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5:54 (금)
조랑말들의 고향을 찾아서
조랑말들의 고향을 찾아서
  • 고희범
  • 승인 2011.05.20 17:37
  •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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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의 제주이야기] 제주포럼C 제11회 제주탐방 후기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 이 말이 참 기분나쁜 시절이 있었다. "제주는 말이나 사는 땅이라는 말인가" 하는, 제주인들을 업신여기는 느낌이 강하게 든 탓이었다.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는 만큼, 말에 관한 한 어느 곳도 제주를 따를 수 없다는 점이 부각된 것이어서 그리 속 상할 일만도 아니다.

말은 과거에 농경과 교통은 물론, 국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기병 한 명이 보병 10명을 상대한다고 했고 말의 가격이 노비 세 명과 교환될 정도였으니 지금에 비추어보면 탱크 한 대 값이 아니었을까. 몽골이 대제국을 건설한 것도 몽골기병의 역할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에는 '말산업육성법'이 제정될 정도로 말 산업이 전국적인 기대를 모으고 있지 않은가.
 
마을 주변 초지에서 방목으로 말을 기르던 제주에 처음으로 목장이 만들어진 것은 몽골의 영향력 아래 있던 13세기 말이다. 삼별초 항쟁이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압당한 뒤 몽골이 1276년부터 말 160필과 목축 전문가들인 목호들을 불러들여 성산읍 수산리 수산평 일대에 '탐라목장'을 설치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제주도에 본격적으로 목장이 형성된 것은 조선시대로, 해발 200~600m 지역을 10개 구역으로 나누어 설치한 국영목장 '십소장'(十所場)과, 제주도 동부 해발 400m 이상 산간지역의 '산마장'(山馬場)이 대표적인 목장이었다.
 
십소장은 제주목 지역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1소장 부터 6소장, 대정현 지역에 7, 8소장, 정의현 지역에 9, 10소장이 분포돼 있었다. 산마장은 조천읍 교래리 바농오름 일대의 침장(針場), 산굼부리 일대의 상장(上場), 표선면 가시리 소록산과 남원읍 수망리 물영아리 사이 초지대의 녹산장(鹿山場)으로 구성된다.

 

중산간지역을 빙 둘러 만든 국영목장 '십소장'과 동부 산간지역의 '산마장'. - 그림 강만익 제공

이쯤에서 소개해야 할 두 인물이 있다.
제주에 국영목장 설치를 세종에게 건의한 제주 교래 출신 고득종(1388~1452)과, 탁월한 목축능력으로 국가의 위기상황마다 조정에 말을 바쳐 헌마공신(獻馬功臣)으로 칭송받는 의귀 출신 김만일(1550~1632)이다. 
 
세종 때 문과 중시에 급제한 뒤 한성판윤(서울시장)까지 지낸 고득종은 방목하는 말 때문에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게 되자 세종에게 해안의 마을지역에서 방목하고 있는 말들을 중산간지역으로 옮겨 체계적으로 말을 기를 수 있도록 국영목장 설치를 건의했다. 그의 건의를 받아들인 세종의 결정에 의해 세종 11년(1429년) 해안지역의 농경지와 중산간지대의 방목지 사이에 경계선인 돌담, 즉 '잣'을 쌓게 된다. '잣성'으로도 불리는 이 돌담을 해발 150~250m 지역에 섬 전체를 빙둘러 쌓은 것이다. 
 
'알잣' '하잣' '하잣성' 등으로 불리는 이 돌담은 말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높이 1.2~1.5m 정도의 겹담으로 쌓았다. 그리고 방목하는 말들이 한라산 삼림지역에 들어가 동사하거나 잃어버리는 일을 막기 위해 1700년대에 해발 450~600m 지역에 '상잣'('웃잣')을 쌓았다. 이후 해안지역의 농경지 부족을 주민들이 호소하자 해발 350~400m 지역에 '중잣'을 쌓아 방목지역을 둘로 나누고 농사와 방목을 중잣의 위 아래 지역에서 번갈아 하도록 했다.

 

제주시 회천동 쓰레기매립장 근처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하잣성. 평범한 밭담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십소장'이다. 한 '소장'에 5~7개의 '자목장'(字牧場)이 있었는데 1개 자목장에는 암말 100필과 숫말 11필이 사육됐고, 자목장마다 군두 1명, 군부 2명, 목자(테우리) 4명이 배치돼 말을 관리했다. 조선후기 기록에 제주의 자목장은 모두 58~64개가 있었다고 하니 6천~7천필의 말이 국영목장에서 사육되던 것으로 보인다.
 
국영목장 설치를 건의한 고득종은 그밖에도 제주의 토지 등급을 내려주도록 요청해 제주인들의 조세 부담을 덜어 주기도 했고, 서울로 올라가 종사하는 제주 출신 관리의 자제를 위한 수당제를 만들어 경제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그는 제주고씨 영곡공파의 파조(派祖)이기도 하다.
 
제주의 말 목축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김만일은 고향 의귀에서 교래까지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서 1만여필의 말을 키웠다. 임진왜란(1592~1598)이 일어나자 선조 27년(1594) 군마로 쓸 수 있는 좋은 말 300여필을 국가에 바친 것을 시작으로 선조 33년(1600), 광해 12년(1620), 인조 5년(11627)까지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네차례에 걸쳐 모두 1300여필의 말을 바쳤다.      
 
