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가을 속으로 걸어가는 여행
깊은 가을 속으로 걸어가는 여행
  • 고희범
  • 승인 2012.11.13 16: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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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의 제주이야기] 제주포럼C 제28회 제주탐방 후기

 

30도의 가파른 경사를 보이는 피라미드 모양의 동검은이오름 봉우리들.

어느 해 11월, 강원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버스 창문 밖으로 펼쳐진 정경은 탄광지역의 우중충한 회색빛 하늘과 땅,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옥수수대와 잎을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는 쌀쌀한 날씨 보다 더 스산하고 쓸쓸했다. 색깔로 표현한다면 영락없는 회색이었다. 이후 11월의 이미지는 나에게 회색으로 기억되었다.

제주의 11월은 회색이 아니다. 곳곳에 여전히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와 삼나무, 나무 가득 매달려있는 노란 감귤이 적절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억새와 누렇게 마른 들풀마저 따뜻하기만 하니 제주의 11월은 아직도 청청하고 풍성하다. 그래도 가을은 깊어 어느 새 겨울이 문턱에 다가온 듯 한라산에는 며칠 전 눈이 내렸다.

우리는 제주의 짙은 가을색을 보고 싶었다. 오름군락 한 가운데 위치해 있는 동검은이오름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조천읍 선흘리 거문오름을 '서검은이오름', 그보다 동쪽인 구좌읍 종달리의 이 오름을 '동검은이오름'이라고 부른다. 거미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거미오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검은이오름은 '신령스럽다'는 뜻의 '검'자가 붙은 오름답게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피라미드를 닮은 삼각뿔 모양의 봉우리와 돔형의 봉우리가 4개, 원형과 말굽형의 분화구가 3개, 마치 고분군을 보는 듯 주변의 20여개 알오름 등 오름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오름이 형성된 과정은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3개의 분화구는 첫 화산폭발이 이루어진 뒤 화구가 이동하면서 두 차례 폭발이 이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첫 화산폭발로 분화구 주위에 송이층이 쌓인다. 뒤이어 분출한 마그마(용암)가 남서쪽의 약한 송이층을 무너뜨리면서 넘쳐 흘러 말굽형 분화구를 만들어놓았다. 이렇게 흘러넘친 마그마에 송이더미가 뗏목처럼 실려 내려가다 몇개의 작은 송이언덕(분석구)들을 만들었다. 동거문이오름 근처 알오름은 이렇게 해서 생겼다.

4개의 봉우리는 송이층으로 이루어진 분화구 주위의 능선이 군데군데 내려앉는 바람에 생긴 것이다. 경사가 급한 화구 안쪽으로 송이층 일부가 무너져 내리자 남아있던 송이층이 자연스럽게 봉우리 모양이 됐다. 분화구쪽 경사면이 더 가파른 이유이기도 하다.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는 이들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목책의 밧줄이 다소 도움이 된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어려울 만큼 좁은 능선. 오른쪽의 분화구쪽 사면이 벼랑처럼 가파르다.
남서쪽으로 마그마가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말굽형 분화구. 경사면에는 관목들이 들어섰다.

민둥산인 오름은 풀로 덮여 있어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한다. 마을공동목장으로 이용될 때만 해도 마을 주민들이 오름 주변에 목초지를 만들기 위해 '방애불'을 놓아 관목과 해충을 제거하고 마소가 먹을 풀과 초가를 지을 '새'(띠)가 자라도록 했다. 사람들이 간섭을 하지 않게 되면서 오름에는 덤불이 자리를 잡고 이어 관목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소나무 씨가 날아와 소나무가 자라기도 한다. 이제 동검은이오름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숲으로 뒤덮일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다.

 

 
동검은이오름에서 본 주변의 오름군락.

동검은이오름이 제주 동부지역 오름군락의 한가운데 있는 덕에 오름 정상에서는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방에 널린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약초가 많다는 백약이오름, 주변에서 가장 높다는 높은오름, 달이 걸린다는 다랑쉬오름, 제주에서 억새가 가장 아름답다는 용눈이오름, 다섯개 봉우리가 연결된 좌보미오름, 오름의 전형인 민둥산 민오름, 영화 '이재수의 난'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진 아부오름, 세미오름, 문석이가 살았다는 문석이오름 등이 멀거나 가까이에서 동검은이오름을 둘러싸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오름 정상 주변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까지 불었다.

