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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미소의 전설 ‥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천년 미소의 전설 ‥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 진기철 기자
  • 승인 2006.06.22 14: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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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간에 걸쳐 완성된 '세계7대 불가사의'...'킬링필드'라는 아픈 역사

오랜 전쟁과 '킬링필드'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1975년 4월 크메르 루즈(친중국계)에 의해 수도 프놈펜이 함락된 후 1979년까지 폴 포트의 집권기간 중 대학살이 자행됐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25%가량되는 200만명이 학살당한 것을 떠올려 본다면 이 상처가 얼마나 깊이 팬 곳인지 짐작 하기조차 힘들다.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캄보디아는 숱한 내전과 테러, 쿠데타, 전쟁 등으로 국정이 불안하고 경제파탄에 시달리면서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캄보디아의 희망으로 떠오른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는 이제 저주의 사원이 아니라 축복의 사원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석조 건축 물’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앙코르 와트'는 캄보디아의 희망이자 부의 원천이다.

앙코르 유적은 연간 200만명의 외국 관광객이 찾는 캄보디아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1991년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호소에 점차 국제 사회는 앙코르 보호 필요성에 눈뜨기 시작, 이듬해 유네스코는 캄보디아 정부가 복원사업에 매진한다는 조건으로 앙코르와트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사원 주변에는 기중기와 비계(飛階)가 설치되어 있고 곳곳에서는 국가별 담당 구역에 따라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현재 참여 중인 나라만 일본·중국·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독일 등 1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시엠립 시내 북쪽에 위치한 앙코르유적을 찾아가는 길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 흥미롭다.

수르야바르만 2세가 1113년 무렵부터 30여년에 걸쳐 완성한 사원, 앙코르와트가 그 중심이다.

수백년간 정글 속에 묻혀 있다가 1860년 프랑스의 동식물학자 앙리무어에 의해 발견된 뒤에야 세상에 비로소 알려지면서 빛을 보게 된 역사는 캄보디아를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곳으로 만들어준다.

개별 사원으로 치면 전체 앙코르 유적 중 제일 크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도 손꼽힌다.

'우주의 바다'를 상징하는 폭 200m의 해자와 '우주의 산맥'을 나타내는 5.5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터 정중앙에 '우주의 중심'격인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열대 우림 속의 작은 우주. 찬란한 역사를 가진 신들의 정원. 그 어떤 표현으로도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을 설명하기 어렵다.

현대기술로도 풀기 힘든 건축 양식과 수백년간 잊혀졌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고대 도시. 또 영화 툼레이더와 인디아나 존슨의 배경이기도 했다.

앙코르 와트의 여행은 앙코르 톰에서 시작한다. 7세기에 건립한 앙코르 톰은 거대한 성곽도시지만 많은 약탈로 폐허에 가깝다.

앙코르 톰 내부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 5개로 관광객들은 일반적으로 앙코르와트 쪽의 길과 연결되는 남문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다리 양 옆에 있는 54개의 선상과 악상들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성벽 한가운데에 치솟은 화려한 문루가 눈길을 끈다.

남문을 지나면 앙코르톰의 백미로 꼽히는 바이욘사원이 나온다. 이 사원에서는 미소 짓는 사면상과 내외부 회랑에 나타난 부조들이 볼 만하다.

사면상은 불교사원과 연계해 관세음보살의 얼굴이자 그의 화신인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도 하는데 흔히 '앙코르 미소'로 불리는 넓은 이마, 내려감은 눈, 넓은 콧등, 두꺼운 입술이 바로 그 모습이다.

안쪽 본체의 벽에는 주로 신화적 장면들이 부조돼 있고 외부 벽에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재미있게 양각해 놓아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바이욘사원 뒤쪽으로는 앙코르톰의 왕궁 터였던 코끼리 테라스가 있다. 이곳은 왕의 사열대로 맞은편에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의 벽면에는 주로 코끼리를 주제로 한 부조가 조각돼 있다.

앙코르톰을 지은 자야바르만 7세가 살았던 이곳은 당시 목조 건물이었기 때문에 왕궁은 사라지고 터와 주변의 담벽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이 가운데서도 앙코르 유적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크메르 예술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앙코르 와트다.

수르야바르만 2세가 자신의 묘로 사용하기 위해 거대한 사원을 건립했다.  이곳의 입구는 다른 사원과 달리 죽음을 상징하는 서쪽으로 나 있다.

왕의 생전에는 신을 섬기는 역할을 하다 사후에는 무덤으로 사용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사원은 피라미드형 3층 건물로 이뤄져 있다.

앙코르와트는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을 건축물로 표현한 것으로 한마디로 '우주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의 높은 탑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불교의 수미산)을 상징하며 주위의 5개 탑은 주변의 봉우리를 나타낸다.

