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불타는 의지
불타는 의지
  • 홍기확
  • 승인 2013.01.10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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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7>

열심히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 의지가 약해졌을 때 나약한 의지를 다시금 불태울 한두가지 방법은 있을 것이다. 내 경우 크게 두 가지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재래시장을 가는 것이다. 재래시장은 내 의지의 원천이다. 그 속에는 수많은 삶의 굴곡과 역경을 극복하였거나 현재도 진행중인 위대한 인물들이 많다.

흔히 면벽수련 10년을 하면 도가 튼다고 한다. 달마대사는 9년 면벽수련 후 선종(禪宗)을 창시했다. 재래시장으로 가보자. 살아온 세월보다 많은 수의 주름을 가진 시장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같은 자리를 적게는 20년, 많게는 40년 넘게 지키고 있다.

항상 같은 자리를 바라보고 손님을 기다린다. 손님이 적은 날은 더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바라보게 된다.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십년간 한자리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까?

자기 혼자 먹고 살려고 이렇게 극적인 삶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자신만을 위해서 시장에 발을 들여놨어도 기다림에 지쳐 제 발로 시장을 떠났을 것이다. 누구나 사정은 있겠지만 이 분들의 불타는 의지의 화두(話頭)는 '가족'이 아니었을까?

방금 팔았던 고추는 내 새끼 팬티. 지금 감자를 왕창 사간 손님의 돈은 우리 남편 고등어자반. 내가 점심을 된장찌개 시켜 먹으면 오천원. 집에서 김치를 가져와 컵라면에 밥을 말아 먹으면 천원. 시장에서 컵라면을 드시며 물건을 파는 어르신들을 보면 내 의지는 불탄다. 그들은 컵라면을 먹으며 나에게 이야기해준다.

너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니? 삶의 의지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게 맞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의 컵라면에 담긴 삶의 의미들은 식어있는 내 가슴의 용광로를 지펴주는 화력 좋은 땔감들이 된다.

두 번째는 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열람실을 한 바퀴 돌며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공부를 하고 있나 차근차근 살펴본다. 수능을 공부하는 학생들, 공무원을 준비하는 젊은 친구들, 이른바 스펙을 높이기 위해 토익이나 자격증을 공부하는 청년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주택관리사를 준비하는 아줌마들이나, 공인중개사를 준비하는 머리가 하얀 아저씨들이다. 이 분들이 공부를 했던 게 과연 언제쯤이었을까? 수십년만에 책을 펴고 연필을 잡았다. 주변에서는 그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아줌마가 지금 와서 뭘 할 수 있겠냐고 했을 테다. 어느 누구보다 간절하고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심할 것이다.

나는 너무 편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이 도서관에 있는 시간은 비록 가족들이 잠들어 있을지라도 그들이 준 소중한 시간이다. 허투루 보낼 수 없다. 나이 드신 분들의 열정적인 의지에 화이팅을 외쳐 준다. 잠든 가족들의 묵묵한 응원에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말해준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한다.

불타는 의지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불을 지필 땔감도 그냥 오지 않는다. 스스로 구해야 한다. 가슴의 용광로가 식을 시간이 없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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