오름 정상의 강한 바람과는 달리, 오름 주변에서는 억새가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오름 곳곳에는 작은 키에 꽃을 피운 야생화가 늦가을의 정취를 자아낸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가을 야생화들이다. 꽃향유와 쑥부쟁이는 군데군데 무리지어 피었고 물매화는 이따금 부끄러운 듯 한두송이씩 작은 꽃을 피우고 있다.

 

 
 

꽃향유는 보통 무릎 높이까지 키가 자라지만 오름에 핀 꽃향유는 키가 10여cm에 불과하다. 비교적 기온이 낮고 바람도 드센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것이다. 작은 꽃들이 빽빽히 모여 화려한 느낌을 준다. 야트막한 언덕이나 풀밭 등 햇볕이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꽃에서 향기로운 기름을 짜내거나 꽃을 말려 차로 마신다.

 

 

쑥부쟁이는 꽃말이 그리움이다. 이런 꽃말이 붙게 된 전설이 있다.

먼 옛날 어느 마을에 대장장이 가족이 살고 있었다. 대장장이의 큰 딸은 병든 어머니와 11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쑥을 캐러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쑥을 캐러다니는 불쟁이의 딸'이라는 뜻으로 '쑥부쟁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녀는 멧돼지 사냥을 위해 파놓은 함정에 빠진 사냥꾼을 구해주었다가 사냥꾼과 사랑에 빠졌다. 이듬해 가을 다시 오겠다면서 떠나버린 사냥꾼을 기다리던 그녀가 벼랑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가 죽은 뒤 동네 산과 언덕에 작고 예쁜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사냥꾼을 그리워하던 그녀의 넋이라고 여기고 그 꽃을 '쑥부쟁이'라고 부르게 됐다.

 

 

물매화는 지름이 1~1.5cm의 매화와 비슷한 작은 꽃을 피운다. 풀매화, 매화초, 다자매화초 등 여러 이름이 있다. 7월말이면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피기 시작하는 물매화는 작은 웅덩이 옆에 피기도 하지만 햇볕이 잘 드는 오름 언덕에도 핀다.

 

동검은이오름과 문석이오름 사잇길. 길 왼쪽 밭 둘레에 유해동물로 지정될 위기의 노루 방지 망이 쳐 있다.

동검은이오름 서쪽에 이웃해 있는 오름은 문석이오름이다. 이날 우리를 안내한 생태문화해설가 강양선 선생은 이 오름의 이름이 '문석'이라는 말테우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소개했다. 여자가 앉아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오름을 무척 좋아해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는 바람에 오름에 그의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검은이오름을 내려와 조천읍 북촌리 '돌하르방공원'을 찾았다. 곶자왈의 울창한 숲과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돌하르방이 어우러지는 돌하르방공원은 촉촉하게 내리는 가을비 속에 호젓했다. 제주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돌하르방을 재현하는 등 돌하르방을 주제로 삼고 있는 점 외에 공원 내부의 곶자왈을 자연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원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가장 제주다운 공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돌하르방은 1754년쯤 김몽규 제주목사에 의해 제주목에 24기, 대정현과 정의현에 12기씩 모두 48기가 각 도읍지의 성문 앞에 세워졌다. 대정현과 정의현 돌하르방은 성 안에 남아있으나 제주목 돌하르방은 1960년대 말 하나둘씩 학교나 기관, 단체 등으로 흩어져 버렸다.

