점을 던져주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근친상간이란 터부를 복수의 모티프이자 해결책으로 도입하는 등 일반적인 기대와 전혀 다른 반전을 제공하는 것이 영화의 매력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영화 올드보이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는 의미를 가진 오··수는 아내와 어린 딸아이를 가진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어느 날, 술이 취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8평정도의 싸구려 호텔방과 같은 곳에 감금된다.

<그림1> 영문도 모른 채 감금되어 절규하는 오대수의 모습은 불법감금과 연행이 있었던 1980년대 공안정국의 간접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직 중국집 군만두만을 먹는 것과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뉴스를 통해 아내의 살인범으로 자신이 지목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오대수는 복수를 위해 체력단련을 하면서도 자신을 가둘만한 사람들과 사건들을 기억 속에서 꺼내 악행의 자서전을 기록한다. 그리고 감금방 벽을 쇠젓가락으로 파기 시작하는데 감금생활 15년째 되던 해 마침내 아주 작은 탈출구를 만들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되지만 자기의 희망과는 달리 어이없게도 15년 전 납치됐던 바로 그 장소로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들른 일식집에서 만난 보조 요리사 미도 집으로 가게 되고, 미도는 오대수와 깊은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된다.

<그림2> 자신의 딸 미도와 사랑을 하게되는 주인공. 이는 이우진의 계획도 복수를 위한 의도이자 현대사의 숨겨진 다른 아픔의 표현이기도 하다.
감금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15년간 감금방에서 먹던 군만두에서 나온 청룡이란 전표 하나로 찾아낸 7.5층 감금방의 정체를 찾아내고 마침내 감금자 이우진과 첫 대면을 하게 되지만 오대수에게 이우진은 냉정하게 자신이 가둔 이유를 5일 안에 밝혀내면 스스로 죽어주겠다고 제안하게 된다. 그리고 5일간의 추적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결말에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픔의 기억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올드보이는 히치콕 감독에서 엿 볼수 있는 스릴과 반전(反轉)의 묘미를 가진 영화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이슈와 공간사회적 이슈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된다.

먼저 정치적 이슈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필자가 정치적 이슈를 언급한 이유는 영화속 대화에서 오대수는 그때 그들이 15년이라 했더라면 조금이라도 견디기가 쉬웠을까?”라는 독백, 그리고 유일한 볼거리인 TV 뉴스에서 나오는 주요뉴스의 내용들은 1995년의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7IMF지원 결정, 1998225일의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이 있는 해 풀려난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15년이라는 시간을 역으로 계산해보면 1986년 무렵에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사설 감방에 갇히게 되었다는 추측이 가능할 것 같다. 1986년 무렵이라면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을 때이다. 그리고 공안정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구금되었던 시기이다. 영화 올드보이는 암울했던 시기의 한 단면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8평의 제한적이고 고통스러운 공간은 1970년대말 사회 혼란기를 거쳐 1980년대 사회전반의 분위기와 도시민의 삶의 모습,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며 동시에 민주화로의 시대적 변화를 간헐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림3> 주인공 오대수가 유일하게 볼수 있는 TV의 1997년 IMF지원결정소식을 통해 사회전반의 분위기외 공간, 시간의 흐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80년대의 공안사회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우진이 복수를 위해 오대수가 자신의 딸 미도와 근친상간하게 하고, 이우진 역시 자신의 누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장면이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는 근친상간의 형식을 통해 1980년대초 잊을 수 없는 518광주항쟁과 같은 우리의 현대사의 아픔을 은유적이면서 총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와 관련하여 영화 후반부에서 감금자 이우진과 누나 이수아의 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수아 : “우진아, 그동안 무서웠지? 그러니까 손 놓아줘!” “나 꼭 기억해 줘야되! 알았지!”

