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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와 동떨어진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왜 해야 하나
주위와 동떨어진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왜 해야 하나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2.07.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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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도심 풍경 배반하는 시외버스터미널 ‘할머니상’에 대한 단상

어디론가 떠나볼까? 아니면 등산화를 부여매거나 하지 않는 이상 요즘은 걸을 일이 없어졌다. 그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현대인들에게 좇아다니는 게으름이라는 병 때문일테다. 더욱이 11자가용 시대이니 걷는 일이란 아주 힘든 일이 돼 버렸다.

그러나 한 번쯤 도심을 거닐면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된다. 눅눅하고 칙칙한 도심에 색이 입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덕분에 달라진 거리를 보는 느낌이 새롭다.

하지만 매번 그런 건 아니다. 한 번은 자가용을 버리고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을 걸을 일이 생겼다. 어스름이 도심에 내려앉은 때다. 뚜벅뚜벅 걷다가 어느새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멈춰 섰다. 눈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세워진 '할머니와 손자상'
조각상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그렇다고 도시 조형물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그렇다. ‘뻐스라는 팻말이 있고, 그 아래 할머니와 손자가 버티고 있다. 군데군데 보자기도 널려 있고.

갑자기 기자의 머리를 때리는 건 왜 여기 이런 게 있지?’라는 의문이었다. ‘, 그렇지!’라거나 예전이 정말 그리웠어!’라는 감탄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시외버스터미널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능력의 가치를 떠나, 세월의 흐름을 떠나, 피부색의 차이를 떠나 누구나가 거쳐 가는 곳이다. 서귀포를 가려는 사람,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오는 이들. 그들이 거치는 곳이 시외버스터미널이다.

할머니와 손자로 대변되는 시외버스터미널 앞의 조형물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완성된 작품이다. 공공미술추진위원회에서 터미널이라는 특징을 살려 옛 모습을 상상하도록 하자며 만들어낸 작품이 시외버스터미널 앞을 차지한 셈이다.

시외버스터미널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지난 2010년 완성됐다. 그러고 보니 기자는 왜 이 곳을 걸어보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마저 든다. 좀 더 빨리 할머니와 손자를 만나봤어야 했다. 그들을 다소 늦게 만나서일까. 그들은 무척이나 힘들어 보인다. 할머니는 주름이 가득하고, 힘든 그들의 주위엔 이것저것을 주섬주섬 채워 넣은 보자기가 뒹굴고 있다. ‘뻐스라는 표현이나 그들이 입고 있는 몸뻬닮은 바지를 보고 있자니 측은함만 느껴진다. ‘뻐스라는 표현을 쓸 때, ‘몸뻬를 입고 활개칠 당시의 우리 삶은 아픔이 많을 때다. 1960~70년대였으니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도심은 풍경을 먹고 산다. 그 말은 개개의 풍경 자체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주위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건 흔히 말하는 관계맺음을 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땅에 세워지는 건축이 그렇듯, 땅에 세워지는 도시 디자인도 이런 관계맺음을 중요시해야 한다.

'뻐스'라는 정류장 표시는 옛 분위기를 자아내려 애쓰고 있지만 '7대경관 제주'라는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1960~70년대와 2010년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태어난 시외버스터미널 앞의 할머니와 손자상도 생명을 지닌 유기체라면 마땅히 그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줬어야 했다. 오가는 사람의 놀림감이 되거나 왜 만들었어라는 비아냥을 받아서는 안 될 일이다. 박물관에서는 할머니와 손자상이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회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지만, 도심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가는 사람들이 다들 한소리를 한다. “왜 이걸 세웠어?”

할머니와 손자상뒤로는 ‘70억 세계인이 인정한 보물섬 제주, 그 속에 7대 자연경관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풍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공무원과 대화를 나눴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예전 터미널의 향수를 담아내려고 했다. 색상에 대해서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처음의 색이 바래서 다시 칠하다보니 그랬다고 한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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