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의 신비를 벗기다
성산일출봉의 신비를 벗기다
  • 고희범
  • 승인 2011.07.13 11:12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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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의 제주이야기] 제주포럼C 제13회 제주탐방 후기

제주도의 경관을 자랑하는 대부분의 인쇄물 표지를 장식하고, 올해에만 연말까지 관광객 2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제주도 최고의 관광지. 천연기념물 제420호로 세계지질공원의 대표적인 사이트이자 그곳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영주10경’의 첫째로 치는 곳. 제주도 최고의 절경이라는 찬사를 바치기에 부족하지 않은 곳. 성산 일출봉.
 
수성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난 일출봉은 화산 분출에 의해 생겨난 오름의 탄생 과정은 물론, 오랜 세월을 두고 침식돼가는 과정까지 보여주는 세계적인 지형이다. 거기다 화산 분출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퇴적물들을 잘 보여준다. 이런 점이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받기에 이른 것이다.
 
일출봉의 지질학적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출봉 주변 아랫부분을 찬찬히 살펴야 한다. 퇴적층의 구조와 다양한 퇴적물들의 종류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산항에서 고깃배를 빌려 타고 바다쪽에서 일출봉을 살펴보기로 했다. 빗방울이 이따금 떨어지는 날씨에 바람은 드세지 않았지만 파도는 잔잔한 편이 아니었다. 배에서 바라 본 일출봉은 때마침 구름이 정상 부분을 뒤덮어 신비로운 모습을 자아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성산 일출봉은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떨어져 나온 화산재 덩이 때문에 배가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제주도 내에 있는 360여개의 오름 가운데 10여개는 수성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것들이다. 일출봉을 비롯해 서귀포 하논, 대정의 송악산, 창천리 군산, 고산 수월봉과 당산봉, 김녕 입산봉, 종달리 말미오름, 우도 등 대체로 바닷가 근처의 오름들이다. 뜨거운 마그마가 지표면을 향해 올라오다가 지하수나 바닷물, 호수 등 물을 만나게 되면 물이 끓게 되면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끓는 기름에 물을 떨어뜨리면 물이 튀어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이 수성화산활동이다.
 
마그마와 만나는 물의 양이 많으면 폭발력이 크다. 화구에서 터져 나온 화산재와 암석 등 화산분출물은 축축하게 젖은 채 공중으로 튀어올랐다가 천천히 떨어지면서 쌓인다. 모래성을 쌓을 때 마른 모래 보다는 젖은 모래가 경사진 성을 쌓기 쉬운 것처럼 이 경우에는 화산재가 쌓일 때도 경사가 가파라진다. 이것을 '화산재 언덕'을 뜻하는 '응회구'(凝灰丘)라고 부른다.
 
반면 마그마와 물의 양이 비슷할 경우 폭발력은 더 크지만 화산분출물들이 뜨거운 화산가스나 수증기와 뒤섞여 수평으로 퍼져나간다. 사방으로 사막의 모래폭풍 처럼 빠르게 땅 위를 흘러가다가 쌓이는 것이다. 거기다 물기도 적어 경사도 물론 완만해진다. 이것은 '완만한 화산재 언덕'을 뜻하는 '응회환'(凝灰環)이라고 부른다.
 
일출봉은 물론 경사가 가파른 응회구다. 그러나 일출봉은 화산폭발 당시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해버렸다. 수천년의 세월 속에 경사면이 파도에 깎여 나가면서 화구 내부만 남은 형태가 됐다. 그리고 바깥쪽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지금의 모양으로 변한 것이다. 침식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화구의 둥근 모양만 남아있는 일출봉은 바다쪽에서 계속 진행되는 침식으로 인해 분화구 내부가 깎여나갈 것이다. 끝내는 일출봉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일출봉 동쪽 사면은 원래의 경사를 유지하고 있어 침식이 얼마나 심하게 이루어졌는지 보여준다.
 일출봉 남쪽에 남아있는 암괴가 과거의 경사면을 짐작케 해준다.
파도에 의해 심하게 깎여나간 부분. 침식은 현재 진행중이다.