<그림4> 자살하려는 이수아의 모습을 통해 터부시 되어왔던 1980년대 5·18광주항쟁과 같은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오대수 역시 독백처럼 써내려간 옥중 악행자서전 끝부분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오대수 :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것이 아닌가요?”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거의 아픈 기억을 계속 안고 가기보다는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또한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작은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모두가 삶의 권리를 갖는 진정한 사회의 모습을 꿈꾸어야 한다는 호소일런지도 모른다. 사실 1980년대에 발생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오랜 시간 속에서도 죽은 자와 산자의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 남아 있다. 43사건도 여전히 진행형에 머물러 있다. 최면사에게 부탁하여 과거의 기억을 지우려는 영화의 끝장면 처럼 괴물로 변해버린 주인공 오대수가 아닌 선량한 일반인 오대수가 되기 위한 치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시 화제를 바꾸어 공간사회적 이슈를 다루어 보기로 하자. 영화 올드보이에서는 1980년대 공안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시작된 대규모 도시개발사업들의 한 단면도 엿볼 수 있고 폐쇄된 공간, 급격하게 변해버린 기억의 장소와 공간, 그리고 단서를 제공하는 도시공간을 통해 환경과 인간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풀려난 오대수가 버려진 곳은 납치되었던 원래의 장소였지만 주변은 아파트 재개발로 변해버렸고 그나마 버려진 곳도 고층건축물의 옥상에서 마주친 첫 장면은 15년간 너무나도 급격하게 변해버린 장소였다. 어떻게 보면 이 장면은 그 장소와 그 땅이 가진 흔적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없이 전면철거에 의한 싹쓸이식 개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우리도시의 풍경은 너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빨리 택지개발하고 빨리 건축물을 축조함으로서 매년 도시는 변해가지만 어느 도시든 획일적인 풍경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림5> 자살을 시도하려는 고독한 도시민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통해 오대수가 납치된 곳이자 15년후 풀려난 곳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린 급격한 도시변화, 고독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있는 장면중에 주인공 오대수가 자신을 감금한 자를 찾기 위해 동원한 방법이 중국집 군만두의 맛을 통해서 기억의 공간을 찾아내는 과정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 오대수가 단서를 찾기 위해 찾아간 동창의 미용실 출입문의 종소리, 주인공 오대수가 전학 가기전 이수아가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돌면서 울린 자전거 종소리, 15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던 반복적인 소리들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계획되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림6> 중국집 군만두를 통해 단서를 찾는 오대수의 모습
<그림7> 고등학교시설 운동장에서 만난 이수아와 오대수의 연결고리는 자전거의 종소리였다. 우리들은 냄새와 소리, 바람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간과 장소를 기억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정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떠한 형태로든 공간을 인지하게 된다. 공간인지에 대해서는 도시학자 케이빈 린치가 오랜 연구를 통해 인간의 공간인지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이른바 이미지맵이다. 흔히들 약속장소를 표기하거나 자신의 거주지를 간략하게 그리는 그림들이 일종의 이미지맵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오감을 통해 공간을 인지하는 특징도 있다. 즉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 미각이다. 이러한 감각을 통해 장소와 공간을 인지하도록 고려하고 배려하는 건축의 좋은 사례가 바로 치매노인 시설이다. 치매노인의 신체적 특징상 공간인지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데 작은 풀밭과 부엌, 사람들의 목소리가 주거공간내에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음으로서 고립되지 않았다는 심리적 안정감과 식욕의 촉진 등 왕성한 생활의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다.

도시가 농촌과 다른 것은 다양성 때문이다. 주인공 오대수는 아줌마, 자살시도자, 건달, 거지를 만난다. 좋은 도시는 도시내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와 그것을 수용하는 공간들을 잘 조직화하여 다양성을 유지할 때 가능한 것이다. 즉 도시는 인간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 집들과 집들의 단순한 결합체(복합체)가 아니라, 인간들의 집합체, 즉 인간사회 그 자체인 것이다. 도시는 영원한 변천과정 속에서 그 안에서 살면서 도시를 만들었고, 또한 만드는 인간들의 생활의 영원한 연속적 결과이기 때문에, 도시는 단순히 이를 결정하는 설계나 도식(圖式)화된 계획, 건물의 유무에만 절대로 귀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도시계획의 비극은 변화의 융통성이 없는 고정되어 버린 물리적 형태의 존재와 놀라운 속도로 변혁하는 도시의 역동적 존재 사이의 파탄 속에서 있는 것이다. 도시는 공학이 아닌 것이다. 현행과 같은 행정에 의한 도시계획은 법정 구성요소를 충족시키고 지극히 토목공학적 발상에서 도시의 공간을 들여다 보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러한 태도와 가치관은 이미 근대도시계획에서 경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로 회귀하려는 전근대적인 도시계획과 사업들이 제주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 일본 효고현 장수사회연구소 연구원
- 제주 도시건축을 이야기하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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