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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필리핀에선 대학 나온 여자 … 공부 더 하고 싶어요”
“나도 필리핀에선 대학 나온 여자 … 공부 더 하고 싶어요”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2.01.2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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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2년차 억척 주부 필리핀 며느리 조이스씨의 특별한 설날 이야기

필리핀에서 제주로 시집온지 12년째인 억척 주부 조이스씨.
“2000년 2월에 처음 제주에 왔을 때는 너무 추웠어요. 소개해준 분에게서 옷 준비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전혀 못 듣고 왔는데 이렇게 추운 곳에서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벌써 제주에 온 지 12년째인 필리핀 출신 조이스씨(42)가 처음 마주한 제주의 바닷바람은 너무 추웠다.

게다가 이국 생활이 낯설기만 했던 조이스에게는 자신을 대하는 제주 사람들의 시선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훑어보는 느낌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고 한다.

# “필리핀은 성탄절부터 새해 첫날까지 시끌벅적한 축제”

설을 며칠 앞두고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후원회 소개를 받고 직접 집으로 찾아가 만난 조이스에게 제주의 설은 어떤 느낌인지 물었다.

“설에 한국에서는 대부분 집에서 지내잖아요. 필리핀에서는 음력 설을 따로 쇠지는 않아요. 대신 크리스마스 때부터 새해 첫날까지 매일 시끌벅적한 축제가 이어지죠. 그런 축제 분위기보다 한국의 설은 훨씬 차분한 것 같아요”

설 차례는 부산에 있는 남편의 형님 댁에서 지내기 때문에 따로 차례상을 차리지는 않는단다. 대신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세배를 드리러 간다. “조이스는 왜 안 가요?” 하고 묻자 머뭇거리다가 “항공료가 비싸기 때문에…”라며 말 끝을 흐린다.

대신 추석 차례 상은 시어머니를 도와 직접 제주에서 차린다. “차례 상에 올리는 음식이 왜 이렇게 많은 거에요?” 차례 상 음식을 처음 준비할 때는 많은 음식 가짓수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벌써 10년 넘게 차례 음식을 준비해온 터라 이제는 상당한 수준이 됐다.

# “자라는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문제 가장 큰 고민”

비좁은 안방 구석에 직접 손뜨개질로 만든 친환경 수세미가 눈에 띄었다. 종이가방 안이 수세미로 가득 차 있다. 한 땀 한 땀 코바늘로 만들어서 가지고 가면 수세미 한 개당 수공비 1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후원회 부설 제주외국인쉼터에서 만난 정수경씨와 직접 만든 친환경수세미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경제적으로 힘든 부분 외에도 요즘 조이스는 아이들 공부를 가르치는 문제 때문에 고민이다. 세 아이 중 맏아들인 5학년 태현이 공부를 도와주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을 보내고 싶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아이들을 우선 받기 때문에 차상위 계층에 속하는 조이스의 아이들은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조이스는 자라는 아이들에게서 늘 희망을 보면서 살아간다.

# 첫 아이 임신했을 때 금연 결심해준 남편, 든든한 버팀목

입시학원 차량 운전 일을 하느라 매일 자정이 돼서야 퇴근하는 10살 연상의 남편이지만, 그녀에게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담배를 끊어준 남편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때는 제가 사실 연기를 좀 했어요”라고 얘기하면서 활짝 웃는 모습이 밉지 않다.

게다가 막내를 가졌을 때 무척 힘들어하던 아내 때문에 매일 아침 상을 차려주다 보니 이제는 아이들이 휴일 아침 늦잠을 자고 있을 때면 “아빠! 배고파요” 하면서 남편을 먼저 찾는다고 한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대부분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너무 슬펐죠.” 그래도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해서 어려운 형편이지만 필리핀까지 가서 할머니 임종을 지켜드릴 수 있었던 게 또 조이스에게는 큰 위안이 됐다.

좁은 부엌에서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준비중인 조이스씨.

# “새해 소망요? 더 큰 집으로 이사갔으면…”

커피를 타주려고 일어선 조이스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새해 소망요? 음…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갔으면 좋겠어요. 아이들도 점점 커가고, 5명이 살기에는 너무 좁아서요.”

하지만 필리핀에서 대학교까지 다녔던 조이스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집안 형편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따갈로그어를 가르쳐주고 싶기도 하지만, 좀 더 자란 다음에 ‘어머니 나라’의 말을 가르쳐주겠다고 얘기하는 조이스. 새해에는 그녀의 소박한 소망이 이뤄질 수 있기를 함께 기대해본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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