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한라산, 내면을 만나다
가을 한라산, 내면을 만나다
  • 고희범
  • 승인 2012.10.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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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의 제주이야기] 제주포럼C 제27회 제주탐방 후기

'이 산은 그 혜택이 백성과 나라에 미치고 있는 것이니 지리산이나 금강산 처럼 사람에게 관광이나 제공하는 산들과 비길 수 있겠는가. 오직 이 산은 유독 바다 가운데 있어 청고하고 기온도 낮으므로 뜻 세움이 곧고 근골이 건강한 자가 아니면 결코 오르지 못할 것이다.'

조선말기 유학자이자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이 1년 3개월의 제주 유배생활을 마치고 난 뒤 한라산을 오르고 남긴 기록의 한 대목이다.

한라산. 제주의 역사와 제주인의 삶이 한라산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제주도의 상징'이라는 것 외에 더 적절한 표현이 없을 것이다. 한라산을 '제주탐방'의 주제로 삼는 일 조차 버거워보이는 이유다. 우리는 한라산 단풍이 한창임을 기화로 한라산의 한 귀퉁이를 살펴볼 요량으로 한라산 전문가이자 사진작가 강정효 선생을 길잡이 삼아 등산길에 나섰다.

'한라산'(漢拏山)의 원래 이름은 '하늘'을 뜻하는 '한울산'이었다고 한다. 높은 산이라는 점 외에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옛사람들은 한라산에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으니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겼을 만하다. 이 이름이 고려시대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한라산으로 바뀌어 부르게 됐다는 말이다.

백록담도 마찬가지다. 원래 화구호(火口湖)라는 뜻의 '불늡'(火池), 또는 천신(天神)의 못을 뜻하는 '밝(아래아)늡'(天池)으로 일컬었던 것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백록'(白鹿)으로 바뀌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은상은 <탐라기행 한라산>에서 "깊고 높고 신비한 뜻을 묻어버리고 남의 글자를 함부로 집어오는 것이 어떻게나 어리석고 탈날 일이 아니겠더냐. 조선의 역사가 남의 글자 때문에 오그라들고 남의 사상 때문에 시들어버린 것을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은 '백록'의 두 글자는 소리나게 동댕이쳐 버릴 일이다"라고 한탄했다.

'한라산'이라는 이름은 고려 충렬왕 때인 1275년에서 1308년 사이 제주에 머물던 혜일스님의 시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한라의 높이는 몇길이던가. 정상의 웅덩이는 신비로운 못'이라는 내용이다. 또 고려사에는 '진산(鎭山) 한라는 현 남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시대에 이미 한라산이라는 이름이 널리 쓰인 것이다.

 

 

전시실 바닥에 설치된 제주 고지도.

우리는 어리목에서 윗세오름까지 오르는 등산로를 택했다. 산을 오르기 전 어리목광장의 '한라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를 찾았다. 1~2층의 전시실에는 한라산의 생성과 지질, 한라산에 얽힌 설화, 식생과 조류, 동물 등을 소개하는 사진과 동영상, 박제가 전시돼 있다. 한라산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잘 하고 있다. 하지만 2층 전시실의 조명을 너무 어둡게 해놓아 전시물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맑은 하늘 아래 버티고 서 있는 한라산은 지난 여름 짙은 초록빛으로 가득했던 모습과는 달리 가을색이 완연했다. 한라산의 낙엽활엽수림이 계절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한라산을 '생태계의 보고'라고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4천여종의 식물 가운데 지리산이 1300여종, 설악산이 1천여종인 데 비해 한라산에는 1800여종의 식물이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아열대 식물의 북방한계, 한대 식물의 남방한계 지역으로 식물의 분포상을 관찰하는 데도 그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식물도 한라산이 가장 많다. 한국 특산 식물 4백여종 중에 설악산 23종, 금강산 34종, 울릉도 36종, 백두산 42종, 지리산 46종인데 한라산은 75종으로 그 다양성이 국내 최고다. 한라산에서만 자라는 제주특산식물도 30여종에 이른다.

