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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표착지점이 10년 넘게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멜 표착지점이 10년 넘게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1.09.2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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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신도2리 향민회 “잘못된 역사 창피”…제주도 “연구검토 필요”

산방산 앞에 세워진 하멜기념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가. 지난 1999년 이익태 목사가 쓴 「지영록(知瀛錄)」의 등장으로 그 위세는 흔들릴 것으로 봤으나 여전히 하멜의 표착지임에는 변함이 없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하멜의 표착지를 산방산 일대로 알고 오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에서 ‘왜?’라는 의문을 달고 싶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事實)이 있다. 그런 수많은 사실(事實) 가운데 의미 있는 것들만 뽑아내서 만들어진 것이 역사이다. 하멜이 제주에 표착한 것은 사실(事實)이며, 하멜이 표류기를 쓴 것도 사실(事實)이다. 그래서 하멜이 제주에 왔고, 그가 은둔의 땅으로 알려진 조선을 알린 「하멜표류기」는 역사적 사실(史實)로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왜 「지영록」의 가치는 여전히 푸대접 받을까. 「지영록」은 목사 이익태가 제주에 부임하기까지의 과정과 제주에 머무는 동안의 일상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다 각 나라사람들의 표류 기록까지 써 있다. 이 가운데 하멜과 관련된 ‘서양국표인기(西洋國漂人記)’가 있다.

‘서양국표인기(西洋國漂人記)’엔 1653년 7월 24일(음력) 당시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서양인 헨드리크 얌센 등 64명이 함께 탄 배가 대정현 차귀진 아래 대야수(大也水) 해변에서 부서졌다.(西國蠻人 헨듥얌센等 六十四名同乘一般 致敗于大靜縣地方 遮歸鎭下大也水沿邊)”

1653년 음력 7월 24일은 양력으로 8월 16일이다. 하멜표류기에 기록된 8월 15일과 16일 새벽 사이에 제주에 표착했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지영록」의 최고의 가치는 하멜 표류기록을 정확한 지명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지영록」은 하멜 표착지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

사실(事實)에서 사실(史實)을 가려내는 작업은 전적으로 역사가들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영록」은 얼마만큼의 사실(史實)인가가 관점이다. 하멜표류기를 뒤지더라도 하멜 일행이 표착 지점에서 대정현 관아로 오는 시간이 5~6시간에 달한 것으로 나와 있다. 용머리 해안에서 지금의 대정현까지의 거리가 그 정도일까 의문이다. 이를 「지영록」에 비춰보면 하멜표류기의 시간 흐름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지영록」에 등장한 ‘대야수’는 고산리 한장동 사람들과 신도2리 사람들이 부르는 ‘대물’ 혹은 ‘큰물’이라는 견해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또한 「지영록」 이후에 등장하는 지도에도 ‘대야수’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탐라순력도」의 ‘한라장촉’과 「탐라지도병서」등에 ‘대야수포(大也水浦)’라는 표기가 있다. 물론 ‘대야수포’는 용머리 일대가 아닌 현재의 수월봉 부근이다.

최근 제주시 신도2리 향민회가 제주도의회에 ‘하멜표착지 확인 및 표지석 설치 요청’ 건을 올렸다. 도의회는 지난 20일 “정확한 고증을 통해 하멜표착지 논란이 종식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도록 집행부로 이송하는 게 타당하다”는 검토보고서를 내놓았다.

이젠 제주도에서 이 문제를 다룰 시점이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연구검토가 필요하다고 한다. 제주도의 한 관계자는 “사계리에 하멜기념비를 세울 때도 네덜란드와 국제적 협의를 거친 것”이라며 “지영록에 나타난 ‘대야수연변’이 어디냐가 문제다”고 말했다.

역사가는 주관을 개입해서 평가를 내리곤 한다. 그러나 역사가들이 그렇게 하려면 역사서술을 위한 재료로서 기록·유물·유적 등 사료(史料)가 있어야 한다. 역사가들은 사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기록물인 「지영록」은 하멜의 표착지점을 정확하게 표기한 유일한 사료다.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事實)이다. 「지영록」에 나온 ‘대야수’는 각종 지도에서도 사실(事實)임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틀린 역사를 가르치는 건 후손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신도2리 향민회 이용훈 회장은 “지금도 신도2리와 한장동 사람들은 ‘대야수포’를 ‘대물’이라고 부른다”며 “하멜기념비를 옮겨달라는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지 제주도를 오가는데 잘못된 역사를 알리는 게 창피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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