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들이 너무 많아요. 저는 음지에 나무를 심을래요”
“어려운 이들이 너무 많아요. 저는 음지에 나무를 심을래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1.10.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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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열전] (20) ‘물리치료의 달인’ 서귀포시 동부보건소 의료기술주사보 문생환

물리치료실을 홀로 지키는 문생환씨는 농촌지역에 돌볼 이들이 너무 많다며 이들에게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집무실은 매우 넓다. 공간은 매우 넓지만 그는 혼자서 그 큰방을 관리한다. 올해로 공무원 길에 들어선지 19년째인 문생환 의료기술주사보(45).

그를 만나기 위해 서귀포시 동부보건소로 향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물리치료사다. 다른 점이라면 일반 병원이 아닌 공공의료기관인 보건소에서 일하는 공무원 신분이라는 점이다.

그가 일하는 공간은 물리치료 기기 등이 차지하고 있다. 물리치료실을 찾아오는 이들 때문에 그는 자리를 뜰 수 없다. 때문에 그와의 긴 이야기는 그가 업무를 보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이뤄졌다. 공무원이면서 글을 쓰는 수필가이어서인지 그의 책상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 놓여 있다.

“1993년이었죠. 서귀포 지역에 물리치료사가 단 4명인 시절이죠. 보건소엔 물리치료사가 당연이 없었죠. 병원에 잘 다니고 있는데 고인이 된 허권 서귀포시보건소장이 저를 찾아왔어요. 보건소에서 일하자는 거예요. 그런데 갈 수가 없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병원에서 근무하는 물리치료사의 연봉 수준은 매우 높았다. 보건소에 일하는 이들에 비해 3배 이상의 임금을 받던 때였다. 그러나 허권 소장의 한마디가 그를 공무원으로 이끌게 만들었다.

“1주일 후에 다시 찾아오더군요. 서귀포 지역에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소외계층과 장애인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보고 누군가가 해야 하는데 지역사람이 해야 하지 않느냐며 그랬어요. 같은 의료인으로서 마음이 움직였어요.”

보건소로 발길을 옮겼으나 외래환자는 찾을 수 없었다. 연간 보건소를 찾는 이들은 1000명에 불과했다. 하루에 3명꼴이었다. 그 때는 보건소의 개념이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강했다. 그러나 그가 서귀포시보건소에 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물리치료사의 등장으로 보건소를 찾는 이들은 1만명을 훌쩍 넘었다. 대부분은 그를 찾는 이들이었다. 제주에서는 보건소 최초 물리치료사라는 수식어도 그에겐 힘이 됐다.

환자를 돌보고 있는 문생환씨.

그런 그에게 방치된 상태의 가엾은 이들이 수없이 보였다.

병원에 있을 땐 몰랐는데 보건소에 오니 너무 놀랐어요. 농촌지역에서 방치되고 있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더군요. 가족이 있으면서도 방치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 이들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그 역시 의료인이었기 때문이다. 보건소 업무를 하지 않을 때는 어려운 이들을 직접 돌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으로 서귀포 지역 물리치료사들이 모여 봉사활동을 갖는 동력을 만들었다. 1995년 서귀포 지역 4명의 물리치료사들이 하던 일을 이젠 물리치료사 30명의 재능기부로 커졌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다.

“2년전이군요. 교통사고로 척추가 마비된 남성을 만나게 됐어요. 그 남성의 부인이 찾아와서 제발 와달라는 거예요. 그를 만나보니 침대에 누워있는 상대로 다리를 펴지도 못했어요. 2개월간 돌봐주다가 제 체력이 떨어지면서 (제가) 쓰러지기도 했어요. 서귀포보건소에서 동부보건소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사람을 돌봐주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요.”

아쉬움도 있지만 아직도 그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가 있다. 걷지 못하던 이에게 걸을 수 있다는 선물을 안겨준 이가 있기 때문이다. 간호사가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말에 이끌려 갔다.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남성이었고 몸무게는 무려 120이나 됐다.“94년인가, 95년이예요. 3개월만에 걷게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거구의 몸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수치를 당한 그 사람은 제게 침을 뱉기도 했어요. 누워만 있던 그는 1개월만에 앉고, 2개월째는 서는 거예요. 그러면서 창문으로 차량이 지나가는 걸 5년만에 봤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 사람이 너무 고마워요. 내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거든요.”

의료기술주사보인 문생환씨는 도내에서 처음으로 보건소에 근무하는 물리치료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물리치료사의 영역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에게 보이는 세상은 어려운 이들이 가득하다. 그런 이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끼니를 우선으로 삼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란다. 특히 독거노인들이 그렇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선 이들을 돌봐주는 정부의 정책이 우선돼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기에 그가 바라보는 공무원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공무원은 음지에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음지에 있는 이들을 다뤄야 하잖아요. 공무원이 이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수필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 언뜻 떠올라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사전은 무엇이냐.

글을 쓰는 사람만의 사전이 있어요. 제 사전엔 ‘200원짜리 사람이 되자입니다. 눈 내리는 어느날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자판기에 200원이 남겨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동전을 남겨 봤어요. 그랬더니 어떤 할머니가 재수좋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를 만나서 재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그가 내놓은 차엔 솔잎향이 퍼졌다. 물리치료를 받던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서 선물로 줬단다. 혼자서 지키는 방. 그에게 움직이지도 못하겠다고 했더니, 대뜸 일이 생기면 안된다고 한다. 자신이 없으면 물리치료를 해 줄 인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게 그의 일상이다.

문생환, 그의 손을 거쳐간 이들은 수없이 많다. 하루에 수십명이 오간다. 그에겐 15년전부터 그려온 꿈이 있다. 그 꿈은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다. 현재 서귀포엔 장애인들이 치료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장애인들이 치료를 받을 곳이 생겼으면 해요. 그게 내 몫인 것 같아요.”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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