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9:15 (목)
“지침과 법을 떠나 수요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를”
“지침과 법을 떠나 수요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1.08.15 1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무원 열전] ⑬ ‘복지서비스 첨병’ 제주시청 복지서비스연계담당 허철훈씨

복지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제주시청 허철훈 복지서비스연계담당.

올해는 제주 도내 복지직 공무원들에겐 아주 의미 있는 해이다. 지난 1991년 복지전문가들이 공직에 첫 발을 디뎠고, 올해가 바로 2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그 전만 하더라도 복지분야는 행정직이 맡아왔으나 사회 변화는 그들을 공직으로 불러들였다.

제주시청 복지서비스연계담당인 허철훈 계장(56)은 1993년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그는 만 37세였다. 그래서인지 현재 도내에 있는 145명의 복지직 공무원 가운데는 나이로는 서열 1위다.

하지만 나이만이 그의 이력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복지직은 어려운 이웃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기에 ‘마음’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복지직 공무원들은 현장 업무가 중요하다.

“지금과 비교하면 예전 업무는 단순한 편이죠. 그러나 지금은 복지수요가 늘어나고, 욕구도 다양해요. 제주시에 복지서비스를 받는 이들만 7만6000명에 달하니까요.”

제주시에 거주하는 이들 10명 가운데 2~3명은 복지서비스 대상자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만도 매월 160억원에 이른다. 생계가 어려워 지원을 받는 이들도 있지만 무상보육과 기초노령연금, 장애인 수당 등이 포함되는 이른바 ‘보편적 복지’로 변화하는 추세다. 그러기에 ‘보편적 복지’를 내건 대한민국에서 복지직 공무원들의 역할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허철훈 계장이 긴급복지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 복지 서비스를 받는 인구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제대로 된 복지 서비스를 안겨줄 수 없다. 허철훈 계장은 지난 2006년 겨울, 구좌읍사무소에 근무하던 당시를 떠올렸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 있었어요. 얼굴이 미남이었죠. 그런데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게 됐어요. 백혈병이라는게 비급여 부분이 많잖아요. 그래서 지역지원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게 됐죠. 마을 어른들에겐 모금을 일원화 시켜달라고 하고, 홍보는 제가 맡기로 했어요. ‘애드벌룬식’으로 몇차례 언론을 통해 홍보를 했더니 효과가 있더군요. 한달사이에 수천만원을 모금했는데 젊은 청년은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어요.”

이처럼 일을 하다보면 안타까운 때가 많다. 그래도 보람은 남는다. 그건 바로 지역사회의 관심을 유도하는 일이다. 지역사회의 관심을 끈 모범사례가 있다. 그가 첫 공직에 발을 디딘 1993년. 그는 고산리 한장동에 노모와 함께 사는 젊은이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대학을 다니다가 희귀성질환에 걸린 젊은이가 사는 집은 그야말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는 주위의 도움을 끌어내 그 젊은이와 노모에게 15평의 아담한 슬레이트 건물을 건넸고, 마을에서는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고산리의 사례는 몇 년 뒤 구좌읍 지역에 ‘기술자원봉사대’의 출범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기술자원봉사대’는 국무총리 표창에 이어, 기관에서는 처음으로 삼성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기술자원봉사대를 만들자고 하니 반응은 썰렁했죠. ‘일회성이 아니냐’, ‘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들이었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마을 주민들에게 봉사에 대한 개념을 주지시키는 것이었죠. 이젠 구좌읍 기술자원봉사대는 자생력을 갖추고 집지어주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봉사활동에 참여한 어떤 분은 초등학교 졸업장 뿐이었는데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며 한없이 울기도 했어요.”

읍면동에서의 활동은 그에겐 임상경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려운 이들을 발굴해내는 건 물론, 주민들 스스로가 봉사활동의 주체가 되는 값진 경험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발로 뛰는 그가 생각하는 공무원은 무엇일까.

허철훈 계장은 수요자 입장에서 복지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입장에서 일을 해야죠. 행정에서 내리는 지침이 있지만 그런 것에만 매달리면 일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지침대로 하면서도 수요자들에게 외적인 서비스를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러려면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겠죠.”

허철훈 계장은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상을 안겼다. 아울러 그 자신도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훈장보다 더 센 상을 받았다고 한다. 다름아닌 ‘청백봉사상’이다. 허철훈 계장은 “묵묵히 일을 하다보니 좋은 일이 오는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보편적 복지’는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내걸고 있다. 허철훈 계장은 지금까지 마을 주민들에게 봉사개념을 전해주고 봉사활동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왔다. 봉사는 물질이 아니어도 마음과 실천이 중요함을 일깨워왔다. 그래서 그는 늘 뛴다. 그가 즐겨하는 마라톤처럼.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