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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에 담긴 검은 비닐봉지
오토바이에 담긴 검은 비닐봉지
  • 홍기확
  • 승인 2012.12.11 10:3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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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

세상에 검은 비닐봉지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 여기. 보통 시장이나 상점에서 구비하는 비닐봉지는 두 종류가 있다. 하얀 색깔과 까만 색깔. 이 중 나는 까만 비닐봉지를 열렬히 선호한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밥그릇은 아버지의 오토바이였다. 장남인 아버지와 바로 밑의 작은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서울에 올라왔다. 어린 나이에 신문배달부터 막노동까지 안해본 것이 없었다. 그러다 20대 초반부터 남대문 시장에서 오토바이로 생선 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둘 다 몰랐을 것이다. 이 일을 40년 가까이 할 줄은.

예전의 일당은 모르겠지만 요즘의 생선 배달은 1회에 2천원을 받는다. 그리고 배달된 생선을 횟집의 냉동 창고나 주인이 원하는 곳에 넣어주면 천원을 추가로 받는다. 남대문 시장에서 천원을 더 받기 위해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옮겨 주는 사람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를 포함한 몇 명에 불과했다. 당연히 배달을 시키는 사장들이 많았다. 두 형제는 이렇게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았고, 밑의 동생들을 결혼시키고 그들의 자녀를 교육시켰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2~3시에 일을 나가셨다. 그리고는 보통 오전 12시 정도에 집에 오셨다. 내가 고3때 가출을 한 1997년 어느 일주일을 빼고는 하루도 일을 나가지 않은 적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실 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사가지고 오셨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순대며 새로 나온 과자, 만두, 남대문 시장표 싸구려 신발, 엄마를 위한 몸빼 바지, 머리띠 등등.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은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오토바이 시동 소리는 우리 가족 모두 알 수 있다. 다른 오토바이와는 확연히 달랐다. 오토바이의 시동 소리가 동네에 들리는 순간은 누나와 내가 문을 박차고 튀어나가는 순간과 일치했다.

아버지를 보자마자 잽싸게 오토바이 콘테이너에 담긴 비닐봉지를 습격한다. 생선 국물 냄새와 내장, 지느러미 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검은 비닐봉지라는 보호막이 있었다. 게다가 항상 내용물, 콘텐츠가 중요한 것 아닌가?

어쨌든 누나와 나는 아버지에게 무례하지 않을 만큼 대충 “다녀오셨어요!”를 외치곤 검은 비닐봉지에 대한 수색을 시작했다. 실망할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우리의 생활 패턴을 정확히 감안한 군것질 및 필요한 것들을 적기에 공수해 오셨다.

전통을 답습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집에 무언가를 들고 가는 것이 좋다. 피자 한 조각, 빵 몇 개, 싸구려 장난감, 과일 한 두 개. 이제는 아이도 내가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면서 퇴근을 하면 “아빠, 뭐 가져왔어요?”하며 쪼르르 내 곁으로 온다. 그리고는 비닐봉지를 뒤적거린다.

물론 아직까지 아이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횟수는 반도 안 된다. 이 자식. 좀. 냉정하다. 맘에 드는 게 아니면 비닐봉지만 들쑤시고는 자기가 있던 자리로 가버린다.

요즘 들어 스쳐간 검은 비닐봉지 중에서 아버지의 소주병이 담긴 비닐봉지가 많이 떠오른다. 하루도 술을 거르지 않았던 아버지. 그것 때문에 나와 충돌도 많이 했다. 검은 비닐봉지들을 모두 자식들에게 안겨주면서 꼭 소주병이 담긴 비닐봉지만큼은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돌돌 말아선 숨기듯 본인이 가져가셨다.

아버지의 소주병에는 화려한 수식도, 구차한 변명도 지금 생각해 보니 필요 없을 듯 하다. 나 역시 대출이 힘들고 막막해서 혼자 소주를 먹고, 긍정적인 아내 덕분에 나쁜 얘기 안 하고 혼자 삭이며 소주를 먹기도 했다. 이미 많은 상처를 입은 아내에게 사소한 것이라도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정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혼자 소주를 먹었던 날도 있다.

군대 제대 직전 나온 휴가, 특별히 할 일도 없어 아버지의 터전인 남대문 시장을 몰래 찾아갔던 적이 있다. 아버지는 동료들과 배달 주문을 기다리며 컵라면에 술을 드시고 계셨다. 그 때 젊은 아가씨가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홍씨!”

