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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주민들 납득시키지 못하고 어떻게 환영받을 수 있겠나?”
“강정 주민들 납득시키지 못하고 어떻게 환영받을 수 있겠나?”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2.07.05 20: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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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제주해군기지 대법원 판결 관련 인터뷰하면서 ‘답답한 가슴’ 치료받은(?) 사연

5년을 넘게 힘겹게 싸워 온 강정마을 주민들이 5일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전화 수화기를 잡고 한참을 망설였다.

대법원은 5일 제주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취소해달라며 강정마을 주민 438명이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낸 ‘국방·군사시설 사업실시계획 승인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당초 2심에서 국방부가 패소했던 부분까지 파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었다. 1·2심에서 강정 주민들이 패소한 부분에 대한 상고를 기각한 것은 물론, 국방부가 패소했던 부분에 대해서까지 원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고법으로 환송한 것이었다.

같은 날 대법원 3부는 강정마을 주민 26명이 제주도를 상대로 낸 ‘절대보전지역 변경처분 무효확인’ 소송에 대해서도 상고를 기각, 주민들에게 원고 적격이 없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오후 내내 제주도의회 정례회 본회의 취재에 매달리느라 대법원 판결문을 곧바로 확인하지 못한 것 때문에 무언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속이 답답하던 터였다.

판결 관련 기사들을 모니터링한 후 한참을 망설이다가 저녁 7시를 넘긴 후에야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대책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성명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면서도 흔쾌히 전화 인터뷰에 응해준 고권일 위원장의 목소리가 고맙게 느껴졌다.

'생명평화 바람개비' 자전거 순례 중인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대책위 위원장. / 사진=강정마을 카페

“한 마디로 어이가 없습니다”

고 위원장이 이날 2건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 꺼낸 첫 마디였다.

먼저 절대보전지역 해제 처분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이 기각된 데 대해서는 “판결문대로라면 개발권자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의 환경적 권리를 무시하겠다는 얘기”라며 “그런 취지라면 과연 절대보전지역을 지정하는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이번 판결이 한 마디로 개발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판결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국방·군사시설 실시계획 승인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말장난을 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판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분명히 소송 제목이 ‘실시계획’ 승인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인데 재판부는 사실상 사업계획 승인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를 거칠 필요가 없다면서 국방부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특히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옛 국방사업법상 국방·군사시설 사업에 대해서는 ‘실시계획 승인 전’에는 옛 환경정책기본법에 따라 ‘사전환경성 검토’를, ‘기본설계 승인 전’에는 ‘환경영향평가’를 각각 거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판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사안을 두고 전수안·이상훈 대법관은 “시행령 규정의 ‘기본설계 승인 전’은 옛 국방사업법상 ‘실시계획 승인 전’을 의미한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시행령 규정은 무효”라며 “무효인 규정에 따라 행해진 승인 처분은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기 때문에 무효”라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고 위원장이 “우리는 ‘사업계획’ 승인에 대한 위법 여부를 가려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실시계획’ 승인의 무효를 주장한 것”이라면서 “과연 대한민국의 대법원이 맞느냐”고 울분을 토로한 것도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다.

지난 6월 13일 강정 앞바다의 훼손된 오탁방지막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고권일 반대대책위 위원장. / 사진=강정마을회

이어 그는 “우리는 지금까지 줄곧 강정마을의 (해군기지로서) 입지적 타당성과 민주적 절차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면서 “아무리 국가안보 사업이라고 해도 주변 정세 등을 분석하고 면밀하게 필요성을 검토한 뒤 주민들과 제대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자리를 정부가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나중에 이 사업이 완료된 후에는 많은 해군 병력이 와서 근무하게 될 텐데 주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시작한 사업이 어떻게 주민들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이 우려되는 데 대해 그는 “주민들 뿐만 아니라 해군으로서도 불행한 일”이라며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자초한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하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그는 5년이 넘도록 해군기지 반대 투쟁의 중심에 서온 이들 중 한 사람답게 단호하고도 명쾌하게 얘기를 풀어냈다.

어떻게 인터뷰를 시작해야 할지 걱정하면서 전화를 망설였던 시간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오히려 그와 전화 인터뷰를 한 후에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하게 트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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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마 2012-07-06 21:37:09
해군기지를 강정으로 끌어들인 김태환전도지사의 대법판결이 확~ 떠오르는군요.
그때도 1.2심에선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판결이 났지만,
대법판결에서 결과가 뒤집혔죠.
죄는 인정되나,접법한 절차로 압수한 증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곤, 일사천리로 강정이 짓밟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