해설을 맡은 전용문 박사(지질학.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연구원)의 설명이 잠깐 끊긴 사이 배를 몰고 나간 선주 이상권씨가 선실을 나왔다. 이씨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산돼지가 입을 벌리고 달려가고 있었다. 화산재층의 겉 부분이 떨어져나가면서 만들어놓은 그림이었다. 배를 타고 나가서야 만날 수 있는 보너스. 

 

자연의 조화는 이렇게도 나타난다. 산돼지의 몸통과 함께 머리 모양이 분명하게 보인다.

바다 근처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 화구에 공급되는 물이 풍부해 계속적으로 강한 폭발이 이어지면서 마그마가 잘게 부서져 화산재가 된다. 물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으면 폭발력이 약해지고 가스를 포함하고 있는 마그마가 터져나오면서 송이로 구성된 화산체를 형성한다. 이후 가스가 모두 빠져나가고 난 뒤에는 마그마가 그대로 흘러나와 용암이 된다. 이 용암은 이미 만들어진 송이 화산체의 한쪽 구석을 부수며 흘러나가 말발굽형 분화구가 만들어진다.
 
일출봉은 바닷물이 계속 공급돼 화산재층을 이룬 것이다. 화산재와 함께 지표면에 있던 암석들이 한꺼번에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가 화구 주변을 따라 차곡 차곡 반복적으로 쌓인다. 하지만 화구 주변의 가파른 경사 때문에 화산재층이 종종 미끄러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일출봉은 화산재층이 미끄러져 지층이 변형된 모습도 보여준다.
 
화산재층은 미끄러지기도 하고, 꼭대기 부분이 비에 쓸려 종종 내려앉기도 한다. 아래쪽 사면이 파도에 침식되면서 중간 벽면이 주저앉고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나 강풍에 실려 오는 비도 벽면을 깎아낸다. 오랜 세월을 두고 파도와 비, 바람에 시달려온 화산재층은 위 아래로 잘라내듯 무너져내린 곳도 있고 깊은 산 중의 계곡처럼 패여나간 곳도 있다. 바다쪽에서 바라본 일출봉의 바깥벽은 그래서 장관을 이룬다.

 

동쪽 바다에 면한 일출봉의 바깥벽. 거대한 계곡에는 나무와 풀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성산일출봉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그 학술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형성시기는 최근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일출봉의 화산암 조각에 대한 연대측정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일출봉의 나이가 너무 젊어 암석의 연대측정에 적합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를 알아낸 실마리는 엉뚱한 데 있었다. 일출봉에서 떨어져 나온 화산물질들이 파도에 의해 신양리 방향으로 이동해 '신양리층'을 만들어놓았다. 이 신양리층에 많이 포함돼 있는 조개화석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모두 5천년 내외의 것들로 밝혀졌다. 5천년 이전 조개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출봉에서 떨어져 나오는 화산물질에 조개들이 파묻히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일출봉은 약 5천년 전 화산 분출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산방산이 80만년, 비양도 3만년, 수월봉 1만6천년, 우도 1만년에 비해 일출봉은 가장 젊은 오름에 해당된다. 해설을 맡은 전용문 박사(지질학,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연구원)는 비양도에서 신석기 유물이 발견돼 비양도가 1천년 전 화산폭발에 의해 형성됐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1천년 전 비양도 근처 바다에서 화산폭발이 있기는 했으나 오름이 만들어질 정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일출봉에서 떨어져 나온 화산재층이 파도에 떠밀려 신양리 앞바다로 옮겨와 이루어진 신양리층.일출봉 형성 전후의 해양환경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층으로 일출봉의 나이까지 알려주었다. 

일출봉 주변의 화산폭발 당시 해수면 높이는 지금과 거의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하트 모양의 탄낭 아래쪽에 패여나간 부분이 그 증거다. 작은 돌멩이들이 드러난 부분은 화산폭발 당시 화산재층이 파도에 의해 깎여나간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지금도 밀물 때는 이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기 때문이다. 전 박사의 긴 해설에도 우리는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워 여러차례 질문을 해야 했다.

