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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삼단변신을 위한 준비
아버지의 삼단변신을 위한 준비
  • 홍기확
  • 승인 2013.03.25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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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8>

공자의 제자들이 기록하고 편집한 논어(論語)의 첫 장은 학이편이다. 이 중에서도 첫 구절은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씀 중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말을 기록했을 것이다. 나 역시 삶의 지침은 오랫동안 이 구절이고 수시로 되뇌고 있다. 소개해 본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인생의 3단 변신을 표현한 말인 듯 하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나 역시 망각의 동물답게 배우고 나서 까먹으니 수시로 익히고 있다. 그래서 희열을 느낀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데 몸의 고생뿐 아니라 마음과 머리의 고생도 해 볼만하다. 물론 나이가 든다고 해서 배움을 멈출 생각은 없다.
최첨단 기계도 몇 년간 안 쓰면 고장이 나기 쉽다. 게다가 당시에는 최신 기계였다 하더라도 자주 업데이트 및 유지보수를 하지 않는다면 몇 년 후에는 진부한 고철로 변할 때도 많다.
집의 서랍에는 시대의 대세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각종 전자기기들이 있다. 버리긴 아깝지만 써 먹을 데가 없다. 세상에서 그런 존재가 되기에 나는 너무 소중하다. 배우고 가꾸어줘야 한다.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중장년기에 들어서면 친구가 소중해진다. 제주도에 정착한 지 2년 반이 흐르는 동안 많은 친구들이 서울에서 놀러왔다. 서로의 안부와 삶의 이야기들은 오랜만의 만남에 즐거움을 더해 준다. 친지와 친구들의 거리는 수 백킬로 미터쯤 되지만 애틋함은 과거의 수 미터에서 이제는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로 가까워졌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노년기에 이르면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며 값진 성과들을 찾는다. 대단한 성과도 있지만 변변찮은 성과도 많다. 하지만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낼 필요는 없다. 나의 삶은 남들의 평가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 평가심사는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지구인이 71억명 쯤 되는데 그들이 내 삶의 평가를 박하게 했다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다.

어제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비록 거나하게 술에 취하신 터라 마음이 약해지셨겠지만 사는 게 힘들다고, 살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고 우셨다. 12분의 통화 중에서 11분 동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친구란 건 이런 것이다. 그저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아버지는 그 동안 목숨을 걸고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상황은 이게 뭐냐고 하셨다. 아쉬웠다. 소위 “자발적 왕따”인 아버지는 인생에서 친구가 많지 않다. 너무 일만 한 탓이다. 술도 항상 혼자 마신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왔으니 아마도 유일한 벗이 사라졌을 것이다. 나는 제주도를 떠날 생각이 없다. 따라서 아버지가 제주도에 내려오는 게 친구를 만드는 가장 똑똑한 선택이다.

친구를 못 사귀는 성격에, 친구를 사귈 시간도 없이 일만 한 아버지.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는 건 어찌 보면 부모의 노력여하에 달렸다. 마찬가지로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긴 하지만 심성은 아이가 되어가는 부모를 위해 친구를 만들어 주는 건 젊은 자식들의 몫이다.
나는 내 또래보다는 내 아버지뻘 사람들과 더 친하다. 젊은 사람들보다 얘기가 더 통하는 것도 있고 배우는 게 더 많은 이유도 있지만, 사실 이게 전략이다. 아버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미리 물색 중이다.
어머니는 초특급 울트라 그레이트 사교성을 지닌 아줌마라 걱정이 되지 않는다. 원래 눈에 넣어 안 아픈 자식 없다지만 속담이 그런 것이지 현실은 보다 더 안타까운 자식이 있다. 내 눈에는 아버지가 그런 격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더욱 위한다고 해서 속상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안부를 묻는 전화의 대부분은 아버지나 몸이 약하고 마음 고생하는 누나의 안부를 말해주니까.

내 아버지니까 당연히 머리가 똑똑했지만 많이 배우지는 못하셨다. 아버지는 인생의 삼단변신 과정에서 첫 번째 과정을 적잖이 생략을 했다. 친구를 사귀는 두 번째 과정도 마찬가지다. 얼렁뚱땅 얼버무렸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1, 2단계를 생략하니 3단계인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는 지금 당장은 당연히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살펴보면 아버지는 단기간에 삼단변신을 이룰 수 있다. 1단계인 배움은 향후 언제든지 할 수 있고, 2단계 친구사귀기는 아들인 내가 도와주면 충분하다. 3단계 인생에 당당하기는 원래 어려운거니 삶의 마지막 순간에 판단하더라도 늦은 건 아니다. 이렇듯, 간단히 아버지의 삼단변신 계획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3단계인 인생에 당당하기 역시 자신감이 떨어진 아버지를 위해 내가 준비하는 게 있다. 지금까지의 삶이 괜찮았다고, 삶에 당당하라고 말해 줄 오롯이 아버지를 위한 소설 선물이다. 제목은 아버지가 수십년을 남대문 시장으로 출근할 때 사용한 애마인 오토바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들만 아는 오토바이의 애칭은 “오돌비”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내 소설의 제목을 『오돌비』로 정했다. 올해 1월부터 쓰고 있다.
소설의 완성은 2015년 아버지의 61세 생일날에 할 예정이다. 인생을 한 바퀴 돌았다고 하는 환갑(還甲) 후 1년이 진갑(進甲)에 그간의 삶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인생을 사시라는 의미로 말이다.

점점 약해져가는 아버지가 안타깝다. 하지만 내가 모든 걸 도와주고 항상 위로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인생의 책임은 대부분 자기 몫이니까. 그래도 나는 자식이다. 아버지의 유전자를 타고 났다. 게다가 상당부분은 아버지의 그간 힘겨운 삶에 대한 책임이 있다.
보통 변신 후에는 더 화려해지고 튼튼해지고 멋지게 된다. 변신준비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러모로 바쁘다. 하지만 나는 외롭고 상처 입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변형시킬 위험한 삼단변신을 계획하고 있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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