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 살다가 서울로 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마침 서귀포시에서 하는 귀농·귀촌교육이 있더군요. 그걸 받다가 제주에 아예 정착하기로 마음먹었고, 귀농 후배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됐죠.”
박종순씨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은퇴’를 맞게 됐다. 그러나 제주에 올 생각은 없었다. 그의 부인인 오영숙씨(56)가 제주 출신이기는 하지만 제2의 인생을 꾸릴 장소로 제주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부인 오씨는 30년 넘게 타향살이를 한 터여서 고향 제주가 오히려 낯설었고, 오씨는 딸이 있는 강원도를 은퇴 후 갈 곳으로 찜한 상태였다. 그런데 제주정착의 계기는 귀농·귀촌교육이었다.
“귀농·귀촌교육 모든 과정을 이수했어요. 교육을 다 받고 보니 육지를 가봐야 뭘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여기서 교육을 받은대로 열심히 일하면 일터도 생길 것이라 생각했죠. 서울에 있다면 갈 곳이라곤 산밖에 더 있겠어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죠.”
다행히 그에게 농사일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됐다. 처갓집이 과수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귤을 따고, 일하는 재미를 배웠다. 나무를 가꾸고, 풀이랑 사는 데 흠뻑 빠져들었다.
그런데 왜 책 제목에 ‘서귀포’가 들어갔을까.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귀농을 하려는 이들이 아주 많아요. 귀농·귀촌교육을 받는 이들이 넘쳐날 정도죠. 그들이 어디를 택하면 좋을까요. 우리나라 어디를 둘러봐도 제주만한 곳이 없어요. 후배 귀농인들에게 제주에 오면 어떤 점이 좋은지를 알려주고 싶었죠. 제주에서도 서귀포시가 으뜸입니다.”
공기 좋은 제주에서 2년만 살다가 다시 육지로 가려고 했던 여정이 서귀포시의 배려로 귀농, 귀촌교육 100시간과 수없이 많은 심화과정을 수료하게 되면서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서귀포가 내 곁에 다가오기 시작했고, 일을 나가는 버스 속에서 차창 너머로 보이는 남원큰엉의 일출을 보고, 그동안 잠시 미루어두었던 희망과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에서 발췌)
그는 이제 제주사랑의 전도사가 됐다. 2년만 있다가 훌훌 털고 다시 서울로 가려던 예전의 그가 아니다. 그가 이렇게 정착할 수 있었던 건 귀농·귀촌교육을 함께 받은 동기생들의 몫도 컸다. 1기 교육을 받은 이들 가운데 30명 가량이 정착을 하고,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그의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나 혼자만 제주에 왔더라면 못 견뎠는지도 모른다. 혼자 귀농귀촌한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3끼 식사와 빨래, 청소뿐만 아니고 외로움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집사람이 며칠 서울로 가버리고 나면 곧바로 삶의 고충이 시작되고 허전함이 바로 찾아온다. 그래서 집사람이 고맙다. 나의 행복의 시작점이자 나의 꿈의 출발점이다.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에서 발췌)
‘희망감귤체험농장’의 돌코랑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커가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흡족하다. 그에겐 귀농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행복해지려고 온 것이다”며 누누이 강조했다. 아울러 자신이 펴낸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라는 책이 은퇴 후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전했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두분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