어리목 등산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린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입구에서 500여m쯤 떨어진 Y계곡에 이르자 단풍나무가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등산로 초입의 Y계곡을 물들이고 있는 단풍. 등산객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Y계곡은 백록담 서북쪽 벼랑에서 시작되는 남어리목골과 북쪽 장구목에서 시작되는 동어리목골이 만나 이루어졌다. Y계곡은 제주의 전형적인 바위투성이 건천이다. 예전에는 Y계곡에 물이 조금씩 흘렀다고 한다. 제주시민의 식수원인 어승생수원지를 개발하느라 두 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둑을 쌓고 이 물을 수원지로 끌어가는 바람에 건천이 된 것이다.

계곡을 지나면 1400고지인 사제비동산까지 가파른 숲길이 이어진다. 계속되는 급경사의 계단을 오르느라 두 차례나 숨을 돌려야 했다. 이 구간에는 한라산의 낙엽활엽수림대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한참을 헐떡이며 오르던 도중 길잡이 강정효 선생이 우리를 막아 세운다. 밑동이 아름드리인 죽은 나무 앞이다. 3년 전에 죽은 수령 500년의 물참나무다. 이 나무에는 '송덕수'(頌德樹)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인데 그 사연은 이렇다.

옛날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어떤 이가 먹을 것을 구하려고 산을 헤매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쯤 뒤 '후두둑'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 나무 열매로 죽을 끓여 먹고 굶주림을 면하게 됐다. 이후 사람들이 이 나무의 덕을 칭송한 데서 송덕수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송덕수는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던 등산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은 자리에 서 있다.

숨 가쁘게 산을 오르다 듣게 된 송덕수 이야기는 피로를 씻어주는 청량제였다. 이 나무의 사연을 소개하는 안내판은 나무가 죽자 철거됐다. 제주의 빼어난 자연환경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토리와 문화가 더해져야 그 가치가 훨씬 커지는 것이다. 설령 오랜 세월이 흘러 이 나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해도 '송덕수가 있던 자리'라는 표지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장 안내판을 다시 세울 일이다.

다시 산을 오르기 15분쯤. 급경사가 끝나면서 어느 새 울창한 숲은 사라지고 확 트인 초원지대가 눈 앞에 펼쳐진다. 사제비동산이다. 등산로 초입부터 우리를 따라오던 조릿대가 이곳 초원까지 가득 메우고 있다. 한라산에 말을 방목하던 때 훌륭한 말 먹이였던 조릿대가 국립공원 내 방목이 금지되고 기후변화의 영향이 미치면서 백록담 턱밑까지 올라오게 된 것이다.

지표면을 덮은 조릿대는 한라산의 식생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미나리아제비, 한라구절초, 고들빼기 등 키 작은 초본류들이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러 '영주산'에 왔던 서복(徐福)이 가져갔다는 시러미는 조릿대에 밀려 바위 위로 줄기를 뻗고 있다.
 

 
온통 조릿대로 덮인 사제비동산. 겨우 살아남은 시러미가 바위 위로 피해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조릿대는 갑작스런 기상이변이 있을 경우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죽는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숙종 때인 1723년 "4월 이후 온 산의 대나무에 열매가 맺혔다. 제주 3읍이 극심한 가뭄으로 보리가 여물지 않아 먹을 게 없을 때 이 열매로 범벅과 죽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난 1962년에도 조릿대가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제주에는 2년동안 최대의 한파가 몰아닥쳤었다고 한다. 60년에 한 번씩 꽃이 핀다는 조릿대가 과연 60년이 되는 2022년 쯤 에도 그럴 것인가?

경사가 완만한 사제비동산에서는 한결 여유가 생긴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 북쪽으로는 비양도, 서쪽으로는 송악산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눈 앞에는 오름 군락이 펼쳐져 있다.

 

육안으로 확연히 보이던 비양도가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다.

제주도내 오름은 368개. 이 오름들은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들 때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르다 치마의 찢어진 구멍으로 흘러내렸다는 흙덩이들이 아닌가. 한라산을 중심으로 100여 차례의 화산 폭발에 의해 만들어진 기생화산 오름의 생성과정을 기막히게 설명하는 옛사람들의 입담이 만만치 않다.

고도 1600m를 지나면서 만세동산 사면에 구상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살아 백년, 죽어 백년'이라는 구상나무. 그러나 기후변화로 한라산의 평균기온이 올라가면서 구상나무의 운명도 불확실하다. 한대식물의 남방 한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한라산에서 구상나무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등산로 주변의 훼손된 지역을 복원하면서 구상나무를 인공식재해놓고 있다.