중앙탑이 놓인 3층은 천상계, 2층은 인간계, 1층은 미물계를 나타 낸다는 것이 학자들의 풀이다.

장엄한 규모에 감탄하면서 내부로 들어가면 정교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복도 벽면에는 환상적인 부조물이 펼쳐진다.

자신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새기게 한 부조물에는 왕과 귀족,백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층 외벽에 새겨진 '신의 무희'라고 일컬어지는 압살라 무희들의 고혹적인 자태가 인상적이다.

압살라 조각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관찰하면 얼굴 모양을 포함해 모두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신상들이 새겨져 있는 제2회랑을 지나면 3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다다른다. 신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선 고개를 숙이고 전심을 다해야 한다는 뜻일까. 계단은 기어올라가야할 만큼 급경사다.

3층은 가운데 석탑을 중심으로 밭전(田)자 형태로 되어있는데 4개로 나누어진 각 구역은 신께 기도하기전 몸을 정화하던 목욕탕이었다고 한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좌우대칭의 아름다움, 질서정연한 기하학적 평면과 탑당이 조화를 이룬다. 3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앙코르 와트 입구와 그 앞에 펼쳐진 시엠립 평원의 모습은 장관이다.

주변에 자리한 프놈바켕은 앙코르 유적 가운데 최초로 층으로 쌓은 사원이다.  꼭대기에 서면 앙코르 주변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아름다운 일몰도 감상할 수 있어 저녁나절에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라는 따 프롬.

폐허가 된 채 방치된 곳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이 어떻게 사원을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조각 건축물을 휘감은 뒤 다시 돌벽을 뚫고 나온 나무뿌리의 모습은 인간의 몸부림을 비웃는 자연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그 폐허 자체가 가지는 아름다움은 앙코르에서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

30m가 족히 넘는 무화과,보리수 등의 거대한 나무들이 벽과 지붕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엄청난 자연이나 인간이 빚어낸 예술의 극치와 같이 느껴진다.

이어 유적지에서 북동쪽으로 30㎞가량 떨어진 반티아이 스레이('여인들의 성채'라는 뜻의 사원)는 라젠드라바르만 2세(재위 944~968년)가 다스리던 시기에 귀족이 세운 힌두 사원. 지붕과 회랑마다 새겨진 부조는 앙코르의 수 많은 유적 중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는다.

특히 중앙사당에 조각된 풍만한 가슴의 테바다 여신상이 관심을 끈다.

'동양의 모나리자'로 극찬을 받았는데 프랑스 문화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1923년 앙코르 유적을 방문했을 때 이 여신상을 몰래 본국으로 반출하려다 붙잡혀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다른 사원에 비하면 규모는 매우 작지만 건축물과 치장 수준은 이러한 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붉은색의 단단한 사암을 이용해 나무에 조각하듯 정교하게 새겨놓은 기술이 돋보이는데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시엠립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은 원시의 삶이 숨쉬는 톤레삽 호수. 이곳은 캄보디아의 심장으로 젖줄 역할을 하는데 가도 가도 끝이 나올 것 같지 않는 느낌이 든다.

건기(11∼4월)는 서울의 5배 정도 크기이고, 우기(5∼10월)은 이보다 3배는 더 늘어난다고 한다. 호수라기보다는 거대한 바다와 같다. 캄보디아인들은 이 호수를 '캄보디아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수상에 2m 이상 기둥을 박고 서 있는 수상가옥들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는 건기와 우기에 따라 강으로 호수로 옮겨다니는 선상민들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커다란 대야를 타고 다니며 달러를 구걸하는 소년.소녀들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망울은 천진하기 그지없다.

이렇듯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은 많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지만 캄보디아 인들의 삶은 보는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특히 캄보디아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관광지 곳곳을 가면  엄마 품에 있어야 할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호객행위에 나선다. 유적지 어디를 가도 기념품이나 엽서를 파는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을 맞닥뜨릴 수 있다.

지금 시엠립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해가 지면 시내는 어느새 암흑천지가 된다.  시내 곳곳에 군인들이 지켜 서 있고 조금만 외곽지로 벗어나면 온통 나무와 평야만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 붐이 일면서 관광객들로 넘치고 호텔, 휴양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의 희망이자 부의 원천이지만 캄보디아의 개발 붐이 이곳 현지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 설지는 모르는 일이다.

내전이 끝났어도 밀림 곳곳에 제거되지 않은 지뢰에 두 다리를 빼앗기고 의족을 하고서도 아이들은 웃는다.

캄보디아는 이렇듯 가난하면서도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명랑한 미소를 잃지 않는 주민들과의 만남은 이곳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잊지 못할 추억거리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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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2006-06-22 18:53:17
세계사 시간처럼 좋은 사진, 기사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