 

화산폭발 당시 파도의 흔적. 우리가 갔던 시간이 마침 썰물 때여서 현장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화산폭발과 함께 튀어나온 암석들은 화산재층에 박힌다. 화산재층이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박혀있던 암석들도 떨어져 나온다. 그래서 생긴 작은 구멍은 다시 바람에 깎이면서 점점 커진다. 돌멩이와 바람의 작용이다. 돌멩이와 파도의 작용도 마찬가지다. 일출봉 아래 바닷가에는 일출봉에서 떨어져 나온 화산재층이 흔하게 널려있다. 이들 화산재층 위에 어쩌다 얹히게 된 돌멩이가 파도에 이리 저리 휩쓸리면서 구멍 안쪽벽을 깎아 구멍을 점점 크게 만들어놓는다. 이것을 '돌개구멍'(pot hole)이라고 부른다.

 

일출봉 동쪽 면 직경 1.5~2m 크기의 구멍은 암석이 떨어져 나간 뒤 바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출봉 아래 바닷가에 흔한 화산재층의 구멍은 파도에 따라 움직이는 돌멩이가 만든 것이다.

세계적인 지질학적 가치나 빼어난 경관과는 무관하게 역사는 일출봉 곳곳에 깊은 생채기를 남겨놓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패망을 향해 달리던 일제는 제주도 곳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 일출봉에는 제주도로 접근하는 연합군 함대를 향해 자살폭파 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수상 특공병기 '신요'(震洋)의 격납고를 설치했다. 동쪽 바다를 향해 만들어진 18곳의 진지갱도가 그것이다.
 
전남지방 광산 노동자들이 대거 동원돼 구축한 것으로 전해지는 진지갱도는 높이 3.5m, 길이 10m 내외의 '1'자형 외에 '王'자형으로 구축된 갱도도 1기가 있다. '대양을 뒤흔든다'는 뜻의 일본 군함 이름을 딴 이 병기는 80마력짜리 엔진을 달고 뱃머리에 250kg의 폭약을 장착했다. 이 신요 자살특공대로 인한 사망자는 필리핀 해역에서 9백여명, 오키나와 해역에서 159명이었지만 연합군의 군함에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고 한다.

 

일제 공군의 '가미가제'에 비견할 해군의 자살특공대 '신요' 격납고가 동쪽 바다를 향해 있다.

이들 격납고는 신요가 바로 출격할 수 있도록 해수면 바로 위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쪽 끝 격납고는 반쯤 모래에 묻혀있고, 바로 이웃 격납고는 바닥에서 4~5m 위에 위치해있다. 일출봉 동쪽에 설치된 방파제가 파도의 흐름을 바꾸면서 모래를 동쪽으로 밀어낸 탓이다. 시멘트로 잘 만들어놓은 격납고는 해녀들이 불턱으로 사용하고 있다.

 

 
반쯤 모래에 묻힌 격납고(위 사진)와 4~5m 높이의 공중에 있는 격납고(아래 사진).

우리가 배를 타고 나갔을 때 일출봉 아래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있던 잠녀들이 우리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동안 들어오고 있었다. 몇시쯤 나가셨느냐고 물었더니 아침 9시반쯤 나갔다고 한다. 오후 2시반까지 점심도 거른 채 5시간이나 물질을 한 것이다. 망사리에는 성게가 가득 들어있었다. 간혹 문어와 소라가 끼어 있는 망사리도 보인다. 여든살쯤 돼 보이는 할머니 잠녀에게 연세가 얼마나 되셨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나도 모르고 산다"며 웃으신다.

 

배를 타고 나갔던 잠녀들이 5시간의 노동을 마치고 들어오고 있다. 수확의 기쁨에 표정이 밝다.

수천년의 세월 동안 파도와 비와 바람에 깎여 분화구의 둥근 모양만 남은 성산일출봉. 그래서 그 경관이 더욱 빼어나지만 지금도 침식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침식은 진행될 것이고, 끝내는 성산일출봉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닐까. 전용문 박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양이 변할 뿐"이라고 말한다. 성산일출봉에서 떨어져 나간 화산재층이 신양리층을 이루었듯이.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자연의 신비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운행할 터이다. 성산일출봉의 미래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오후가 되면서 성산일출봉은 맑은 하늘 아래 그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프로필>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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