 

 

 
 
1600고지의 '살아 백년'(맨 위 사진) '죽어 백년'(가운데)의 주인공 구상나무 군락과 구상나무 보호를 위한 인공식재 현장(아래). 60~70cm 높이의 이것들은 어려 보이지만 이미 9~10년생이다.

사제비동산에서 30여분쯤 더 오르면 백록담 화구벽의 웅장한 모습이 눈 앞에 다가온다. 20만년 전 화산폭발과 함께 백록담이 생성될 때는 이 화구벽이 완만한 경사를 보였을 것이다. 부드러운 조면암으로 이루어진 화구의 서북쪽과 남쪽 벽이 오랜 세월 동안 깎여 나가면서 가파른 절벽을 만들어냈다. 서북벽은 최근에도 태풍으로 크게 깎여나갔다.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의 화구벽과 그 앞으로 펼쳐진 고산 초원

화구벽 북쪽에 펼쳐진 만세동산은 드넓은 고산 초원지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습지원이다. 영주십경의 하나인 '고수목마'(高藪牧馬)의 현장이다. 지금은 그런 장면을 다시 볼 수 없지만 한라산 정상 코 앞에 펼쳐진 초원에서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거나 뛰노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환상적이다. 만세동산 전망대에서는 제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윗세오름 대피소 앞 목재데크는 점심을 먹으려는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컵라면을 사기 위해 줄지어 선 사람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윗세오름은 오름의 이름이 아니라 '위에 있는 세 오름'을 일컫는 표현이다. 붉은 오름, 누운 오름, 족은 오름이 포함된다. 제주어 표기법 대로 한다면 '윗세오름'은 '웃세오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대피소 주변에는 큰부리까마귀 무리가 나무 위에 앉아 등산객들이 던져주는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큰부리까마귀는 한라산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조류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등산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큰부리까마귀

한라산에는 큰부리까마귀 외에 큰오색딱따구리도 제법 많은 개체수가 서식하고 있다. 한라산에서는 희귀종인 삼광조와 팔색조도 드물게 관찰된다. 포유류의 경우 노루가 한라산을 대표하고 있다. 포획이 금지된 덕에 크게 불어나 1만7천여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루에 의한 농작물 피해 때문에 유해동물로 지정될 전망이다.

과거에 한라산을 상징하는 짐승은 사슴이었지만 1910년대에 사라진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시대 제주의 대표적인 진상품은 사슴으로 녹용 외에 사슴 가죽, 말린 고기, 혓바닥, 꼬리 등을 진상했다. 1702년 10월 어느 날 이형상 목사 일행이 교래리 지경에서 사냥을 한 기록에는 하루에 사슴 177마리, 돼지 11마리, 노루 101마리, 꿩 22마리를 포획한 것으로 돼 있다. 그만큼 사슴이 많았다는 것이다.

윗세오름까지 오른 우리는 하산길을 영실로 잡았다. 오백장군 외에 기암절벽의 절경을 보여주는 영실은 '영실기암'(靈室奇岩)이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오죽하면 '신령이 살 만한 곳'이라는 뜻의 영실(靈室)이라고 했을까.

 

 
하산길에 마주치는 영실기암. 위 사진 왼쪽의 병풍바위와 오른쪽의 오백장군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단풍에 싸인 절벽. 산악인들은 험준한 이곳을 '저승문'이라고 부른다.

한라산 서남쪽 등산길인 영실코스는 3.7km의 짧은 거리로 1시간 30분이 걸린다. 봄에는 바위틈의 진달래와 철쭉, 여름이면 울창한 숲과 시냇물,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 겨울에는 바위와 나뭇가지 위에 핀 눈꽃이 산을 오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암과 단풍에 넋을 빼앗긴 채 산을 내려오면 뒤늦게 다리가 묵직해진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매표소가 있는 주차장에 이르렀지만 이곳은 승용차 전용 주차장이고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까지는 2.5km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걸어내려야 했다.

조선시대 진상품의 생산지, 일제의 마지막 결전을 위한 기지, 4.3 때에는 피신과 학살의 현장이던 한라산. 제주의 비극적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한라산은 동시에 제주인의 삶을 지켜오기도 했다. 한라산이 그 장엄한 형상 속에 품고 있는 미래가치는 또한 얼마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프로필>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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