이 공으로 그는 인조 6년 종1품 숭정대부에 제수되고 헌마공신으로 칭송받게 된다. 이후 김만일의 개인목장은 '산마장'으로 운영되면서 산마장 관리를 위해 '산마감목관'제가 신설됐다. 그의 셋째아들 김대길이 초대 '산마감목관'에 임명된 뒤 그 후손들이 218년동안 임기 6년의 감목관을 세습하게 된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65호로 지정된 남원읍 의귀리 김만일의 묘. 김만일의 16대손인 제주대 김동윤 교수가 비석을 살펴보고 있다. 김 교수는 묘소에 있던 동자석을 두차례나 도난당했다고 했다.

산마장에는 '갑마장'(甲馬場)을 두어 산마들 가운데서 골라낸 품질이 가장 뛰어난 '갑마'를 따로 관리했다. 이 산마장에서 기르던 말이 얼마나 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김만일이 1만여필을 사육했고 이후 산마장의 범위가 성판악에 이를 정도로 확대된 것으로 미루어 1만필 이상의 규모를 유지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숙종 28년이던 1702년 10월 15일 산마장에서는 대규모 이벤트가 벌어졌다. 제주목사 이형상이 산마감목관이 관리하는 산마장 가운데 하나인 녹산장을 방문한다. 목사는 녹산장 중심부인 현재의 표선읍 가시리 큰사슴이오름(대록산)을 올라 정상에 좌정한다. 산마장에서 방목하던 말들을 성판악 바로 아래 산쪽 끝지점에서부터 대록산 아래 드넓은 초지까지 몰아 내려온다. 이 과정에는 '구마군' 3,700여명이 투입된다.
 
구마군이 말을 몰아내려오는 동안 다른 목장과 경계인 목책 바깥에 '결책군' 2,000여명이 줄지어 지켜서서 말들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한다. 대록산 아래 초지대에 대기하고 있던 '테우리' 200여명은 달려내려오는 말들을 원형의 목책(원장) 안으로 몰아넣는다. '원장' 안으로 들어온 말들은 한 줄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설치한 '사장'을 통과하도록 한다. 사장을 지나는 동안 말의 수와 건강상태 등을 일일이 점검한다. 이 '점마' 과정에는 제주판관, 정의현감, 감목관이 자리를 지키고 서서 품질이 우수한 말을 골라낸다. 조정에 진상할 말들이다.   
 
이날 행사에 동원된 인원은 모두 6,536명이었다. 이런 내용은 목사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 포함된 '산장구마'(山場驅馬)에 그림과 함께 기록돼 있다.

 

대록산 아래 펼쳐진 녹산장의 초지대. 바로 이곳에서 대형 이벤트인 말몰이 행사가 펼쳐졌다.

목사 이형상은 대록산을 떠난 며칠 뒤 '탐라순력' 길에 성산읍 수산리 수산진성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수산진성은 보존 상태가 좋고 다른 진성들이 바닷가에 세워진 것과 달리 중산간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모양도 다른 진성들 처럼 둥근 형태가 아니라 장방형으로 만들어졌다. 성 안에는 해방 이후까지 객사와 민가들이 있었으나 4.3 때 모두 불탔다. 

 

높이 5m의 수산진성. 둘레 350여m의 성곽이 잘 보존돼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2호.

지금은 수산초등학교 담장 노릇을 하고 있는 수산진성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이 성을 쌓을 때 돌이 자꾸 무너져내려 제대로 쌓을 수가 없었다. 끝내 공출을 내지 못한 마을 주민의 아기를 성을 쌓을 때 함께 묻은 뒤에야 성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희생된 아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당을 세웠으니 진성 동북쪽 모서리에 있는 '진안할망당'이다. 사람을 희생제물로 바쳤다기 보다 축성 공사 중에 사고로 아기가 희생된 사건을 두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닐까.

 

성을 쌓기 위해 희생된 억울한 아기의 넋이 좌정했다는 전설 속의 '진안할망당'.

제주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말 목축의 역사. 탐라국 시대부터 이어져온 말 목축은 이민족의 지배를 통해 목장의 형식을 띄게 되었고, 국가의 요구로 본격적인 목마장을 설치해 체계적으로 관리운영하게 되었다. 그 역사의 흔적이 오롯이 담긴 잣성은 6백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면서 상당부분 사라졌다. 제주도 전역에 현재 남아있는 상중하 잣성은 총길이 60km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더 늦기 전에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할 수 있도록 그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돌아볼 때가 됐다. 제주대 박사과정에서 제주 목장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이번 제주포럼C의 열한번째 '제주탐방'에서 해설을 맡은 강만익(세화고 교사) 선생은 제주도 보다 오히려 외지의 문화재 관련인사들이 잣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또 하나. 남원읍 의귀리는 김만일의 역사를 간직하기 위해 말을 테마로 한 마을만들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표선읍 가시리도 마을만들기 사업과 관련해 말 목축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제주에 체계적인 말 목장이 설립되도록 건의한 고득종의 고향이자 산마장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교래리는 '토종닭마을'이 됐다.

 

표선읍 가시리 초입의 테우리 상. 가시리는 말을 마을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있다. 

원래 주민들이 떠난 자리에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면서 말 목축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 없는 탓일까. 마을의 역사나 산업과 전혀 관계없는 닭 보다는 말과 관련된 사업을 마을 차원에서 펼치는 것이 훨씬 의미있을 것 아닐까. 역사가 살아있는 마을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여름을 향해 달리는 대록산의 고사리는 역사적인 흔적들을 많이 놓치고 있는 우리를 탓하듯 부드러운 순을 거둔 채 이미 잎을 피우고 있었다.

 

<프로필>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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