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시작된 강정평화대행진이 지난 4일 제주시 탑동광장에서의 평화 콘서트로 대미를 장식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기자는 5박6일의 전체 일정 가운데 고작 1박2일을 함께 걸었을 뿐이다. 모처럼의 휴가 기간이었지만, 아내와 아이들과 가족회의를 한 끝에 강정평화대행진에 함께 하기로 한 것이었다. 서진 일행과 함께 한 1박2일 동안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그를 만난 것은 강정평화대행진 마지막날인 4일 이른 아침이었다.
목발을 들고 여행가방을 끌면서 서진팀의 마지막 숙소인 외도초등학교로 들어서고 있는 그에게 대뜸 “언제부터 함께 걸으셨어요?”라고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말았다.
동그란 검정 테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선한 눈매가 인상적인 김동구씨(59, 춘천)였다.
지체장애 3급인 그는 지난달 29일 강정포구에서 열린 강정평화대행진 전야제부터 일정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었다.
“의외로 제주도민들이 강정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의아했다”는 그는 평화대행진이 시작되고 며칠만에 그 이유를 알 것 같더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역 언론들이 지역의 문제에 철저히 무관심한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기자로서 정말 부끄러운 지적이었다. 그제서야 <미디어제주> 기자임을 밝히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평화대행진 마지막날 아침 식사는 콩나물국밥. 운동장 바닥에 앉아 깍두기와 감자조림이 곁들여진 국밥을 떠먹으면서 진행된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그는 이미 도보 순례로 많이 알려져 있는 유명인사였다.
지난 2010년 5월에는 광주항쟁 30주년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1주기를 기억하기 위해 광주에서 김해 봉하마을까지 300㎞가 넘는 길을 걷기도 했다. 당시 ‘2009년 5월, 노무현을 잊지 맙시다’라고 적힌 노란색 조끼를 입고 걸었던 그가 ‘강정평화대행진’ 티셔츠를 입고 행진에 나선 것이었다.
언론소비자주권연대캠페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그가 도보 순례를 시작하게 된 것도 언론개혁에 힘썼던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되새기기 위한 선택이었다.
조선·중앙·동아일보로 대표되는 유력 일간지들의 왜곡, 조작보도 행태와 이명박 정부의 각종 언론장악 정책 때문에 민주주의 질서가 파괴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12박13일의 순례 일정 마지막날 만난 인연이 계기가 돼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의 진상을 널리 알리고 국가가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배상과 보상을 하도록 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순례에 나서기도 했다.
봉하마을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전쟁유족회 회원들의 얘기를 듣고 부산에서 광주까지 18박19일 동안 320㎞를 걷게 된 것이었다.
“국가 권력에 의한 희생은 당연히 국가가 보상을 해야지요. 4.3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도 제주도민들과 지역 언론이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버티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정부와 해군이) 지금까지 그 난리를 치면서 공사를 강행하고 있지만 공정률은 고작 12%에 불과하잖아요. 반드시 지켜내야죠”
어렸을 때 고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절단한 그는 아침마다 다리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는 등 두 시간 넘게 치료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평화대행진 마지막날에도 아침부터 줄곧 서진 행렬의 선두에서 목발을 짚고 전체 일정을 완주해냈다.
강정평화대행진이 한여름 무더위와 태풍을 뚫고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많은 이들의 마음들이 모아진 것이 큰 힘이 됐기 때문이었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