어? 홍씨? 우리 아버지의 이름은! 이런. 아버지는 30년 동안 자기 이름을 잃고 살아왔구나. 게다가 새파랗게 젊은 게 싸가지 없이 어른한테 홍씨라니.

아버지는 즉각 컵에 담긴 소주를 들이키시곤 배달을 나섰다. 나는 정말 묵묵히 아버지가 떠난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가끔 말하시던 “컵라면에 소주 글라스”가 저거였었다. 가족에 대한 희생은 그렇다 치고 자기의 이름까지 잊고 살아왔다니. 게다가 안주가 컵라면이 뭐요?

그 길로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아버지도 들어오셨다. 그 날도 역시 검은 비닐봉지엔 소주가 담겨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평소와 같이 한 병이 아닌, 소주 두 병이었다는 것과 옆의 아이스박스에 엄청나게 큰 문어가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주 예외적으로 술을 드시다 시장에서의 일을 얘기하며 넋두리했다.

“15만원짜리 문어를 배달 갔는데 도착했더니 문어가 없더라고. 떨어뜨렸나봐. 그래서 잽싸게 온 길을 되돌아갔는데 이미 차들이 몇 번 밟았더라고. 그래서 오늘 일당 그대로 문어 값으로 줘버렸어.”

오늘 유난히 아버지의 콘테이너에 술과 문어밖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없더라니. 나는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서는 펑펑 울었다. 그 때 나는 급성장을 했다. 문어를 며칠동안 먹으며 말이다.

아버지의 그 때 소주병. 지금의 내 소주병. 과거에는 부자지간을 원수로 만든 녀석이 지금은 아버지와 나를 이어준다. 요즘은 아버지와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면 만취해서는 서로를 위로한다.

다음은 시게마츠 기요시의 『아빠는 우주최강 울보쟁이』에 나오는 글.

“바다가 돼라. 자식의 슬픔을 삼키고 자식의 외로움을 삼키는 바다가 되어라.”
“눈이 아무리 내려도 묵묵하게, 모른 체 삼키는 바다가 돼야 된다.”

이 말을 이해할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나.

이제 남대문 시장의 횟집은 겨우 10여개 남짓. 남대문 시장 현대화는 아버지의 일터를 바꾸어 놓았다. 아버지는 본의 아니게 은퇴 아닌 은퇴를 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일거리 없는 남대문 시장을 꼬박꼬박 나간다. 나와 누나가 없는 집. 검은 비닐봉지는 몇 개로 줄었을까? 엄마를 위한 비닐봉지는 몇 개일까?

지금도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가 그립다. 아내는 내가 집에 들어올 때 가끔씩 “차 주차하는 엔진소리 듣고 당신 온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이때는 더욱 그립다.

 

 

▲ 홍기확 객원필진 <미디어제주>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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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0 2012-12-13 19: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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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확 2012-12-12 10:21:56
결혼, 출산, 육아...어떻게 보면 삶은 참 역동적입니다.
그럼에도 종착점(죽음)과 시작점(탄생)은 정해져있죠.
정해진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지만 그 길을 갈 때 궤도를 이탈하기도 합니다.
굽은 길을 가기도 하죠.

비행기는 1시간 비행에 무려 57분 가량을 궤도를 이탈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3분만 정상 궤도를 가고, 57분은 그 궤도로 가기위해
노력한다는 말이죠.

길이 굽었다고 해서 내가 굽은 건 아니랍니다.
길에 심어진 삼나무는 쭉쭉 곧게 뻗어 있지 않습니까?
나 역시 굽은 길을 가더라도 제대로 '걷고' 있습니다.
길이 굽었다고 해서 내가 굽은 건 아니니까~!

살짝살짝 나아지려는 많은 사소한 노력들이 모여
이렇게 객원필진이 되고 한 구석 방을 하나 얻은 것 같습니다.

언제나 솔직하게 살고 있습니다.
많은 응원들 감사합니다~!

서포 2012-12-12 09:45:19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않는군.. 이렇게 글을통해 만나니 만갑다. 문운이 일취월장하기를 ....

애독자 2012-12-11 14:32:29
보통 사람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처럼 잔잔하면서도 감동스런 글이네요.
시장에서 아버지를 지켜볼 때, 저도 어린시절 부모님이 고생하시던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했는데, 문어를 보고 펑펑 울었다는 대목에서 저도 눈물이 울컥~
한 사람의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진솔한 글이네요.
앞으로 계속 좋은 글 기대할께요^^

2012-12-11 13:55:09
필진으로 만나니 반갑습니다. 가슴에 와닿네요. 눈가에 눈물이 고일정도로요. 계속 좋은 글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