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기능직 전직 시험을 바라보며
기능직 전직 시험을 바라보며
  • 미디어제주
  • 승인 2011.10.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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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서귀포시 동홍동주민센터 홍기확

나는 지구인이다. 그 중에서도 남자. 어찌보면 지구인은 참 단순한 체계인 것 같다.

남자 아니면 여자. 식물중에서는 자웅동체라고 해서 암컷, 수컷 이외에 암수를 동시에 지닌 개체도 있으니 조금 낫긴 하다.

그렇다면 공무원의 체계는? 이것 참 복잡하다. 일반직, 지방직은 물론이거니와 지방직에서도 수십개의 직렬이 존재하고, 임용 절차도 제각각 다르다.

많은 공무원들 중에서도 꼭 집어 기능직 공무원. 현재 기능직은 중앙부처에 4만3천여명, 지방자치단체에 4만5천여명 등 9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1981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30년 역사가 이제 바뀌려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시대의 흐름이 ‘기능’이라는 단어가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 이들을 여타 경력직 공무원의 각 직류로 흡수하려고 하고 있다. 각 지자체마다 상이하긴 하지만 임용시험은 제한경쟁을 통한 필기시험으로 치러지게 된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다. 이들 기능직 공무원은 최근 10년간 임용된 숫자가 적기 때문에 기능 6~8급사이 인원들 대부분이 보통 40대가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회, 행정학 등 시험을 준비하기에는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 과연 이들이 마지막으로 본 ‘시험’이 언제였을까.

얼마전 한 기능7급 직원분과 전직 시험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분은 이제 몇 년 안 남았는데 뭐하러 시험을 보는가, 월급도 똑같은데 라고 하며 시험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몇 년 안 남았기 때문에 도전하시라고 말했다. 군대를 간 아들에게,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50살이 넘은 아버지가 공부하는 모습을,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말이다.

아마도 두 아들은 아버지가 50살이 넘어 도서관에서 돋보기를 쓴 채 두꺼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할 것이다.

아들에게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 서로 공부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대화의 창도 새롭게 열릴 것이다. 또한 두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도전’과 ‘공부는 끝이 없음’을 자연스레 깨닫고 스스로 철이 들 것이다.

결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50대의 도전은 과정이 더 중요하다.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리는 전날에는 항상 은퇴한 40~60대 프로선수 아저씨들의 경기가 열린다. 이들은 비록 두 팀으로 나누어 시합을 하지만 결코 승패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상대팀이 안타를 쳐도 웃고, 자기팀이 실수로 공을 빠뜨려도 웃는다. 즉, 과정을, 오랜만에 시합을 하게 된 기회를 감사히 여기고 즐긴다.

내가 얘기를 나누었던 공무원 분을 포함해 모두가 지금까지 평생을 자식과 가족을 위해 살았던 것을 알고 있다. 가족들에게 남길 수 있는 유산은 돈 뿐만이 아니다. 가족들에게 멋진 아버지, 어머니라는 인상과 경험을 남겨주는 것은 돈보다 더 소중한 경험이다.

한때 엄마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아주 간단한 고스톱 게임을 하는 방법이었는데 상당히 가르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울 엄마는 훌륭히 해냈고, 지금의 취미는 ‘당연히’ 컴퓨터 고스톱이다.

나는 엄마가 밥을 차려주고, 치우고, 빨래를 널고, 개고, 씻고 나서야 비로소 시간이 나서 책상에 앉아 고스톱을 집중해서 할 때가 가장 예뻐 보인다. 왜냐하면 컴퓨터를 배우는 것은 엄마에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내가 첫 번째 컴퓨터를 만난 13살 때부터 20여년간 컴퓨터는 나와 누나의 전유물이었다. 엄마는 컴퓨터를 켤 줄도 몰랐는데 고스톱을 치다니! 엄마의 도전과 성공은 작지만 커다랬다.

한 소년이 그저 세월이 지나서 한 남자가, 한 아버지가 되는 경우는 결코 없다. 극적인 경험들과 함께 누적된 작은 경험들이 이루어져 성장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세월과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면 탄탄한 ‘녀석’이 되는데 이걸 ‘철이 든다.’라고 한다.

나는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나이뻘로 보면 지금 기능직 전직 시험을 치루는 여러분들의 아들 뻘이다. 내가 진정한 ‘아들’이 되고 ‘아버지’가 되었던 극적인 순간을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작년 12월에 썼던 ‘자서전(子徐傳-아들에게 천천히 풀어써 전하는 글)’의 맨 마지막 장이다.

여러분의 자식들에게 극적인 감동을 선물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진부하지만 멋진 말이 있지 않은가?

도전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멋진 것이라고.

­………………………………………………

“다만 이훤이도 언젠가는 아빠가 될 테니(사실은 아빠가 안 되도 상관은 안하마. 너의 선택이니까.) 아빠가 진짜 ‘아빠’가 된 장면을 말해주면서 내 자서전을 마칠게.

아마 네가 두 돌 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아. 아주 더운 여름이었지. 장소는 경기도 안산의 호수공원.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은 쨍쨍 내리쬐고 있었고 너는 신나게 놀이터 모래밭에 앉아 놀고 있었다. 그늘도 없는 곳에서 노는 게 안타까워 나는 쭈그려 놀고 있는 네 뒤로 가서 햇볕을 가렸다. 너는 당연히 내 그늘 안에서 놀 수 있었지. 네가 움직이더라. 그래서 나도 너를 따라 움직이며 햇볕을 가려주었다.

그 순간. 나는 진짜 ‘아빠’가 되었단다. 아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아빠. 자기가 더운 것에 개의치 않고 아들이 더운 것을 걱정하는 아빠. 이런 아빠의 희생이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아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조용히 지켜주는. 진짜 ‘아빠’가 된 거야. 아빠는 이때까지만 해도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고 내가 아빠라는 것은 더더욱 실감이 나지 않았거든.

게다가 사실 아빠는 이때 진짜 ‘아들’이 되었다. 네 할아버지의 진짜 ‘아들’ 말이야.

왠지 아니? 할아버지도 나를 이렇게 지켜주고 키워줬을 거거든. 이전까지 아빠는 당연히 나 혼자 크고, 내가 잘나서 지금의 내가 있으리라 생각했었지. 할아버지는 술만 먹고 나한테 오히려 피해만 줬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내가 모르게 만들어준 ‘그늘’을 햇볕 아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너무나 많은 그늘들이 있었던 거야! 어떻게 당사자인 나만 몰랐을 수가 있을까?

너도 언젠가는 아빠처럼 진짜 ‘아빠’, ‘아들’이 될 거다. 언젠지는? 그건 아빠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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