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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5> 첫 번째 주제 ‘역사의 도시’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5> 첫 번째 주제 ‘역사의 도시’
  • 양건
  • 승인 2013.03.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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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층위 겹친 알뜨르비행장은 제주인의 기억 저장소"
- 가우건축 양건 대표

<미디어제주>가 ‘건축’과 ‘영화’를 담은 고품격 인문학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오는 5월 16일부터 현장 건축기행을 포함해 모두 5차례에 걸쳐 ‘미디어제주 제1회 인문학 강좌’를 개최합니다. 주제는 ‘김태일 교수와 함께하는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입니다. 이번 인문학 강좌는 주제가 그렇듯 영화를 통해 도시건축을 말하려 합니다. ‘건축’는 현장의 삶이며, ‘영화’는 가상의 삶이지만 숱한 영화는 건축을 빌어 영상이라는 언어를 표현합니다.

건축은 쉬울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어려운 단어이기도 합니다. <미디어제주>는 이번 인문학 강좌의 시행에 앞서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보는 인문학 강좌’를 준비했습니다. <미디어제주> 지면을 통해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를 설명하게 됩니다. 여기엔 건축 전문가와 건축 비전문가의 글이 번갈아 실립니다. 건축 전문가로는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가, 건축 비전문가로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가 영화를 본 뒤 글을 씁니다. 지면에 나갈 미리 보는 인문학 강좌는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됩니다. 모두 13편의 영화 이야기가 펼쳐지며, 제주도내 건축가들의 비평도 아울러 실으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주] 


양건 가우건축 대표
건축과 영화는 확연하게 다른 예술 영역이지만 두 분야 공히 시간과 공간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면에서 유사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빛을 다룬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반면 건축은 사람들에게 실체적으로 경험되면서도 침묵하지만, 영화는 두 시간 남짓 짧은 시간에 의도하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많은 건축가들이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기 하기 위해 영화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건축가들에게 영화는 친근하면서도 흥미로운 예술이다.

영화 속 도시건축이야기의 기획에 따르면 역사, 욕망, 감성, 미래 등의 주제 가운데 그 첫 번째가 역사의 도시이다. 이 주제를 위해 <리스본 이야기>, <로마의 휴일>, <티벳에서의 7>의 세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흥행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리스본 이야기>를 빼고는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이다. 영화의 제목에 그 배경이 되는 도시의 이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친밀감은 더해진다. 그런데 역사의 도시라는 주제로서 리스본, 로마, 티벳(영화는 티벳의 수도인 라사를 배경으로 한다)의 세도시를 연계하는 단서를 찾기란 쉽지 않다. 영화 셋 모두가 그 도시의 역사성에 초점이 맞춰진 내용도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결국 주제에서 논하는 역사란 그 도시 고유의 정제된 역사가 아니라 기억 저장소로서의 도시공간에 적층되어 있는 일상의 사건들을 칭하는 것으로 기획의도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각으로 다시 세 영화를 감상하여 보자.

필자가 영화 리스본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2007년 제주경관관리계획 수립을 위한 해외도시 경관답사 중에서이다. 마드리드를 거쳐 리스본을 향해 가는 버스 안에서 건축가 조성룡 선생께서 리스본에 들어가기 전에 볼만한 영화라며 틀어놓으셨는데 여행 중 피곤이 겹쳐서인지 참 지루한 영화였다는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을 것이란 자위를 해본다.

그런데 다시 본 <리스본 이야기>는 전혀 다른 영화로 내게 다가왔다. 영화 말미에 카메라를 등에 걸고 나타난 주인공 프리드리히의 방황은 요즘 우리네 건축가들과 동질의 고민 끝에 도달하는 염세와 허무였다. 프리드리히는 리스본의 상징적인 건축인 수도교주변의 도시풍경이 하루 만에 달라지고 오래된 것들이 사라져 감을 안타까워하며 리스본의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나 수동카메라를 돌릴 때마다 도시는 사라져가고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황임을 깨닫게 된다. 그 이미지의 공허함을 소리가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 믿고 음향기사 빈터에게 도움을 청하였으나, 소리마저도 마이크에 갇혀있는 이미지임을 알게 된 프리드리히는 결국 자신의 개입을 배제한 도시의 이미지를 채집하기 위해 카메라를 등에 걸고 다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빈터로부터 쓰레기 같은 싸구려 상품의 일회용이 아닌 세상을 위해 필요한 이미지를 만들자는 설득을 당하고 다시 영화를 찍게 된다. 해피엔딩의 마무리라 흐뭇하지만 영화 내내 프리드리히가 의구심을 가졌던 도시이미지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해답은 영화 중반에 노신사로 출연한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거장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감독의 독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믿을 것은 기억뿐입니다.’ 물론 기억들도 이미지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지만 삶의 현실을 기반으로 일상의 리얼리티를 담은 이미지라면 좀 더 본질에 다가선 기억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영화 <리스본 이야기>는 도시이미지의 실재란 삶의 일상이 축적되어 있는 기억임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에게 남겨져 있는 리스본의 기억은 온도시의 건축물 외벽이 마치 유화의 마티에르 기법처럼 도시민들의 삶의 흔적이 쌓여있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건축, 도로, 공원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피막 속에는 영화 <리스본 이야기>의 장면들인 칼갈이, 공동빨래터, 구두닦이 등 리스본시민들의 삶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은 리스본 사람들의 눈에는 애환이 담겨 있다는 안내자의 설명과 식당마다 흘러나오는 파두(Fado)의 선율이다.

