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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올리는 진혼제, 그 현재의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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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률
  • 승인 2013.01.29 09:30
  • 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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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칼럼] <5> 오멸 감독의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오멸 감독의 <지슬>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Grand Jury Prize)을 수상했다. 인디 영화 최고의 권위를 지닌 선댄스영화제에서 극영화 경쟁 부분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이 영화는 지난 해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되었을 때 이미 화제의 중심에 섰었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선댄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영화가 미군정 시기에 발생한, 그러니까 미국이 책임을 져야 하는 제주 4.3항쟁을 극영화로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지슬>은 제주 4.3항쟁을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는 매우 단순하다. 이상한 것은 서사 구조가 그리 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동굴 속에 숨어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의 60일 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물론 그 사이에 마을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토벌대의 이야기도 진행된다. 그런데 두 이야기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아니,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때문에 흑백 화면의 영상 속에 그려진 60년 전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슬>이 그리고 있는 부조리한 세상이다. 고(故) 김경률의 전작 <끝나지 않은 세월>에서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 편집하면서, 지금도 남아있는 제주의 아픔을 그리는 것에 집중했다. 조성봉의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 시리즈에서는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생생한 육성으로 기록했다. 두 영화의 특징은 모두 리얼리즘에 입각해서 역사를 복원하고, 과거와 현재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멸은 이와는 정 반대의 길을 간다. 미술을 전공한 감독답게 장면 하나하나에 엄청난 공을 들여 서사 구조보다는 각 장면의 기이한 분위기에 관객들이 집중하도록 만든다. 마치 장면 장면이 한 편의 사진이나 회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 각 장면의 기이한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음악도 사용한다. 카메라는 최대한 느리게 움직이고, 천천히 컷되고, 서서히 흘러간다. 그 안에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학살의 잔혹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정적 장면은 항상 화면 밖에서 일어난다.

마을 주민들을 재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학살을 피해 동굴로 도망갔으면서도 자신들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어두운 동굴 속에서 웃고 이야기하며 돼지 걱정, 자식 걱정 같은 일상의 소소한 고민에 빠져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감자를 먹으면서 곧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이상한 것은 마을로 다녀온 이들이 주민들의 죽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분위기를 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마치 고흐의 그 유명한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처럼 그려진다. 그 순박하고 정직한 사람들의 모습. 과연 이게 정상적인가?

무엇보다 토벌대도 획일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가장 악독하게 살인을 행하는 토벌대 대장도 약에 취한 채 마치 동물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그에게 숱한 구박을 당하다가 결국 그를 마치 돼지처럼 솥에 삶아 죽이는 정길의 캐릭터도 기이하기는 마찬가지다. 빨갱이들에게 가족이 학살 당한 후 내려온 토벌대도 있지만 다른 군인은 제주민들이 착한 민간인이라는 것을 알고 죽이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수직적 명령을 지켜야 하는 처지에 있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토벌대의 그 아픔과 고뇌가 기이한 영상 속에 그려진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오멸 감독이 이야기하는 것은 4.3항쟁이 어처구니없는 학살이라는 것이다. 부조리한 학살이라는 것, 이성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학살이라는 것이다. 다리가 아파 동굴로 가지 못한 할머니는 일제 때에도 살아남았는데 해방 된 지금 설마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다가 살해 당한다. 이북에서 쫓겨온 토벌대가 빨갱이는 다 죽이고 싶다고 말하며 죽일 때, 할머니는 도대체 빨갱이가 뭐길래, 라며 죽어간다. 그것도 자식을 위해 감자를 품에 안고 죽어간다. 빨갱이가 아닌 이를 빨갱이로 몰아 죽이는 그 학살이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학살이라는 것을 영화는 이 한 장면으로 증명한다.

결국 오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4.3항쟁 때 죽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그래서 영화의 형식도 제사의 차례를 따른다. 영화 첫 장면에 제기(祭器)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영화의 진행이 제사의 순서를 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에는 제사 용어를 자막으로 크게 써 놓고 각 부분을 시작한다. 그 제사 과정에 따라 영화는 마을 사람들과 토벌대의 이야기를 차례로 보여주면서, 즉 죽은 자와 죽인 자를 보여주며, 왜 죽여야 했고 죽어야 했는지 진중하게 묻는다.

<지슬>이 중요한 것은 제주인들이 제주의 사건을 제주의 시각에서 그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등장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주 방언을 사용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인들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한글 자막을 읽어야만 한다. 이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뚝심의 결과이다. ‘서울공화국’인 이곳에서 이런 시도는 결코 쉽지 않다. 서울의 영향력을 벗어나 철저히 로컬 영화를 만드는 것. 영화의 내용대로 말하면, 학살자인 육지의 토대에서 벗어나 제주의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 이렇게 보면 <지슬>의 영화적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

이제 원론적으로 물어보자. 지금 와서 다시 4.3항쟁을 다루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픈 상처를 들추어 오히려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고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과 달리 <지슬>은 과거의 사건만 다루고 있지만, 거기에는 현재를 불러내는 강한 힘이 있다. 왜 그럴까? 지금 우리를 둘러싼 정세가 한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정이 책임 져야 할 사건에 미국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지금 강정에서는 해군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 주민의 의사 결정을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는 이 해군 기지가 남한만의 해군 기지라기보다는 미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많은 이들은 믿고 있다. 육지에서 건너온 토벌대, 그 뒤의 미군정에 의해 벌어진 잔혹한 학살의 아픔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 그 땅에서 다시 벌어지는 대규모 기지 건설을 바라봐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지슬>은 그 아픔을 필연적으로 불러낸다. 감독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지슬>은 강정과 겹쳐진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더 많이 아프다.

 

 <프로필>
 영화평론가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주간 <무비위크> 스태프 평론가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집행위원
 저서 <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바보> <친일영화>
 <영화는역사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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