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동한두기 단상
동한두기 단상
  • 송성근
  • 승인 2011.07.01 17: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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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송성근

 
사람이란 참 간사한 것이다.

예컨데 물 좋은 계곡에 천렵이라도 간다치면 풍성한 나무그늘 아래 편하게 누울 수 있는 평상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 위에 푸짐하게 먹을 닭백숙이나 매운탕이 있으면 더 좋겠고, 부르면 냉큼 달려와 술 시중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간만에 짬을 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오르는 계곡길에서 누군가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술을 마시고 화투놀이를 하고, 노래라도 부른다면 분명 혀를 끌끌차며 성숙치 못한 시민의식과 부도덕한 상행위를 개탄하리라.

거칠게 내리는 빗줄기가 잠깐 소강상태였던 요 며칠전, 간만에 아이들과 함께 동한두기로 백숙에 한치회를 먹으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해거름이 되기 한참 전이었건만 식당 앞 작은 길의 한쪽 면은 식당 손님들의 자동차로 - 분명 그 식당에 들어가야만 허락되는 - 촘촘했었고 겨우 맞은편 방파제 쪽으로만 드문드문 주차 공간이 허락되었다.

 
식당 주인인듯 종업원인듯한 뒷짐을 지고 서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방파제 쪽으로 차를 댄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는 차를 댈 수가 없단다. 이유를 물으니 영업에 방해가 된단다. 말이 되는 소리냐고 항변을 해보아도 요지부동이다.

살아오면서 겪은 여러가지 경험칙으로 생각컨데 도저히 이곳에는 차를 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내 포기하고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내려 걸어 나온다.

예의 우리에게 차를 못세우게 한 식당은 지나치고 옆 식당으로 자리를 잡는다. 비 그친 하늘에 석양은 감탄사 밖에는 나오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그 풍경을 벗삼아 백숙과 한치 - 참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지만 또한 생각해보면 잘 맞는 궁합이다. 속도 채우면서 안주를 곁들일 수 있는 - 를 먹으며 간만에 겪는 호사라며 즐거워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석양이 완전히 진 시간. 3층 창가의 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 그제까지 조용하던 식당 앞이 분주하다.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이 무거운 통나무 테이블 의자를 방파제 쪽 인도로 끌고 나간다. 순식간에 방파제 쪽 인도는 바로 앞 식당의 두번째 매장으로 변한다. 불특정 다수들이 안전하게 다녀야할 인도가 불법 노점상으로 변하고 아이들은 마음 놓고 놀 곳이 없어 자동차 전조등 사이에서 위태하게 뛰어 논다.

"저렇게 해도 되는거야?" 라며 식당의 불법 상혼을 탓해 보지만 기실 속으로는 "에이, 나도 저기서 먹고 싶은데..."하는 마음이 더 앞선다

벌써 석양이 진 바다 끄트머리에는 고기잡이 불빛이 환하고, 시원한 밤하늘 위로는 항공기들이 멋진 불빛으로 무시로 날개짓하는 그 공간이 부럽고 샘이 난다. 아마 나도 9시가 넘어서 식당으로 왔으면 냉큼 그 인도 위의 자리를 덥석 잡았을 것이다.

자본주의 앞에서 무조건적으로 도덕성을 지키라고 강압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숙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시청으로 도청으로 전화를 걸어 당신네들은 무엇을 하느냐고 이런 탈법들을 그냥 두어도 되느냐고 무차별적인 시민의식을 뽐내는 것도 사실은 이율배반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늘 속과 겉이 살짝 다른, 적당한 이율배반 속에서 타협을 하고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서로간에 생각하는 그 경계선이 조금씩 달라서 다툼도 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서로를 타박하기도 한다.

저녁에 잠깐 인도 위에서 영업하는 것도 못하게 하면 우리는 다 죽으라는 소리냐고 항변을 하지만, 한편에서는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공공의 것을 사유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로서의 5년.

그 사이에 주어진 숱하게 많은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의 문제들과 질문들. 주민소환, 해군기지, 영리병원, 내국인 카지노, 국제학교 등등의 많은 현안들. 때마침 우근민 도정이 출범한지도 이제 1년이다.

산적한 제주도의 엄청난 현안들 중 과연 어떠한 것은 인도를 점령해서 돈벌이를 하고 특정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어떠한 것이 공공의 편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구분을 하고 가야하지 않을까?

이참에 내 마음 속의 이율배반도 과감하게 정리할 것은 정리를 하고,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얄팍한 자기 합리화도 지워버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내 마음속 양보가 필요하지 않을까?

파란 술 시원한 것 몇 병에 참으로 거창한 상념을 안주로 삼은 밤이었습니다.

 
<덧붙임> 그럴 일도 없겠지만 강정마을 바닷가에 누군가 포장마차를 열어 손님을 모은다면 금새 철거반이 들이 닥칠 것입니다. 강정마을 앞 바다에 자연과 인권을 무시한 구조물이 들어옵니다. 얼른 철거하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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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2 10:19:52
이런 기사 읽고 '뜨끔'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멸종돼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이 부딪힐 때,공적 이익을 위해 사심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