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니다. 앵커호텔은 레고레타의 의도와 달리 엉뚱하게 지어지고 있다. 아니, 시공사인 부영측이 이상한 호텔로 둔갑을 시켜버렸다.
앞서 3차례에 걸쳐 앵커호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단부 석재와 호텔 입구, 또한 레고레타가 추구한 창(窓)의 왜곡 등 숱한 문제점이 발견됐다. 파면 팔수록 원작과는 다른 모습이 나온다. 디테일한 점까지 짚는다면 이루 말 할 수 없다.
원작자의 의도와 달리 지어졌다면 그건 누구의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레고레타? 부영? 만일 레고레타가 살아 있다면 그는 “앵커호텔은 나의 작품이 아니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지어진 앵커호텔은 레고레타의 작품이 아닌, 부영의 작품이라고 말을 하는 게 옳을 테다.
빛, 색, 물 등 3요소가 조화될 때야 레고레타의 작품은 빛이 난다. 사각형으로 이어지는 창의 파괴, 엉뚱한 석재를 이어붙임으로써 앵커호텔의 색감은 파괴됐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보존해야 된다는 목소리를 높일 때 ‘철거’를 주장한 이들의 논리는 이랬다. 그건 바로 “더 갤러리가 아니어도 레고레타의 작품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논리를 펴는 행정이 레고레타의 작품으로 지목한 건 ‘앵커호텔’이었다. 하지만 앵커호텔은 앞서 지적했듯이 레고레타의 작품이 아닌지 오래 됐다.
더 이상 앵커호텔을 레고레타의 작품으로 우길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한다. 앵커호텔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비웃고, 한숨만 푹푹 쉰다. 이유는 “어떻게 저런 건물이 자연경관이 뛰어난 제주도에 들어설 수 있는가”라는 아쉬움들이다. 혹자는 앵커호텔을 향해 ‘흉물’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때문에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해도 된다는 논리는 가당치 않다. 앵커호텔은 가짜이며, 레고레타의 작품이 더 이상 아니기에 ‘카사 델 아구아’는 어쩔 수 없이 보존을 해야 한다. 앵커호텔 때문에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 설득력을 얻게 됐다. 레고레타의 유작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단 한 개만 있기에 그렇다.
아니, 이럴 수도 있겠다. 앵커호텔이 있기에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파괴해도 된다는 논리에 맞추려면 앵커호텔을 다시 뜯어서 지으면 된다. 그런데 수백억원을 들여가며 그렇게 할 멍청한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건축물은 땅 위에 그냥 세워진 게 아니다. 주위의 자연과 주위의 또다른 건축물의 모습들을 보며 세워진다. 건축물은 혼자만 잘난 척, 혼자만 멋을 내어서도 안된다. 그건 건축에서 말하는 ‘풍경’에 대한 배반이기 때문이다. 지금 앵커호텔은 아쉽게도 풍경을 배반하고 있다. 주위의 자연과도 얘기를 하지 못할 정도이며, 이웃한 건축물과 얘기엔 너무 어색하다.
건축가 김중업은 “집은 그 사람의 자화상을 그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집을 보면 주인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앵커호텔의 건축주는 이 점을 잘 새기길 바란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