프리드리히의 탄식처럼 하루가 다르게 새것으로 교체되는 세상이 우리 제주도 다르지 않다. 올리베이라 감독이 독백하듯 제주사람들의 삶이 담겨져 있는 도시건축과 일상의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을 제주의 기억이며 역사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 영화인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로마의 휴일>은 형식의 삶에 얽매여 있던 앤(오드리 헵번) 공주의 일탈을 통해 우리들에게 일상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유럽 여러 도시를 순방 중인 앤 공주의 일정에서 서구건축의 근원지인 도시 로마를 배경으로 한 의도는 무엇일까? 하는 건축가적 의문을 던져본다. 아마도 앤 공주가 대사관을 탈출하여 평범한 시민들과 벌어지는 사건과 관객들의 인지도가 높은 관광지란 공간을 결합하여 건축적 수법이라 할 수 있는 장소화하기가 용이하였기 때문이란 상상을 하게 된다. 영화를 통하여 포로 로마노 앞에서의 택시기사, 트레비 분수 인근의 이발사, 스페인계단에서의 젤라또 아이스크림과 꽃가게 아저씨, 산탄젤로성 앞에서의 선상 댄스파티 등의 장면에서 볼 수 있는 로마의 일상과 역사적 도시공간의 결합은 그 공간에 의미를 더하여 장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이유로 특종기사를 노리고 접근했던 죠 브래들리(그레고리 펙) 기자와의 사랑이야기가 영화<로마의 휴일>의 주요 내용임에도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움보다도 배경으로 흘러가는 로마의 도시모습들에 더욱 끌리는 듯하다. 필자 역시 로마를 여행하였을 때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그레고리 펙의 흉내를 냈던 기억이 있다. 진실의 입에 새겨진 조각이 강의 신 홀로비오이며 기원전 4세기 맨홀뚜껑이었음은 모르더라도 영화 <로마의 휴일>로 말미암은 장소화의 결과인 것이다. 최근 우리 제주에도 몇몇의 유사한 장소가 생겨났다. 며칠 전 개장한 영화 <건축학 개론>서연의 집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진실의 입앞에 손을 넣기 위해 줄을 서듯이, 어쩌면 서연의 집수돗가의 발자국에 발을 맞추는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설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알뜨르비행장과 격납고. 제주의 근현대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는 곳으로, 제주인들에겐 기억의 저장소인 셈이다.
장 자끄 아노 감독의 영화 <티벳에서의 7>은 주인공인 하인리히 하러와 달라이 라마간의 인간적 교감이 티벳의 자연배경과 2차 세계대전 및 중국의 공산화라는 시간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영화이다. 오스트리아의 산악가인 하러(브레드 피트)는 히말라야의 낭가파르팟 등정을 떠났다가 2차 세계대전이 발발되어 적국인 영국의 전쟁 포로가 된다. 산악인답게 탈출을 감행 히말라야를 넘어 티벳의 라사에 도착한다. 탈출의 과정이 힘들었지만 한 순간에 연속성이 단절된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지역적 특수성의 중심세계에 놓여진 것이다. 그러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공산화된 중국의 무력 앞에 나라를 내놓아야 하는 티벳의 운명을 지켜보게 된다. 친구 달라이 라마는 정치적으로는 그 생명을 다하였지만 문화적 영속성을 위해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지방정부의 지도자가 된다. 그리고 티벳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견이라도 하듯 하러에게 묻는다. “티벳의 역사를 담아 영화를 만들면 후대는 우리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을까라고. 전쟁이 끝나고 하러는 오스트리아로 돌아가며 달라이라마는 1959년 인도로 망명을 하게 된다.

필자는 영화 <티벳에서의 7>에서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티벳의 지역성과 주인공인 하러 및 공산화된 중국의 이데올로기로 대변되는 보편성의 문명적 충돌에 주목하게 된다. 영화 속 티벳과 유사하게 우리 제주의 역사도 지역성보편성의 충돌에서 비롯된 역사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달라이라마가 남기고자 했던 영화처럼 제주민들의 역사적 기억을 담아둘 장치는 무엇일까? 필자는 대정의 알뜨르비행장이상의 장소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주 유배문화, 태평양전쟁, 4·3, 최근의 관광개발사업 등 제주의 근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여러 층위가 겹쳐져 있는 그야말로 기억 저장소라 할 수 있다. 지금 현재 그대로도 이미 시간풍경(timescape)’인 것이다.

영화 속 도시건축이야기의 기획으로 <리스본 이야기>, <로마의 휴일>, <티벳에서의 7>의 세 영화를 건축가의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라는 주제로서 어떻게 세 도시를 연계할 것인가란 초반의 고민은 사라지고 세 영화 모두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의미가 만들어지고 기억이 남겨지며 그것의 가치를 얘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양건·가우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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