어떤 연유로 이들 돌하르방이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제주대학교와 삼성혈에 각각 4기씩, 제주시청과 KBS제주방송총국 입구에 2기씩,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에 2기,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뜰에 2기가 서 있고, 1기는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읍성에 있던 돌하르방 24기를 제주목관아지로 모두 옮긴다는 계획이지만 소유권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주목 돌하르방은 제주성의 동서남문에 각각 8기씩 모두 24기가 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몸집이 크고 표현이 섬세하다. 3등신으로 상반신만 표현해놓았는데 표정이 위압감과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위 사진) 돌하르방 받침돌 중 일부는 'ㄱ'자와 'ㅁ'자 모양이 홈이 파져 있다. 성문 대신 정낭을 걸쳐두었던 자리에 돌하르방을 세우면서 받침돌이 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아래 사진)

 

 

대정현 돌하르방은 대정성 동서남문에 각각 4기씩 서 있던 12기가 대부분 그 자리에 남아있다. 크기도 작고 조각기법도 섬세하지 않다. 앞면만 조각돼 있고 뒷면은 다듬지 않아 자연석 그대로다. 귀엽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서귀포의 한 감귤밭에서 채 완성되지 않은 대정현 돌하르방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각 지역의 장인들이 그 지역 돌하르방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정의성의 동서남문 앞에 그대로 서 있는 12기의 정의현 돌하르방은 대정현의 경우 처럼 2등신의 크기로, 대부분이 뒷면은 손을 대지 않아 자연석 형태로 남아있다. 표정은 엄숙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을 준다.

제주의 토박이 화가 김남흥씨가 11년 동안 돌을 찾아 다듬고, 쌓고, 길을 내고, 가꾸어 돌하르방공원은 거대한 '자연미술관'이다. 그는 48기의 돌하르방을 원형 그대로 재현해놓은 데 더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그는 "큰 돌을 찾고 다듬고 옮기고 세우는 과정이 제주인의 공동작업이었던 만큼 돌하르방은 250여년 전 제주인들의 공통의 염원을 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과 절박함을 해결하는 길은 '평화'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오늘 평화의 의미는 사랑, 행복, 건강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평화라는 음식의 주재료는 아마도 그런 것들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제주도민을 위한 수호자의 모습에서부터, 꽃바구니를 들고 있기도 하고, 새를 안고 있거나 새장을 머리에 이고 있는 돌하르방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낭 틀을 붙들고 서서 익살스런 표정으로 엿보는 돌하르방도 있고, 돌하르방 악단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돌하르방은 몸을 땅 속에 둔 채 두 팔을 벌려 모든 사람을 품어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앞 모습은 돌하르방인데 뒷 모습은 남근석이다. 돌하르방은 제주를 지키는 수호신이기도 하고, 경계를 알리는 표지석의 기능도 하지만, 아이를 점지해주는 기자석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러 개의 자연석을 조합해 거대한 돌하르방을 만들기도 했다.
 
제주의 묘에 서 있는 동자석은 죽은 이의 심부름을 하도록 하기 위해 세웠으나 상당수의 동자석이 도난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곶자왈 습지에 서 있는 석탑. 가을비에 젖은 채 연잎 위에 떠 있는 석탑이 고즈넉이 아름답다. "평화는 존중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어서 자연물을 그대로 존치하는 것을 우선해 작업해왔다"는 김남흥씨. 자연을 존중하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평화의 기운을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역력하게 드러난다.

 

 

돌하르방공원의 주제는 '숲, 만남, 그리고 평화'다. 이슬람교와 기독교, 불교가 손을 잡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공원 한 켠은 돌하르방을 만나러 세계 각국에서 온 '평화사절단'이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나무 재료로 조각됐다.

 

 
 
 
 
공원 입구 근처 한 귀퉁이에 마련된 돌 테이블과 의자. 오붓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원밖 담장 밑에 누워 '잠자는 나무'. 태풍에 쓰러진 후박나무를 옆으로 심어 큰 가지가 위로 자라도록 했다. 쓰임새가 다 한 것이 다시 생명을 갖도록 하는 것도 평화를 향해 가는 중요한 길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좁은 흙길과 아무렇게나 놓인 듯 자연스럽게 배치된 돌 무더기, 거칠고 투박한 제주석의 소박한 아름다움, 작가의 익살이 제공하는 가벼운 웃음, 곳곳에 배여있는 평화의 메시지. 돌하르방공원을 나서며 느껴지는 작가의 손길이 따뜻하다. 제주의 가을은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여전히 푸르고 따뜻하게 깊어가고 있었다.

 

 

<프로필>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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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drlgh 2013-11-04 22:00:16
요즘 날씨도 정말좋고 한데 참좋은곳 여행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