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인생과 배움의 마침표 찾기
인생과 배움의 마침표 찾기
  • 홍기확
  • 승인 2013.02.08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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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3>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가끔 떠오른다.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나와는 꽤나 궁합이 잘 맞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24살 차이였으니 그 당시 40대 초반이셨을 것이다.
하루는 담임선생님과 두런두런 얘기를 하는데 내 질문에 선생님이 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다음 말 한마디가 이리도 내 인생을 지배할 줄이야.

“그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겠네. 집에 가서 공부 좀 하고 와서 대답해줄게.”

멋진 용기다. 공자는 아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수능시험을 마치자마자 고등학교를 찾아갔었다. 고2 담임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라도 드리려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선생을 그 해에 그만 두셨다고 했다. 여러 선생님들께 물어봤더니 증권회사에 취직을 하셨단다. 정말 역동적이고도 훌륭하게 인생을 사는 참 선생님이다.
오늘은 유독 이 분이 생각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몇 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가신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60세가 가까이 되셨을 텐데 오클랜드라는 도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셨다.
내가 이 분은 예전에 알아봤다. 껄렁껄렁한 태도에 표정은 시건방졌다. 뜬금없이 나에게 불교무술을 배워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다거나, “뭘 하고 살아야 재미있을까”하고 질문할 때는 그 분의 정신건강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 달관했다는 듯이 가끔씩 허공을 응시할 때면 벗겨진 머리가 햇빛에 반사되어 후광이 비쳤다.

항상 책을 끼고 다니던 선생님. 가끔 보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던 선생님. 결국 투자상담사가 되어 증권사에 취직했고, 영어를 틈틈이 공부하며 내공을 쌓더니 그 어렵다는 뉴질랜드 이민까지 성공하셨다. 내가 보았던 선생님의 후광은 헛것이 아니었다.

과연 인생에 마침표는 존재할까?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최우수로 졸업 후 국내에 돌아와, 헤럴드 미디어 회장으로 취임하고 국회의원까지 했던 홍정욱. 이 분의 1993년 책 『7막 7장』에는 모든 문장에 마침표가 없다.
내 인생을 살펴봐도 나름 큰 획을 긋는 사건들은 많았지만 어디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진 아직도 모르겠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李箱)의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꿈이 없는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도 괴롭겠지만, 꿈이 너무 많은 공상가도 나름 고충이 많다.
뭔가를 해 보려고 하면 다른 것을 해 보고 싶거나, 이 책을 읽으면 다른 책을 읽고 싶고, 이걸 공부하면 저걸 공부하고 싶어진다.

과연 배움에 마침표는 존재할까?

지난 주말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비록 30여분에 불과했지만 아이가 책에 관심을 갖고 진득하게 읽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 한글을 읽지 못해 그림만 보지만, 책 내용에 대한 아이의 질문은 상상력이 더해져 대답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게다가 내가 모르는 것을 질문 받으면 얼굴이 빨개질 때도 있다.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아이를 위해 필요한 지식도 근본적이고 체계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고2 담임선생님처럼 나도 아이에게 솔직해야 한다. 모르는 것은 공부하고 찾아봐야 한다.

밥을 먹고 살기 위한 공부라면 우선은 대충 끝난 것 같다. 이제 더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아이 덕분에 틀렸다. 요새 읽는 책들은 아이의 질문에 답해 줄 우주, 바다, 생물 및 기초과학에 관한 책들이다. 이런 지식들이 당장 돈이 될 리 없다.
하지만 더 맛있는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공부는 “더” 중요하다. 중요한 것보다는 더 중요한 것을 하는 게 더 똑똑한 일이다.

지금도 인생과 배움의 마침표를 찾는 작업은 진행 중이다. 아마 고등학교 담임선생님도 내가 그간의 삶을 지켜본 바로는 인생과 배움의 마침표를 어디에 찍을지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선생님과 나, 단 둘이 언젠가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 인생이란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찾은 각자의 해답을 비교해보고 싶다. 정답은 아니더라도, 가장 적절한 답은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즘은 적절한 답을 구하는 것이 대세다. 객관식 질문도 “이 문제의 정답은?”이라고 물어보지 않고, “가장 적절한 것은?”이라고 물어본다.

하지만 인생과 배움의 마침표는 아무리 찾아도 못 찾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우연찮게 죽기 전에 찾는다면 행운이다. 그 날을 위해 일기를 써야 한다. 내가 마침표를 빨리 찾으면 나중에 내 일기를 보고 나보다 더 빨리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마침표를 찾지 못하더라도 내 일기를 선행연구로 참고하여 다른 사람이 마침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너무나도 게을러졌다. 마침표 없는 일기라도 계속 써야만 한다. 일기(日記)는 매일 쓰는 것이다. 주기, 월기, 연기는 없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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