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오래된 미래를 찾아서
오래된 미래를 찾아서
  • 조미영
  • 승인 2012.10.17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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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의 여행&일상」이라는 코너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여행의 기록을 우리 일상의 이슈와 함께 잘 버무려 맛깔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도 북부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마날리에서 라다크, 스리나가르를 거쳐 달라이라마의 망명정부가 있는 맥그로간지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북부 산악지대의 신선한 공기와 장엄한 산맥으로 인해 인도의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슬픔이 함께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전쟁과 인도와 중국 간의 영토 분쟁으로 인해 전쟁의 불씨가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때는 여행객들의 출입이 꺼려지는 곳이기도 했지만, 그 치명적인 매력으로 인해 여행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을 찾는다.

더운 날씨가 지속되는 인도에서 마날리는 보석 같은 곳이다. 아침, 저녁 선선한 날씨와 산과 계곡에서 뿜어내는 자연의 상쾌함은 이곳이 '인도의 스위스'라 불리는 이유를 알게 해 준다. 또한, 마날리는 북서부지역의 교통 요지이다. 라다크 등으로 가는 여행객들은 이곳을 경유해 올라간다. 나도 마날리의 유명한 사과 주스로 속을 달래며 머나먼 여정을 시작했다.

 

마날리의 아름다운 계곡과 휴양지의 전경.

라다크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산맥을 따라 난 비포장 도로가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을 두 번 놀래게 한다. 한 번은 거대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그리고 또 한 번은 안전장치조차 없는 천 길 낭떠러지가 바로 코앞이라는데 가슴이 쪼그라든다.

5000미터의 고지에 이르러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지경의 고산증을 경험할 때쯤이면, 창밖의 어마어마한 경치에 대한 관심도 차츰 시들해진다. 그렇게 1박2일의 여정을 거쳐 라다크의 주도인 레(Leh)에 도착했다.

 

티끌 없이 파란 하늘 아래 장엄한 산맥이 우뚝 서있다. 산 중턱에는 안전망조차 없는 아슬아슬한 산길이 이어져 있다.

고전이 되어버린 책 '오래된 미래'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곳이다. 티베트인들이 티베트 고원과 인도 대륙 사이에 위치한 이곳에 건너와 천년의 왕국을 꾸려왔다. 그들의 소박하고 자연 순응적인 삶에 감흥을 받은 서구의 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는 그들만의 세상을 세세하게 기록해 책으로 낸다. 그리고 “Ancient futures"라는 역설적인 이름을 통해 자본주의 물질 문명에 물음을 던진다.

하지만 라다크는 1970년대 문물 개방으로 인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통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급증했다. 또한 중국과의 영토권 싸움으로 분쟁 지역이 되었다. 도심 주변의 많은 부분을 군부대의 철조망이 감싸고 있다. 총을 든 군인과 대포 등의 무기를 실은 군용트럭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라다크는 더 이상 우리가 기대하던 미래가 아니었다.

 

라다크의 전경과 도로에서 만난 총을 든 군인.

스리나가르로 향하는 동안 긴장감은 더해갔다. 파키스탄과의 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전쟁기념비들이 곳곳에 있었다. 최근 분쟁이 멈춰 관광객이 넘나들고 있지만, 언제 또 총성이 울릴지 모른다. 주변에서 하도 걱정을 했던 터라 잔뜩 긴장하고 시내에 도착했다. 하지만 도시의 첫 느낌은 의외로 평온했다.

 

천상의 낙원이 연상되는 스리나가르 호수의 아침.

도심을 가로지른 호수 달레이크에서는 보트를 개조해 숙소로 이용한다. 이중 한 곳에 짐을 풀었다. 그간 못했던 빨래를 해서 보트 옥상에 널어놓고, 호숫가에 발을 담가 앉아 일광욕을 즐겼다.

저녁이면 보트를 타고 나가 노을을 보고 호수에 비친 달빛을 보며 차를 마셨다. 이렇게 지내는 동안 황후장상이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또다시 분쟁 지역으로 변모하면 스리나가르는 여행 제한 구역으로 묶이고 천상의 낙원은 현실의 지옥이 되어버린다.

 

왼쪽부터 지붕 위의 빨래, 보트를 개조한숙소, 물장구 치는 아이들.

스리나가르의 고원지대에서 달리는 우리 차를 필사적으로 쫓아오던 어린이가 있었다. 여행객에게 사탕이나 얻으려던 것이 아니었다. 배가 고픈 그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생존을 위한 달리기를 해왔다.

내가 갖고 있던 빵과 비스켓 등을 모두 꺼내 쥐어주었다. 그 아이의 눈망울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 어린 소년의 눈에 절망을 떠올리게 한 것은 전쟁이 빚은 가난도 한 몫 했으리라. 전운이 감도는 척박한 땅에서 삶을 연명하는 그 소년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

 

스리나가르로 가는 동안 보게 되는 전쟁기념비. 이곳에서는 절망적인 표정의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람살라로 가기 위해 도시를 빠져나오며 군부대들을 보았다. 그런데 무기가 잘 갖추어진 방비 태세에서 평화보다는 전쟁이 연상되었다.

문득 강정마을이 떠올랐다. 전쟁을 막기 위해 군부대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 싸움을 막기 위해 싸울 태세를 갖추는 것은 총을 총으로 막아야 한다는 논리와 같아 보인다. 더구나 제주는 관광지이다.

올레 7코스의 중심을 뚝 잘라 해군기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군부대의 철조망을 보며 평화를 연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라다크와 스리나가르의 과거와 현재가 제주도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프로필>
전 과천마당극제 기획·홍보
전 한미합동공연 ‘바리공주와 생명수’ 협력 연출
전 마을 만들기 전문위원
현 제주특별자치도승마협회 이사
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프리랜서 문화기획 및 여행 작가
저서 <인도차이나-낯선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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