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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심의를 하는 이유는 아무렇게나 짓지 말라는 경고다”
“건축 심의를 하는 이유는 아무렇게나 짓지 말라는 경고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2.09.19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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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호텔은 가짜다] <3> 건축은 사유 개념이 아닌 공공성의 가치가 우선

앞서 2차례 앵커호텔의 문제를 지적했다. 앵커호텔은 누구나 알다시피 건축계 거장인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을 해보라. 과연 이게 작품인가?”라는 의문을 들게 만든다.

이게 작품인가?”라는 의문은 기자 개인의 생각만은 아니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와 마주하고 있는 앵커호텔 앞에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물어보라. “저 건물 어때요?”라고. 단박에 이상해라는 답이 되돌아올게다.

레고레타의 작품은 색감에다 볼륨이 있다. 볼륨은 빛을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빛을 받아들이는 방법의 하나로 네모와 직선을 사용한다. 일종의 편애라고 부를 정도로 레고레타의 작품엔 네모와 직선이 주를 이룬다.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건축 비평가 폴 골드버거는 레고레타의 작품을 향해 이같이 말했다.

레고레타의 작품은 평면과 투명도의 건축이 아니라 입체감과 볼륨의 건축입니다. 색이 감성으로 끓고 있을 때 평면과 직선, 그리고 직각형체의 존재가 이성적인 호흡을 통해 색을 절제시키죠.”

레고레타의 작품집 표지. 이 표지에서 보듯 레고레타는 사각형의 패턴을 중시한다.
폴 골드버거는 레고레타만이 사용하는 멕시코 특유의 강렬한 색감. 그 색감을 튀지 않게 받혀주는 요소가 바로 직각임을 강조한다.

레고레타의 작품은 이같은 직각의 패턴이다. 직선과 사각형이 반복을 이루면서 사각형의 행렬이 모여 더 큰 사각형의 패턴을 이룬다. 이는 레고레타의 어느 작품에서나 볼 수 있다.

2010년까지 레고레타의 작품을 모아 펴낸 레고레타라는 작품집에서도 이런 패턴이 읽힌다. 표지에서부터 사각형이 만든 직각의 패턴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사각형의 패턴은 멈추지 않는다. 앵커호텔과 많이 닮은 스페인 빌바오의 쉐라톤호텔에서 그의 사각형 패턴은 극치를 이룬다. 호텔 자체가 커다란 사각형이다. 그러다 가장 작은 사각형은 9개의 창문에서 머문다. 폴 골드버거는 집의 정면에 질감을 주기 위해 직교체계 위에 9개의 창문들이 각 방에 위치한다. 기념비적인 직교의 패턴이다고 설명했다.

앵커호텔도 선과 선이 마주하고, 사각형의 패턴이 9개의 창에서 귀결된다. 일종의 펀칭 창인 셈이다. 하지만 앵커호텔은 레고레타가 추구하려던 9개의 창이 아니다. 현재 시공이 마무리 된 앵커호텔의 9개 창은 펀칭 창이 아니라 1개의 창을 선만 그어 9개로 나눈 듯하다. 앵커호텔 허가도면에도 분명히 펀칭 창형태의 9개 창을 내도록 했으나 시공사인 부영은 이를 아예 무시했다.

앵커호텔 허가 도면. 왼쪽에 9개의 '펀칭 창'을 만들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시공사인 부영은 이를 무시하고 건물을 짓고 있다.
한창 건축중인 앵커호텔(왼쪽)과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인 스페인 빌바오의 쉐라톤호텔. 레고레타는 9개의 사각형이 만들어내는 창을 통해 빛을 담는다. 하지만 앵커호텔은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만들어졌다.
여기서 묻고 싶다. 건축물은 사유의 공간인가? 공공건물이 아닌 건물이면 모두 사유인 것은 맞다. 그 말이 맞다면 건축물은 아무렇게나 지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사유 건물이라도 심의를 받게 돼 있다. 건축심의는 아무렇게나 짓지 말도록 제어하기 위해 존재한다.

앵커호텔은 어떤가. 분명 부영이라는 민간기업의 소유다. ‘그렇다면 아무렇게나 지어도 되는가라고 다시 질문을 해본다. ‘그렇다고 답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앞서 건축심의를 꺼냈듯이 건축심의를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건물을 올리는 건 용납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더욱이 앵커호텔은 공공성이 강한 건물이다. 왜냐하면 개인이 이용하는 개인주택이 아니라 다중이 오가며 대화를 나누고 잠을 자고 하는 호텔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업이 소유한 호텔이라고 하더라도 멋대로 짓는 게 세상에 어디에 있나.

앵커호텔은 애초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 자리를 틀게 됐다. 이를 두고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많았다. 자연경관을 훼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앵커호텔이 그런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이 자리에 앉게 된 건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바로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이어서다. 그렇다면 앵커호텔은 레고레타의 의도대로 지어져야 한다. 그냥 이대로 둔다면 앵커호텔은 레고레타의 작품이다는 말을 쓸 수 없다. 아니 써서도 안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유의 건축이라도 공공의 가치가 우선이다. 지금 지어지는 앵커호텔은 유네스코 3관왕과 세계 7대 자연유산에 선정된 제주의 아름다운 환경에 먹칠하는 일이며, 제주 자연환경을 거스르는 불손하면서도 거만한 건물이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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